<중앙일보>에서 발행하는 '고품격신문' <중앙선데이>가 최근 보도한 '미네르바' 관련 기사를 보면서, 언론의 건망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새삼 절감했다. 자기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 건망증이 더 심해졌다는 점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1월 11일 발행된 <중앙선데이> (96호)에는 '미네르바 거품을 키운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아무개씨의 구속과, 그를 둘러싼 법리 논쟁이 뜨거운 터라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직도 박씨가 '진짜' 미네르바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전문대를 졸업한 30대 백수'라는 검찰 발표는 보수언론들에게 좋은 '비판거리'가 됐다. 지금까지 미네르바에 "속았다"거나 "놀아났다"는 거다.
그 비난의 화살은 곧장 '미네르바 거품'과 '그 거품을 만든 사람들'을 겨냥했다. <중앙선데이>가 지적한 "최고의 경제 엘리트들과 국회의원, 내로라하는 학자와 언론인 등"의 '화려한 조연'이 바로 그들이다. <중앙선데이>는 "마치 미네르바가 대단한 신통력이라도 지닌 듯이 묘사한" 홍준표 의원이나, "미네르바와 대화하고 싶다"고 한 강만수 장관 등 정부·여당이 미네르바를 '정치적 거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중앙>, 진보진영 겨냥해 '미네르바 거품' 책임론 제기?홍 의원이나 강 장관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미네르바를) 가장 뛰어난 국민의 경제 스승"이라고 한 김태동 교수와 "제도권 언론과 정치인을 모두 합쳐도 미네르바만 못하다"고 주장했다는 최문순 의원, 그리고 진중권 교수 등의 발언을 문제삼아, 사실상 '진보진영'에 속한 이들이 미네르바 거품을 만든 장본인 아니냐고 문제제기 한다.
<중앙선데이>는 '미네르바 거품'에는 '언론의 띄우기'도 한몫 했다고 비판한다. 지난해 9월 중순 미네르바가 <오마이뉴스>와 <한겨레21> 등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정치권의 과민반응을 거쳐 사실상 거품인 '미네르바 신드롬'이 증폭됐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미네르바의 한 수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맞아 보인다"는 클로징 멘트도 비판에 포함돼 있었다.
<중앙선데이>는,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씨를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언뜻 보면 그의 글이 상당히 전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인터넷에 있는 것을 짜깁기한 글'이었다"며 "문제는 미네르바 거품을 일으킨 사람들이 그의 글에 대해 냉정한 검증을 시도했느냐는 점"이라고 근엄하게 훈계한다. <중앙선데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중앙선데이> 관점에서 본다면, 미네르바 신드롬은 거품에 불과했고, 언론들은 냉정한 검증을 하지 않고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네르바가 인터넷에 올린 경제전망에 대한 정확성 논란, 구속된 박아무개씨의 미네르바 진위 논란 등에 앞서, 과연 <중앙선데이>가 '미네르바 거품'과 '냉정한 검증'을 훈계할 처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냉정한 검증' 이야기하기 전에 <중앙> 보도를 살펴봐라"먼저 위기에 빠진 한국경제의 앞날을 예측하고 예리한 식견으로 정부의 미숙한 대응을 질타해 화제가 되고 있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신드롬을 다룹니다. 미네르바의 충격적 예고에 투자자들은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요. 미네르바 신드롬의 원인과 그의 실체를 추적해봤습니다." 지난해 11월 23일 <중앙일보> 인터넷판인 <조인스>의 '6시 중앙뉴스'에서 <중앙선데이>의 미네르바 기사를 소개한 멘트다. 당시 <중앙선데이>에서 다룬 미네르바 기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 미네르바에게선 이처럼 '환율 프로'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취재팀은 460여 쪽에 이르는 '미네르바 글모음' 파일과 기고문 등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그는 시장을 비교적 잘 보고 '엔캐리 크로스 거래, 투신의 다이내믹 헤지, 수출업체 리딩·래깅 전략' 같은 전문용어를 술술 구사했다. '한·미 통화 스와프'도 비슷한 케이스다. 미네르바는 10월 초부터 줄기차게 스와프를 주장해 왔다. 미 구제금융 7000억 달러로 유동성 위기가 완화될 것이란 시중 분석에 그는 코웃음쳤다. 실제 물밑 협상을 벌이던 정부가 10월 말 협정을 체결하자 요동치던 시장이 한동안 안정을 찾기도 했다." (<중앙선데이> 89호, "환율은 족집게, 주가 전망은 글쎄?" 기사중에서) 이 기사 결론부에 <중앙선데이> 기자는 이같이 말한다. "사실 미네르바가 얼마나 신통한지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의 글이 신뢰를 얻는다는 자체에 더 주목해야 한다. 정권 초기부터 꼬인 환율 정책에 대한 비판 등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론이 없다"고.
