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자원공사 '경인운하 건설단' 현판식(12일 오후 2시)이 예정된 인천 계양구 계양1동 '굴포천 방수로 2단계 건설사업 3공구' 현장.
현장 입구에는 새로 '서해안 시대 새로운 물류·문화·관광의 중심'이란 경인운하 표지판이 붙었지만 12일 오후 1시 20분 무렵부터 이곳에 모인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건너편 현장 입구에는 아직 바꿔달지 않은 '굴포천 방수로 2단계 건설사업 3공구 시설 공사'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인천녹색연합·인천사람연대·환경정의 등 '경인운하 백지화 수도권 공대위' 50여명은 '토건기업 특혜 주는 경인운하 밀실추진 국토해양부는 각성하라' '국민 혈세 낭비말고 KDI 경제분석 근거 공개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계양역에서부터 현장까지 도보로 이동한 뒤 오후 1시 30분부터 현장 입구에서 집회를 열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 등 진보 정당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경인운하 건설단' 현판식장에 울려퍼진 동요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이들의 원만한 집회 진행을 방해했다. 연설하는 사람들의 입이 덜덜 떨렸고, 거센 바람 때문에 들고 있던 펼침막이 사람들 몸에 딱 달라붙었다. 손에 들고 있던 피켓이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집회 내내 "경제성 부족하고 환경오염 대책도 없는 경인운하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조강희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오늘 오후 2시에 굴포천 사업추진단의 명칭을 경인운하 건설단으로 바꾼다 한다"며 "경인운하는 이미 경제성과 타당성 문제로 백지화됐는데 갑자기 다시 착공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처장은 "15년 논란을 거쳤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다시 살아나고야 말았다"면서 "우리의 오늘 집회가 경인운하, 더 나아가 한반도 대운하를 막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복현 환경정의 국장은 "경인운하는 날이 이렇게 추워도 나와 반대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면서 "경제성도 없고 혈세 낭비만 초래하는 운하사업은 절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현정 서울환경운동연합 간사는 "경인운하는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경인운하 건설 얘기가 나오자마자 서울시에서 환영 입장을 발표했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단 것이다. 경인운하는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시민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동안 경제성이나 환경성 문제로 지지부진하던 경인운하를 밀실에서 추진하고 있다. 경인운하가 건설되면 멸종위기종과 희귀종이 서식하는 장항습지도 파괴되고야 만다."참가 대표들의 발언이 얼추 마무리되자 참석자들이 "노래 하나 하자"고 제안했다. 이들이 선택한 노래는 투쟁가 대신 동요('파란마음 하얀마음')였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운하 찬성 주민들 "환경단체 자폭하라"이들이 막 노래를 끝내고 구호를 외칠 무렵인 오후 2시 11분, 검은색 자동차가 이들 앞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뒷자리에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정 장관 면담을 요구하며 현장 진입을 시도했으나 경찰 제지에 막혔다. 이들은 계속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키다가 "오늘은 투쟁의 시작이다, 3월 착공을 목숨을 걸고 막자"면서 해산했다. 경찰들과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이 무렵 현장 임시건물 회의실에서는 간단한 업무보고를 겸한 비공개 회의가 열렸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공사가 늦어져 주민들에게 죄송하다, 빠른 시일 내에 공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행사에 참여했던 박한욱 경인운하지역협의회장이 전했다.
업무보고를 끝낸 정 장관과 김건호 수자원공사 사장 등이 현판식을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에 맞춰 식당 안에서 대기 중이던 경인운하 찬성 지역주민들도 떼지어 나왔다.
정 장관 등이 사회자의 구호에 따라 금색 줄을 당기자 '경인운하 건설단' 현판을 가렸던 천이 톡 떼어졌다. 바람이 거센 날이었는데도, 오른쪽 지붕 위에서 분수 폭죽이 터지고 행사장 구석에서는 축포가 터졌다. 정 장관과 김 사장 등이 박수와 함께 악수를 나눴다.
경인운하를 찬성하는 주민들은 "환경단체 자폭하라" "경인운하 조기착공" 등의 손피켓을 들고 있었다.
오세덕(60)씨는 "이 정부가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며 "경인운하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직업적으로 반대만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한 주민은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가며 "우리 이-명-박-대-통-령-각-하-께-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인천시민 역시 "그동안 이 주위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 피해가 많았다"면서 "이제야 16년 기다렸던 경인운하가 착공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경인운하는 한강 침수에 대비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정 장관은 간단한 현판식을 끝내고는 현장 관계자, 지역 주민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40여 분간 현장을 시찰했다.
정부는 경인운하 사업비로 2조 2500억원을 계획하고 있으며 국토부는 경인운하 건설시 신규 일자리 2만5000개 창출, 3조원의 생산유발효과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3월에 방수로~김포터미널 연결수로 공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인운하 사업에 착수하며, 6월 교량, 갑문 등 주요 공정을 거쳐 2011년 12월 완공과 함께 선박을 운항한다는 계획이어서 착공을 둘러싸고 환경단체들과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 김태헌 기자는 <오마이뉴스> 9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