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해발 1500m, 진달래 밭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달콤했습니다. 진달래 밭에서 30분을 걸으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구름, 산, 바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인데도 한라산의 겨울 풍경은 신기루 같았습니다. 흔히 제주도를 일컬어 축복받은 사람들이 사는 터라 말한다더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한라산 성판악코스에서부터 3시간 이상 눈길을 걸었더니, 잠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걸음걸이도 눈앞에 펼쳐지는 설경의 풍경 속에 홀라당 빠져버리고 말았지요.
뽀드득-, 뽀드득-. 1m가 넘게 쌓인 겨울 산에서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연의 소리 그 자체였지요. 설경과 자연의 소리는 하모니였지요. 등산로 폭이라야 50cm 정도 될까요. 어느새 정상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르더군요.
한라산 정상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코스는 해발 1800m부터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한라산 성판악 코스가 완만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발 1800고지에 서면 ‘산은 산이로다.’라는 말을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구상나무의 설경은 1월의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또 하나의 풍광은 파란 하늘에 피어나는 운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구름 조각들은 마치 바다 같았습니다. 아니 우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신기루처럼 펼쳐진 산 아래 풍경들, 마치 비행기를 탄 기분이었죠. 한라산을 휘감고 올록볼록 솟아 있는 제주의 오름들. 한라산 능선과 해안선의 조화, 그리고 수평선까지 흐르는 구름의 묘기는 장관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만 감탄사를 토해내면 삶이 즐거워진다’고 누가 말했던가요. 요즘같이 재미없는 세상에 살면서도 겨울 산에 오르니 감탄사가 봇물처럼 터지더군요.
정상으로 치달리는 마지막 코스는 해발 1850m. 계단이 놓여 진 등산코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 속에 덮여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팡이의 소중함을 느껴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것인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인지. 눈길에 서서 가파른 산등성이를 바라보니 앞서가던 사람들이 하늘을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 등성이를 돌아가니, 서귀포시의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섬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칠십리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희열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지요.
드디어 해발 1950m. 하얀 사슴이 살고 있다는 백록담, 신선이 하얀 사슴을 타고 백록담에 와서 물을 먹었다지요. 그 연못은 설원의 땅이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연못은 순백의 정원 그 자체였습니다. 깊이가 110m, 화구의 둘레가 3km인 화구호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화산의 터를 바라보며 내가 던진 감탄사는 그저 ‘와아-’, 한마디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