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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경내에서 바라본 두륜산. 마치 와불(臥佛)처럼 누워 있다.  사진 오른쪽 봉우리는 부처님 얼굴, 가운데 봉우리들(노승봉과 가련봉)은 부처님 가슴, 왼쪽 봉우리는 부처님 발처럼 생겼다.
대흥사 경내에서 바라본 두륜산. 마치 와불(臥佛)처럼 누워 있다. 사진 오른쪽 봉우리는 부처님 얼굴, 가운데 봉우리들(노승봉과 가련봉)은 부처님 가슴, 왼쪽 봉우리는 부처님 발처럼 생겼다. ⓒ 김연옥
 

가련봉(703m)·노승봉(688m)·고계봉(638m)·두륜봉(630m) 등 높고 낮은 여덟 개 봉우리가 둥근 모양으로 능선을 이루고 있는 해남 두륜산(703m·전남 해남군 삼산면). 그 형세가 마치 신화 속에 등장하는 거인이 오른손을 오목하게 모아 여덟 봉우리를 들고 있는 듯하다.

 

해남은 섬을 제외하고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거리상 늘 멀게만 느껴져 산행을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난 13일, 마침 두륜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어 그들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오전 8시에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매표소를 거쳐 대흥사(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부도밭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낮 12시께였다. 13대종사(大宗師)와 13대강사(大講師)를 배출한 대흥사의 부도밭에는 임진왜란 때 73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섰던 서산대사의 부도(보물 제1347호)를 볼 수 있다.

 

대흥사 부도전을 지나가는 등산객들.  
대흥사 부도전을 지나가는 등산객들.  ⓒ 김연옥

 
해탈문 안으로 들어서자 대흥사를 품고 있는 두륜산이 와불(臥佛)처럼 누워 있었다. 아스라이 보이는 노승봉과 가련봉의 모습이 흡사 부처님 가슴 같이 생겨 몹시 신기했다. 나는 서산대사를 모시는 사액사당(賜額祠堂)인 표충사(表忠祠·전남기념물 제19호)를 지나 하얀 눈이 쌓인 등산로를 따라 걸어갔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에 괜스레 마음마저 상쾌했다.

 

얼마 걷지 않아 눈길이 하도 미끄러워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 밑에 덧신었다. 그렇게 40분 정도 걸었을까, 북미륵암에 도착했다. 북미륵암 용화전 안에는 제작 시기가 고려 초기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이 있다. 둥글넓적한 얼굴이라 온화한 느낌을 주면서도 굳게 다문 입, 어깨까지 닿을 만큼 길게 늘어진 큼직한 귀, 유난히 굵고 짧은 목 등으로 근엄한 인상을 풍겼다.

 

그리고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에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얹은 뒤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놓고 앉은 길상좌(吉祥坐)를 하고 있었다. 머리 광배(頭光)와 몸 광배(身光)는 세 겹의 선을 두른 원으로 아무런 꾸밈 없이 테두리 상단에만 불꽃무늬가 장식되었다. 그 바깥쪽 위아래로 대칭이 되게 배치된 천인상들은 부드럽고 날렵한 모습에 세련미마저 돋보여 내 마음을 끌었다.

 

대흥사 북미륵암 용화전 안에 모셔 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용화전 안에 모셔 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  ⓒ 김연옥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 김연옥

 

용화전 밖에 서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또한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몸돌 네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북미륵암에는 삼층석탑이 두 개나 있는데, 용화전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세워져 있는 동삼층석탑(전남문화재자료 제245호)도 볼 만하다. 자연 암반 위에 단층 기단부와 탑신부를 조성하여 만든 탑으로 지대석 역할을 하는 자연 암반과 기단 사이에 벌어진 빈틈으로 빗물이 새지 않도록 기단부 밑에 깊이 15cm 정도 되는 두 줄의 홈을 파 놓았다 한다. 선조들의 지혜와 섬세함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노승봉 정상 길에서 죽다 살았다

 

