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서울시 강북구 인수동 인근에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가정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여성 12명과 도우미 3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깊은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장수옥 원장을 만나 어떻게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실제 생활은 어떠한지 물었다.
"8년 전부터 '여성의전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시설에서 일을 했어요. 하면 할수록 짧은 프로그램으로는 피해자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활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해자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길게 만나면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그래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중장기적인 보호 시설을 마련해서 운영하기로 했지요. 이제 2년이 되어가네요."
장 원장이 시원하게 말해서 마음먹은 뒤 뚝딱 건물을 마련하고 손쉽게 2년을 보낸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설마 싶어 이것저것 물으니 만만치 않았던 여정을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우리가 살 집이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내담자 집에서 시작했지요.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하더라고요. 손 벌리지 않고도 다시 일어 설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함께 힘을 모았어요. 다행히 SH공사에서 현재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무료로 임대했어요. 보호시설로서 법적 요구사항을 맞추려고 리모델링까지 해주었지요."
시민사회복지단체들은 보통 후원금과 후원자를 모으려고 홍보에 신경 쓴다. 하지만 이곳 사정은 다르다. 피해자 신변을 보호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주소도 비밀이고, 자녀들 전학도 몰래 해야 한다.
"이곳은 피해자 신분 노출을 피하려 우편도 우체국 사서함을 사용할 정도에요. 모든 것을 비공개하는 게 원칙이지요. 대놓고 후원받기 어렵지요.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기에 아름아름 지인들을 통해 지원을 받고 있어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웃에 살아도 웬만큼 주변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 턱이 없다. 인터뷰하는 동안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고, 그 때마다 장 원장은 차근차근 풀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가정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설의 역사도 곁들였다. 이웃도 모르는 피해자들의 하루는 어떨까.
장수옥 원장이 이야기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의 역사 |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시설의 역사는 대략 이래요. 97년부터 가정폭력특별법이 지정됐죠. 법에 따라 상담소와 피해 보호 시설이 생겼는데 내실이 없이 난립한 면이 있어요. 피해자를 상담/보호한다는 뜻은 좋지만 새로운 삶을 찾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면은 빈약했지요.
보통 시설에서 피해자들은 3개월 정도 쉼과 자활 시간을 갖지만 치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죠. 더구나 자녀와 함께 시설에 들어올 수 없기에 모성애가 강한 여성일수록 시설에 있기가 어려워요. 이후 법이 개정돼 자녀와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고, 6개월에서 길게는 9개월까지 보호 시설에 있을 수 있어요.
사실 6개월도 짧아요. 이후 2006~7년부터 중장기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흐름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래서 이곳처럼 ‘중장기 쉼터’와 ‘주거 지원 사업’이 생겨났지요. 여성부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2010년까지 540여 호, 2012년까지는 1000호를 확보해 최장 4년간 빌려준다는 계획을 짜놓았다고 해요.
두 사업 모두 장단점이 있어요, ‘장기 보호 시설’은 피해자 신분을 노출할 위험은 적지만 아들과 함께 생활할 수는 없어요. 여성들만 있어서 그래요. 주거 지원 사업은 반대로 아들과 생활할 수 있지만 주소지가 알려져 신변을 보호하기 어려워요. |
"대부분 식당에서 일해요. 식당 말고는 갈 곳이 없어요. 일용직 노동으로 일하고, 이직율도 높은 편이에요. 당연히 돈은 많이 못 벌어요. 아침 7시에 나가 밤 9~11시에나 들어와요. 그렇게 일하고도 많이 버시는 분이 고작 70만 원 정도니까요. 정부가 생활비(의식주 비용)를 지원하지만, 자녀들 교육하고 이것저것 사면 빠듯하다는 걸 알지만, 제가 일일이 통장을 확인해서 저축 상황을 체크해요. 냉정하다 싶지만, 그렇게 안 하면 자립하기 힘들어요. 눈 딱 감고 싫은 소리해야죠."
어른은 어른이라서 고생을 참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지내는 걸까. 굶지 않는다고 사는 건 아닐 텐데, 아이들 생활을 듣기 전부터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엄마들은 아이 돌볼 시간이 없어요. 현재 아이 일곱이 함께 사는데, 방과 후 학교에서 돌아온 5시부터 9시까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요. 낮에 2명, 밤에 1명이 도와주지만 처리해야 할이 많이 쌓여서, 아이들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수 없어요. 나 혼자는 아이 일곱을 감당하기는 힘들더라고요. 늦은 시간까지 돌봐줄 방과 후 학교를 세울 생각도 해요."
장시간 노동과 박봉, 열악한 자녀 교육 환경, 이들을 도울 인력 부족.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해가려고 시도하는 원장님과 '가족'들의 노력이 눈물겨웠다. 1년 가까이 이렇게 살다가 다시 세상으로 나가면 어떻게 살까. 대답이 희망적이 않아 다시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까지 12명이 이곳에서 살다가 나갔어요. 그런데 고단하고 절망적인 삶을 넘어선 사람은 찾기 힘들어요. 몸이 아파서 아르바이트밖에 못하는 사람이 있고, 남편이 조폭이라서 이혼 요구도 못하고 숨어 사는 사람이 셋이나 돼요. 자녀 둘을 키우려 폭력을 일삼는 남편에서 손을 벌리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여성도 있어요."
상황이 이런데 프로그램 한번으로, 잠깐 쉼터에서 생활한다고 문제가 풀릴 리 없다. 누구보다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장 원장은 시설을 나간 사람들과도 꾸준히 만나며 그들의 삶을 지켜보고 지탱해지고 있었다.
"절대 신분 노출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조금만 잘해줘도 쉽게 마음을 여는 피해 여성들은 또 다른 어려움을 겪어요. 한 분은 식당 주인이 잘 해주기에 마음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데요. 그런데 주인 태도가 점점 변하더니 많이 부려먹고 봉급도 안 주더래요. 어떤 사람은 '네 신분을 알려버리겠다'며 갖은 협박을 해요. 한밤중에도 도움을 요청하면 달려나갈 수밖에요."
일어서기 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건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발 앞에 떨어진 문제를 풀기도 버거운 사람들에게 내일을 묻는 게 사치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무슨 꿈을 꾸는지 궁금했다. 짧은 답이 돌아왔다. 이들에게는 오늘의 과제가 내일의 숙제이기도 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돕는 과제는 두 가지에요. 엄마들의 생활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피해자 자녀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