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일요일 정오에 방송하는 전국노래자랑을 좋아한다. 또 매일 저녁 방송하는 6시 내고향도 즐겨 보신다. 그래서 하루라도 그 방송을 놓치면 허전해 하신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도 그랬는데, 뒤늦게 내 시어머니가 되신 어른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됐는데 채널 조정이 잘 안 되면 퍽 미안한 얼굴로 리모컨을 건네신다.
"거 노래자랑 할 띤데, 어디서 하는지 몰러."
아들은 자기 엄마라고 마음대로 퉁을 놓으면서 불평을 하지만 며느리인 나는 친절하고 재빠르게 좋아하시는 그 방송 채널를 찾아드린다. 그러나 내가 하는 건 우리 엄마가 엄마의 시어머니인 내 할머니에게 하던 것의 100분의 일도 안 된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효가 아닌 그저 힘없는 노인에게 마지못해하는 작은 도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주말 주문진에 계시는 시어머니를 뵈러 갔다.
"야야, 왜 이렇게 안 오냐. 쌀도 떨어지고 용돈도 떨어졌는데."
팔순이 넘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엄살을 떠셨다(우리 어머니는 여간해서 통장에 있는 돈을 찾아 쓰시지 않으며 쌀도 꼭 아들이 사다드려야 드신다). 시어머니 좋다 할 며느리 있겠냐마는 나 역시 시어머니 대하기가 편치만은 않은 며느리다.
아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 만났다고 신이 나서 어머니께 고했지만 어머니 마음은 달랐다. 아들보다 나이가 많아 손주 하나 안겨줄 수 없는 며느리감이었으니 당연히 탐탁치 않아하셨다. 가끔은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어 내게 잔뜩 인심을 잃으셨고. 이제는 서로가 어쩔 수 없이 적응해 가고 있다.
노인 혼자 사시는 열일곱평짜리 주공 아파트는 늘 퀴퀴한 냄새를 동반한다. 부엌이고 목욕탕이고 산뜻하게 정리되지 않음도 물론이고.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주방. 노인의 행동을 가만히 관찰해보니 컵도 드시고는 씻지 않은 채 그대로 선반에 엎어놓으시고, 다른 그릇들도 물로 한 번 어설프게 헹구어 선반에 얹으셨다.
그리하여 깔끔 떠는 아들 며느리는 들어서자마자 바로 청소에 돌입. 남편은 방과 목욕탕 청소를. 나는 부엌 청소로 자연스레 역할분담을 해서 한다. 그중 수저와 수저통, 그리고 컵을 닦는 일은 일순위. 만일 식사 시간에 닥쳐 도착, 바로 밥을 먹어야 할 때라도 일순위를 처리하지 않으면 밥은커녕 물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사실 그렇게 극성을 떨 일도 아닌 게, 옛날 우리 할머니는 상위나 방바닥에 떨어진 음식부스러기도 곧잘 주워 입에 넣곤 하셨다. 우리가 말은 못하고 눈을 크게 뜨며 손짓을 하면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셨다.
"거기 뭐 묻었니? 괜기만찮다."
오랜 세월을 산 노인의 눈으로 보면 그 정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일 거다. 풋내기 우리 눈에만 아주 대단하게 지저분해 보여 너스레를 떠는 것이지. 얼마 전 어떤 실험결과에서도 나왔다. 흘리고 2초 전에 주워 먹으면 아무런 해가 없다고. 아직 균이 분열을 일으키기 전이라서 괜찮다나. 아니 그 실험이 아니라도 우리 인체에는 균을 막아내는 항체가 있어 왠만해서는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데, 우리는 미관상 불편함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식탁의자에 앉아 물 많이 쓴다, 잔소리를 하시더니 어느 순간 '고마해라' 두어번 하다가 방으로 들어가신다. 그리고는 주방 쪽을 외면하고 때맞춰 나오는 전국노래자랑에 눈을 맞추신다. 그런 노인을 슬쩍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멈칫해졌다.
