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했을 때는 몸이 무거워서 집에서 주로 쇼핑을 했다. 임부복은 몇 달밖에 입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비싼 것을 살 필요가 없다. 주변에 아는 사람 있으면 물려 받아도 상관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내가 임부복을 입을 때 쯤 주변에 가진 사람이 없어서 난 모두 사야했다. 임부복 살 때 난 대부분을 인터넷 지마켓이나 옥션 같은 오픈 마켓에서 샀다.
가격도 저렴하고, 집까지 배달해 주고, 자주 이용하면 포인트가 쌓여서 배송료도 할인 받을 수 있다. 출산 후에는 아이들 분유와 기저귀를 살 때 주로 이용했다. 분유는 한꺼번에 6개나 12개를 사 놓고 먹였고, 기저귀도 한 상자씩 샀다.
그러다 아이들이 분유와 기저귀를 뗄 때 쯤 되어서 오픈 마켓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사실 임부복 외에도 출근하면서 입으려고 외출복을 몇 번 사긴 했는데 입어보고 산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크게 만족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작년 12월부터 오픈 마켓 출입이 잦아졌다. 내가 구매자가 아닌 판매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파는 물건은 시부모님께서 농사 지으신 무와 감자이다. 참기름도 판매하긴 하지만 워낙 값이 비싸서 그런지 거의 주문이 없다.
광고 이미지는 남편이 직접 만들었다. 감자 사진을 찍고, 부모님 사진을 찍어서 디자인도 직접 했다. 12월 17일에 첫 주문이 들어 왔다. 처음에는 마포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의 주문이 다였다. 그러다가 '진짜' 고객의 주문이 하나둘 들어오더니 어느새 하우스에 쌓여 있던 감자와 무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는 다 팔렸고 감자도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그전에는 부모님도 농산물을 도매시장에 팔거나 밭떼기로 넘기셨다고 한다. 마늘이나 양파는 그렇게 파시는 것 같다. (사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파시는지 난 잘 모르고 있다.)
감자도 도매시장에 넘기려고 하셨는데 남편이 팔아보겠다고 하니까 어머님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러라고 하셨다.
종자값 등 이것저것 합치면 많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도매시장에 넘기면 이만큼도 사실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농산물 유통 단계가 많다는 뜻이다. 여기에 감자를 캐고 담는 일에 드는 인건비에 포장자재 값 등이 더 들어간다.그런데 이렇게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를 하니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에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일이려니 하고 보던 오픈 마켓에서 부모님 사진을 보는 것도 기분이 색달랐다.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그러면서도 죄송스러운 느낌이다. 그런데 감자도 다 팔면 뭘 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