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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설레네."

아무도 밟지 않은 돌계단을 바라보고 있으니, 가슴이 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닌 계단이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다르다. 하얗게 눈이 내린 돌계단이다. 눈이 내린 뒤로 아무도 밟지 않은 계단이다. 눈이 내린 돌계단을 처음으로 밟고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는 것이다.

위봉사 겨울 산사
위봉사겨울 산사 ⓒ 정기상

하늘에서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는데, 산사에는 아무도 없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무리 산사라고 하여도 조용한 분위기를 찾아 찾은 사람이 한둘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실제로 겨울 산사를 찾으면 의외로 절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돌계단 눈 내린
돌계단눈 내린 ⓒ 정기상

위봉사.
전북 완주군에 위치하고 있는 산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얗게 내린 돌계단을 처음으로 밟으면서 올라가는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가슴을 뛰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열리는 세상 새로운
열리는 세상새로운 ⓒ 정기상

한 계단 오르고 또 한 계단 오르니, 눈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널따란 절 마당 한 가운데 있는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고 동시에 대적광전이 가슴에 들어온다. 소나무 아래에는 세월의 연륜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달아버린 석탑이 함께 서 있었다.

소나무와 석탑 세월에 닮아버린
소나무와 석탑세월에 닮아버린 ⓒ 정기상

돌계단의 맨 위에 서 있으니, 우주가 들어온다.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다고 생각하니, 저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그 힘은 분명 다른 세상의 힘이었다. 삶의 욕심으로 인해 온 몸에 배어 있는 세진들을 말끔하게 씻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온 몸에 묵은 것들은 모두 다 빠져나가고 대신 싱그러운 것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종루 생각을 하게 하는
종루생각을 하게 하는 ⓒ 정기상

새롭게 변한 모습이 바로 본래 진면목이 아닐까? 나를 여러 겹으로 싸고 있던 수많은 껍데기들을 모두 다 떼어버린 원형이 아닐까? 욕심으로 꾸민 미소가 아니고, 마음을 숨기기 위하여 위장한 외모가 아니다. 원래의 모습, 무아의 경지에서 볼 수 있는 본래진면목이 아닐까? 가슴이 뛰고 힘이 솟구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 아닐까?

기와 위의 눈 마음을 다스려주는
기와 위의 눈마음을 다스려주는 ⓒ 정기상

하얀 눈이 내린 돌계단 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산사의 지붕에도 하얀 눈이 빛나고 있었다. 까만 기와 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이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다. 하얀 눈이 내리고 있는 겨울에 산사를 찾아 처음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처음의 경이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산사의 겨울이 정말 곱다.

덧붙이는 글 | 서진은 전북 완주군 위봉사에서 직접 촬영



#산사#눈#돌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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