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미네르바 구속 이후 한나라당 내부에서 인터넷 규제에 대해 얼핏 엇갈려 보이는 목소리가 나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공성진 최고위원이다. 그는 "미네르바를 구속해서 수사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현실세계 못지않은 영향력으로 가상세계가 다가오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사이버 모욕죄 등을 추진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말해, 미네르바 구속을 계기로 잠시 유보된 인터넷 규제 법안을 다시 강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미네르바 사건과 연계하여 사이버 모욕죄 입법을 추진하려는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이번엔 홍준표 원내대표가 나섰다. 그는 "미네르바 사건을 사이버모욕죄와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됐다"며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 발언이다. "사이버모욕죄는 표현의 자유와 욕설의 자유가 대비되는 것이고, 미네르바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거짓말의 자유가 대비되는 것"이란다.
사이버 모욕죄는 발상 자체가 해외토픽감
두 사람 다 절반은 맞는 소리를 했고, 절반은 틀린 소리를 했다. 두 사람의 맞는 소리만 조합을 해보면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미네르바를 구속해서 수사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있다. 미네르바 사건을 사이버 모욕죄와 연결시키는 것은 잘못됐다." 박수 받을 만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말을 한 사람은 한나라당에 아무도 없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번엔 두 사람의 틀린 소리만 조합해보자.
"현실세계 못지않은 영향력으로 가상세계가 다가오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사이버 모욕죄 등을 추진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사이버 모욕죄는 표현의 자유와 욕설의 자유가 대비되는 것이고, 미네르바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거짓말의 자유가 대비되는 것이다." 이렇게 조합을 해놓으면 그 다음에 이어질 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욕설의 자유는 사이버 모욕죄로 틀어막고, 거짓말의 자유는 허위사실 유포죄로 틀어막아야 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한 사람은 아직 없다. 하지만 한나라당 구성원이라면 아마도 대다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공성진 의원과 홍준표 의원의 발언은 얼핏 엇갈려 보이지만 결국은 상호보완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한 마디로 "인터넷에서 욕하고 거짓말하면 처벌할 거야"라는 엄포다.
물론 욕설과 거짓말은 도덕률에 비춰보면 나쁜 짓이다. 그런데 문제는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욕설'과 '거짓말'의 의미가 유독 정부 여당에게만은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욕설'이란 정부 여당의 정책을 비판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거짓말'이란 일부 잘못된 예측을 하거나 혹은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알리는 행위이다.
결국 사이버 모욕죄건 허위사실 유포죄건 본질은 누리꾼들의 표현의 자유를 막는 악법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굳이 이것을 대비시키려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발언은 재치있을지는 몰라도 진실성은 결여된 표현이다.
미네르바 구속, '인터넷 규제법' 추진하는 정부·여당에 부담줄 것이미 누차 지적된 점이지만 정작 피해자가 고소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데도 글 게시자를 수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사이버 모욕죄는 발상 자체가 해외토픽감이다.
이번 미네르바 사건의 허위사실 유포죄도 마찬가지이다. 설령 그의 글에 허위사실이 있다 해도 이로 인해 구체적인 피해를 입은 자가 없는데, 이를 처벌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통 모를 일이다. 굳이 피해 사실을 만들려다보니 미네르바 글 때문에 외환보유고가 20억 달러나 소진됐다느니, 국가신임도가 떨어졌다느니 하는 궁색한 변명까지 나오게 되었다.
백번 양보해서 누리꾼 한 사람의 글 때문에 외환보유고 20억 달러가 날아간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미네르바를 탓하기에 앞서 부실한 외환관리 정책을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진짜 국가신인도가 떨어졌다면 그것은 미네르바의 글 때문이 아니라, 미네르바를 구속한 어처구니없는 짓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스 등 세계 유수 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조롱하고, '국경없는 기자회'가 성명서까지 발표한 것도 따지고 보면 미네르바의 글 내용이 아니라 미네르바를 구속한 사실 때문 아니던가?
미네르바의 구속은 인터넷 여론에 재갈을 물리고 싶어하는 정부 여당의 의도에 결국은 부메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장 미네르바라는 한 사람의 입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 공포 분위기를 형성함으로써 당분간은 누리꾼들의 정부 비판적 글쓰기를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은 이런 일시적인 효과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을 잃게 되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인터넷 규제법이 위험한 것이고 누구든 제2의 미네르바가 되어 구속 수사 당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모든 누리꾼들이 피부로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가 시위 소리를 지워버린 KBS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식 중계방송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언론, 특히 방송의 구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시청자들이 새해 첫날 새벽부터 현장실습교재로 열공했습니다." 이 말을 미네르바 구속 사건에 적용시켜보면 이렇게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정부 여당의 주장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여론, 특히 인터넷 여론의 규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누리꾼들이 새해 벽두부터 현장실습교재로 열공했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