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맛있는 집을 연재하는 음식평론가 예종석 교수는 <시사IN>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옛말에 대미필담(大味必淡)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좋은 맛은 담백한 맛이다'라는…."꼭 '대미필담'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담백한 맛이야말로 미각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내로라하는 미식가들이 예찬하는 푸아그라·생선회, 그리고 우리의 평양냉면이 담백함의 극치라는 사실이 증명한다.(일반 미각인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리고 또 하나 미각의 기준으로 삼아도 좋을 음식이 바로 말고기다. 역시 위에 열거한 요리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미각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식을 삶의 크나큰 즐거움 중에 하나로 삼는 프랑스인들은 쇠고기보다 말고기를 선호한다. 쇠고기에 비해 연한 질감과 담백한 맛이 미각을 살살 건드려주기 때문이다. 미식이라면 프랑스인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은 일본인들 역시 말고기를 즐긴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말고기는 훌륭한 미식의 소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맛집 블로그에 말고기가 소개되어 있다면 기본 이상의 미각을 지녔다고 본다. 만약 말고기 예찬이라도 이어졌다면, 그 블로거의 미각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되지 않겄시유~~.
말고기는 미각의 새로운 기준우리에게 말고기는 소나 돼지에 비해 덜 익숙한 편이다. 때문에 말고기 식육에 대해 편견을 지니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말고기에 대해 알고 나면 그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건 자명하다. 말고기는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으로서, 육류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우수한 웰빙 식품이니 말이다.
맛객이 말고기를 최초로 접한 건 2005년 제주에서다. 처음으로 갔던 제주에서 처음으로 접한 음식이 말고기였으니 말순이와는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닌 셈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말고기를 호기심에 시작하듯 나 역시 호기심으로 입에 대었다.
그때 느낀 말고기의 맛은 무미에 가까울 정도로 담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마디로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말고기의 진가를 확인하기엔 나의 미각 수준이 따라가 주질 못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작년에 말고기와 다시 한 번 조우했다. 내 의지에 의해 말순이를 찾아갔으니 첫 만남이 그리 나쁘진 않았었나 보다. 이번엔 호기심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택시기사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고기의 일미는 생간과 막창이라는데 마침 오늘이 말 잡는 날이라는 것이다. (가서 보니 말 잡는 날은 아녔지만.)
어쨌든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대가 말고기를 제대로 느끼고자 한다면 필히 말 잡는 날 골라서 가길 권한다. 물론 생간과 막창을 탐닉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대 말고도 많을 터이니 예약은 필수라는 사실 명심하시고.
말 잡는 날과 아닌 날의 미각은 확연히 다르다. 내가 만약 말고기를 처음 접한 날이 말 잡는 날이었다면 나의 말고기 예찬은 훨씬 앞당겨졌을 수도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말 잡는 날 가게 된다면 일단 신선한 말고기를 먹을 수 있다.
것보다 더 기뻐해야 할 이유는 앞서 얘기한대로 생간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난 아직 그 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맛본 이의 평에 의하면 배를 씹듯 아삭한 조직감이 환상이란다. 미뤄 짐작컨데 태양계까지 소문날 만한 맛이 아닌가 싶다. 말 잡는 날은 대체적으로 금요일이지만 업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헛걸음하지 않으려면 찾아가고자 하는 업소에 따로 문의해보길 바란다.
'검은지름' 막창, 살살 녹는 버터가 따로 없네택시기사가 김칫국부터 마시게 하는 바람에 생간을 구경조차 못했다. 하지만 바로 이놈이 있기에 아쉬움은 덜 수 있었다. 생간과 미식 자웅을 겨루는 막창이다. 제주 토박이들이 검은지름(기름)이라고도 부르는데 실제 보면 검은색은 아니다. 삶은 막창 속에 노란 지방이 가득 차있는데 이걸 보고 검은지름이라고 한다.
보기엔 마요네즈에 노른자를 섞은 듯 보여 입에 대가기 망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하시라. 낯선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 않는 한 미식의 즐거움은 없다는 사실을. 맛의 결정체를 편견 때문에 놓칠까 해서 하는 소리이니 뭐 귀담아 들을 필요까지는 없고.
막창은 맛을 본 사람만 아는 맛이다. 이게 얼마나 맛이 좋으면 '말은 간과 막창자 보고서 잡는다'라는 속담까지 있을까. 또 '말 추렴해서 검은지름을 못 얻어 먹으면 말고기 먹은 것으로 쳐주지도 않는다'라는 말도 회자된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현지인들이 이토록 칭송하는 것일까.
직접 먹어본 바에 의하면 살살 녹는 버터와도 같았다. 지방이지만 느끼하지 않은 반전의 맛이었다. 지방의 뒷맛이 이처럼 개운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알고 보니 말 지방에는 불포화지방이 소보다 월등히 많이 분포되었다고 한다. 잘 알다시피 불포화지방은 체온에서도 녹는 성질을 갖고 있다. 검은지름은 진미로서 칭송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함께 나온 내장 몇 종도 맛을 봤다. 각각의 질감과 풍미는 꼭 고래내장을 연상시켰다.
말은 간과 막창 보고 잡는다내장에 앞서 나온 건 구절판이었다. 말고기 수육을 여러가지 재료를 곁들여서 얇게 썬 무에 싸서 먹는다. 솔직히 입에 달라붙는 요리는 아니었다. 식경험 증진 차원에서 한번 정도 먹는다는데 의의를 두었다. 문제는 이 요리가 말고기 코스메뉴의 첫번째를 장식한다는 점이다. 말고기를 처음으로 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지 못할까 봐 염려다.
이어서 나온 요리는 말고기 모둠회였다. 지방이 거의 없다시피 한 말고기는 영양학적으로 닭 가슴살과 맞먹는다. 담백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지 않는가. 모둠회에서 인상적인 부위는 '지라'였다. 스폰스폰 씹히는 질감이 육질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소 지라는 빈혈에 특효가 있는데 말 지라도 그런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말고기로 만든 육회와 초밥, 찜과 신선로가 연이어 상에 차려졌다. 말고기의 향연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제주 특산주인 한라산까지 몇잔 마시고 나니, 제주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주인장이 뭔가를 들고 들어온다. 익힌 간과 콩팥·거시기(?) 등이었다. 생간이 없어서 미안한 마음에 내놓는 서비스였다. 간은 참으로 부드러웠다. 그리고 거시기는 거시기한 맛이었다. 맛을 떠나 진귀한 부위를 맛보게 해준 주인장의 배려가 고맙기만 하다.
이어진 성찬은 말고기구이이다. 고기치곤 상당히 부드러워 한국인의 턱힘이라면 씹히는 맛이 약할 수도 있겠다. 쇠고기보다 더 재빨리 구워야 그나마 식감이 느껴진다.
말고기 향연의 대미는 사골국이었다. 소 사골국에 비해 개운했다. 이 사골국을 챙겨 먹어야 할 이유가 있다. 말뼈는 소뼈보다 고급으로 치니 말이다. 실제 말 한마리에서 뼈 가격이 60프로나 차지할 정도로 고가지만 이마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글리코겐이 소의 두 배에 달할 뿐 아니라 신경통이나 중풍기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탓이다. 이래저래 웰빙식품으로서 가치가 높다 할 수 있겠다. 제주에 가게 된다면 한번쯤 즐겨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마침 말고기의 진수는 건초를 먹는 겨울철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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