같은 호 <중앙선데이>에는 '미네르바는 누구인가'라는 기사도 다뤘다.
"익명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과연 누구일까. 세간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서도 미네르바는 자신을 "고구마 파는 늙은이"로 표현하며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다. 한 글에서 '환율과 주가의 변동 모델을 만드는 데 일한 죄밖에는 없는 늙은이'라며 자신의 직업을 암시했을 뿐이다. ...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금융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A씨를 접촉했다. A씨는 "내가 추측하는 사람이 미네르바일 가능성은 99.9%"라면서도 "아직까지 본인이 미네르바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 실명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의 추측이 맞는다는 가정하에 이렇게 설명했다. "금융업계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50대 남자라는 세간의 추측은 맞다. 해외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고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한 사실도 있다.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사람이다.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 업계 관계자들이 깜짝 놀라 뒤집어질 것이다." 미네르바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또 한 번의 파장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앙선데이> 89호, "금융계 다 아는 인물 가능성" 기사중에서) 그 다음주인 <중앙선데이> 90호(지난해 11월 30일)에서도 미네르바의 열기는 식지 않는다. 다음은 '하반기 반등해도 급등은 없다'는 제목의 2009년 집값 전망 기사의 도입부다.
"요즘 부동산 시장의 화두는 집값 하락 폭과 바닥 시점이다. 얼마나 떨어지고 언제쯤 바닥을 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체로 입을 다물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변수가 많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연구소들은 경기가 좋아질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로 나눠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말이 전망이지 '각자 알아서 판단하세요'에 가깝다. 이런 틈에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날리던 익명의 논객 미네르바는 "집값이 반 토막 날 것"이라고 '폭탄'을 날렸다. '설마' 하면서도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런 대폭락 장세라면 선배 격인 일본이 떠오른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같은 호에 실린 "'100년 베어마켓' 온다는 미국판 미네르바의 경고"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한국에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있다면 미국엔 로버트 프렉터가 있다. 통념에서 벗어나 시장을 앞서 짚는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주가 차트를 통해 시장을 분석하는 그는 78년 각종 거시지표와 증시 변수를 점검하고선 "80년대 불꽃 장세가 시작된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당시엔 모두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시장을 4년 앞서 갔다. 투자자들로부터 '구루(스승)'라는 호칭도 얻었다. 95년엔 "황소장세가 머잖아 끝난다"고 예견했다. 그의 말은 닷컴주의 거품 붕괴로 현실화됐다. 그런데 요즘 미국 투자 사이트에서 프렉터의 이름이 다시 오르내린다. 이미 수년 전에 사상 초유의 거품이 무너지고 디플레이션이 찾아오면서 100년 약세장이 시작된다는 무서운 예고장을 던졌기 때문이다. 낙관론에 파묻혔던 그의 예고가 부활한 건 요즘 시장 돌아가는 판세가 흡사하기 때문이다. 주가 차티스트들의 예측이 항상 맞은 것은 아니었기에 프렉터가 혹세무민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의 적중률 전과가 투자자들을 찜찜하게 만든다. 발 빠른 각국 정부의 대응력에 기대를 걸어 보면 사실 100년은 허풍이 심하다고 볼 수 있다. 미네르바의 주가 예측이 때때로 틀렸던 것처럼 프렉터도 매번 100점을 맞진 못할 것이다. 다만 프렉터가 던지는 행동강령만은 백번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중앙선데이> 92호(지난해 12월 14일)에 실린 '리먼 몰락 석 달, 반등 기대 앞서 반성부터'라는 기사 도입부를 보자.