'이건 노인의 살림인데',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누군가 내 살림을 자기 마음대로 온통 뒤집어놓고 수선을 떤다면 난들 좋겠는가. 내 깐에는 깨끗이 한다고 생색(?)을 내면서 부지런을 떨지만 노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꼭 좋아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른바 노인에게도 자존심은 있는 거니까. 그때 문득 내 엄마가 할머니께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 속옷 자주 벗어서 내 놓으세요. 기침하시면 아무래도 소변이 새시잖아요."
지극히 조심스러운 표정, 그리고 말투였다. 할머니는 표정도 그대로인데다 대답도 없이 듣고만 계셨고. 그런데 내가 본 바로는 할머니는 당신 빨래를 결코 내놓은 적이 없었고, 언제나 직접 빨아 입으셨다. 그러니까 엄마가 할머니에게 어렵게 꺼낸 그 말은 냄새에 있었던 것이다. 냄새가 나니 속옷을 자주 갈아 입으시라는. 아마도 그 말을 꺼내기까지 엄마는 많이 고심하셨을 것이다. 어떻게 할머니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의미전달을 할 수 있을까로.
우리 가족에 대해 말하자면 할아버지는 한 분인데 할머니는 두 분이셨고, 젊어서는 한 집에 사시다가 중년에 이르러 작은 할머니가 따로 나가 사셨다. 그러니 우리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남편을 작은 할머니에게 뺏기신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늘 할머니를 존중하셨다. 하다못해 생선 장사가 와서 생선 한 마리 사더라도 꼭 할머니께 여쭙고, 할머니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사지 않으셨다.
"어머니, 갈치 좀 살까요?" "그거 살도 조금인데 뭐 먹을 거 있니." 그러시면 미련 없이 안 사셨고. "어머니, 밥맛 없으신 거 같은데 동태나 사서 저녁에 지질까요?" "마음대로 하렴." 그러시면 사서 얼큰한 동태찌게를 해서 저녁상에 올리셨다.
그런데 나는 그 어렵다는 시어머니 살림을 노인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내 마음대로 휘두르며 극성을 떤다. 어떤 집은 시어머니가 해 놓은 설겆이를 며느리가 다시 하는 바람에 싸움이 났다는 말도 있는데 말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하면서도 엄마 생각을 하면 가만히 노인의 표정을 살피게 되고, 저절로 노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열 번 말로 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게 낫다고, 못된 며느리라도 이럴 땐 엄마가 할머니에게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는 모양이다. 결혼하고 처음 노인을 모시고 백령도에 갔을 때 일이다. 우리는 신혼이지만 그렇다고 노인을 혼자 주무시게 할 수 없어 한 방을 썼다. 걸음도 더디고 행동도 더딘 노인. 우리끼리가 아닌 단체 여행이라 더 힘들었는데, 남편은 자기 엄마 땜에 하루에도 몇 번씩 열을 올려야 했다.
어머니는 늦은 걸음으로 따라 오시며 허리통증을 호소하셨는데 그때 기억해낸 게 혹시나하고 가져온 파스였다. 허리에 파스를 붙여드렸더니 한결 편하다며 고마워 하셨다. 그래도 나는 엄마처럼 살갑게 대해 드리지는 못했다. 그저 남편과 시어머니의 어정쩡한 부분만 메워주고 분위기 유지에만 신경을 썼다. 노인은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하시며 친구분들에게 며느리자랑을 하셨다는데.
평생을 어른을 모시고 사신 내 엄마의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이 부족한데도, 또 노인의 마음에는 아랑곳없이 노인의 살림을 좌지우지 하던 것도 그만 두지 못할 텐데도 말이다. 아무리봐도 낯설기만 한 노인, 언젠가는 빤히 보이는 곳에서 소변을 보시겠다고 바지를 내리신 적도 있다. 정말 급하면 타인의 시선쯤은 무시되는 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가 낯설어하는 게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우리가 노인들과 똑같은 처지가 돼 보지 않았으니 어찌 그분들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저 그분들 자존심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해석하면서 그분들 행동을 비웃는 거였지.
그러나 이제 그분들이 지니고 있는 그분들만의 사생활도 가끔은 들여다 봐야겠다. 우리와 똑같지만 우리보다 앞서 걸어서 우리보다 조금 더 지쳐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겠다. 우리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분들에게도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앞으로는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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