노승봉 아래 헬기장에서.  
노승봉 아래 헬기장에서.  ⓒ 김연옥

 

고계봉과 노승봉이 바라보이는 오심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10분께. 케이블카로 오를 수 있는 고계봉(638m)은 KBS 2TV 오락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 1박2일>에 소개되기도 했다. 우리 일행 가운데 선두에 서서 먼저 올라간 사람도 몇몇 되지만 대부분이 눈길이 미끄러워 위험하다며 돌아가 버려 나는 혼자서 노승봉 쪽으로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노승봉 아래 헬기장에 이르렀는데, 그때만 해도 하얀 눈길은 내겐 낭만이었다. 더욱이 거기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통천문을 연상하게 하는 바위를 어렵게 통과했을 때도 "힘겨워도 난 할 수 있어!" 하며 내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여겼다. 로프, 쇠고리와 쇠발판 등 보조 장치가 잘되어 있어 정말이지, 얼어붙은 눈만 아니면 스릴 넘치는 바위였다.

 

노승봉 가는 길에 바라본 고계봉(638m)의 모습.  
노승봉 가는 길에 바라본 고계봉(638m)의 모습.  ⓒ 김연옥

통천문을 연상하게 하는 바위를 오르는 등산객들.  
통천문을 연상하게 하는 바위를 오르는 등산객들.  ⓒ 김연옥

칼바람이 불어 대던 노승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련봉(703m)의 모습.  
칼바람이 불어 대던 노승봉 정상에서 바라본 가련봉(703m)의 모습.  ⓒ 김연옥

 

그러나 노승봉 정상으로 오르는 구간에서는 쌓인 눈이 얼어붙은데다 칼바람이 엄청스레 불어 대는 바람에 잔뜩 겁을 먹어 버렸다. 손도 얼어 버려 잡고 있는 로프를 어쩌다 놓치면 끝장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아찔했다. 우리 일행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마침 부산에서 온 산악회 사람들 몇몇이 올라오고 있었다. 도저히 혼자서 올라가기에 위험한 곳에서는 어떤 아저씨에게 좀 밀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살 둥 죽을 둥 힘들게 올라간 노승봉 정상에도 가만히 서 있지 못할 만큼 차가운 바람이 엄청 불어 댔다. 노승봉(688m) 정상 표지석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가련봉(703m)으로 가기 위해 노승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 반갑게도 우리 일행과 마주쳤다.

 

그 아저씨는 가련봉으로 가다가 그냥 되돌아오는 길이라며 하산 시간에 맞추려면 늦으니까 같이 내려가자고 했다. 벌써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하산은 4시까지였다. 무엇보다 노승봉 정상에서 일행 없이 혼자서 그 미끄러운 눈길을 내려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도움을 받으며 조심조심 내려갔다.

 

오심재 억새밭 풍경.  
오심재 억새밭 풍경.  ⓒ 김연옥

 

오심재에 이른 시간이 2시 40분께. 거기서 자리 잡고 도시락을 먹었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고계봉 아래로 바람결 따라 한쪽으로 일제히 드러눕는 오심재 억새풀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문득 통천문 바위를 통과해서 내려오다 얼어붙은 바위에 이마를 쿵 박은 일이 떠올라 이마를 만져 보니 제법 아팠다.

 

북미륵암을 지키는 북암이.  북미륵암을 북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개 이름도 '북암'이다.
북미륵암을 지키는 북암이. 북미륵암을 북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개 이름도 '북암'이다. ⓒ 김연옥

 

마산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얼어붙은 눈길 탓으로 가지 못한 가련봉과 두륜봉이 못내 아쉬웠다. 언젠가 다른 계절에 꼭 한 번 더 가야겠다. 개를 몹시 좋아해서 그런지 무엇보다 하산길에 북미륵암에서 만난 '북암'이란 의젓한 개도 또 보고 싶어진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해남읍→완도 방면 13번 국도→(왼쪽) 대흥사 가는 806번 지방도로→신기리에서 오른쪽 806번 지방도로→대흥사 주차장


#해남두륜산#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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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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