"석 달이 지났지만 '생사의 갈림길'은 여전하다. 주가 얘기다.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몰락했다. 그 뒤론 끔찍한 악몽의 연속이었다. 주가는 천(天·1000)이 무너졌고, 환율이 치솟았으며, 실직 공포가 꿈틀댔다. 6개월치 비상 현금을 준비하라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경고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기왕 본 김에 <중앙선데이> 94호(지난해 12월 28일)에 실린 "'서부포람' 쓰나미에 '노도강'마저 무너져"라는 제목의 2008년 부동산 시장 키워드 기사도 살펴보자. 이 기사에서는 '반 토막과 대폭락'이라는 키워드를 설명하면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집값 반 토막 전망을 내놓을 때는 다들 설마했다"며 "그러나 일부 지역 집값이 반 토막 나고 거래량, 아파트 공급 물량까지 과거 최고 수준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반 토막'설에 힘이 실렸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네르바 신드롬', '인터넷 스타'... 되풀이 되는 <중앙> 보도이밖에도 그동안 <중앙선데이>에 실린 '미네르바' 인용·평가·분석 기사는 많다. 그러나 그 어느 기사에서도 최근 <중앙선데이>가 지적했던 '냉정한 검증'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미네르바가 상당한 경제적 식견을 갖춘 인물로 묘사돼 있고, 이러한 미네르바의 예측에 적잖은 신뢰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고구마 파는 늙은이'에 불과하다고 한 '미네르바 찾기'에도 매우 열심이었다.
그렇다면 <중앙일보>(이하 <조인스> 포함)는 '미네르바 신드롬'을 어떻게 보도했을까. 지난해 10월 29일 "'족집게' 경제 예측 인기 논객 '살해 협박 당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네르바'는 지난 7월 미국발 서브프라임 쇼크가 한국에 옮겨올 것을 예측하면서 누리꾼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달 초에는 리먼 브러더스의 부도를 전망해 이른바 '미네르바 경제신드롬'을 일으키며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다"고 소개하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보였다. 그 기사에서조차 "현재 '미네르바'의 신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고 밝혔음에도 말이다.
지난해 11월 14일 미네르바가 다음 아고라에 절필 선언을 했을 때도 <중앙일보>는 친절하게 그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으며, 미네르바를 "지난 7월 미국발 서브프라임 쇼크가 한국에 옮겨올 것을 예측하면서 네티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리먼 브라더스의 부도를 전망해 '미네르바 경제신드롬'을 일으키며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후 환율 폭등을 예측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고 소개했다. 10월 29일자 기사에서 소개한 내용 그대로 반복하며, 일관된 보도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18일에는 "일본계 환투기 세력 '노란 토끼'의 공격 시작됐다"는 제목으로 <신동아> 12월호에 실린 미네르바의 기고(지금 미네르바 진위 논란의 중심에 선 글)를 소개한다. 그 글에서도 미네르바를 "인터넷포털 다음의 아고라 경제 토론방에서 정부의 정책 실패와 최근 세계 경제위기 양상을 막힘 없는 논리로 풀어냈던" 사람으로 소개한다.
지난해 12월 12일에는 <중앙일보>에 색다른 기사가 눈에 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미네르바는 온라인 노스트라다무스"라며 한국의 '미네르바' 열풍을 보도했다는 외신 인용 기사다. 언론사에서 특정인에 대한 외신 보도를 인용한다는 건, 그에 대한 뉴스 가치를 매우 높게 본다는 뜻이다.
이쯤 되니 <중앙선데이>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중앙선데이> 기사 '미네르바 거품을 만든 사람들'에서 지적한 "냉정한 검증을 하지 않은 언론" 가운데 <중앙>의 활약상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혹시 스스로 거품도 만들고, 스스로 그 거품도 제거하는 신묘한 '자웅동체'같은 언론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있는 건 아닌가?
<중앙선데이>가 미네르바 신드롬을 거품이라고 주장하는 건 언론의 자유니, 뭐라 시비를 걸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못된 건망증에 대해서만큼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중앙선데이>가 이야기하는 '언론의 냉정한 검증'이라는 비판은 가장 먼저 <중앙>에게 들이대야 할 비판이고 지적이다. 그래야 '고품격'은 아닐지라도, '저품격'은 면할 수 있다. '미네르바 거품론'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