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대한민국에서 '우리 옷' 한복을 제대로 입을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 중 몇 %나 될까요? 해마다 명절이 되면 인터넷뉴스에 단골로 나오는 것이 바로 '한복 입는 법'입니다. 기본적인 내용임에도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한복을 잘못 입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테지요.
이러한 글을 쓰는 저도 사실은 한복을 '멋있게' 입지 못합니다. 바지 허리끈을 단단히 묶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바지가 조금 흘러 내려갈 때가 간혹 있기 때문이죠. 허리끈이 벨트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신체적인 특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허리끈과 대님이 간소화된 한복이 등장했지만, 그래도 전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개량되지 않은 한복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복 입는 형식을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죠. 저고리 고름 매는 것과 바지 대님 묶는 법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여성분들 같은 경우에는 남성분들 보다 한복 입을 기회가 많기 때문에 저고리 고름은 쉽게 매실 수 있지만 '한복 입을 기회가 적은' 남자분들이 자주 실수합니다.
남자 한복은 저고리 위에 조끼와 마고자를 입는 구조이기 때문에, 저고리를 일부러 매지 않거나 끈을 조끼 주머니로 집어 넣거나 아무렇게나 질끈 묶는 남자 분들이 계십니다. 대님 같은 경우에도 편한대로 묶는 분들이 있죠. 그런가 하면 저의 친척중 두 분은(워낙 친척이 많아서) 아내 도움 없인 저고리 고름도 못 맵니다. 국민 대부분이 평소에 한복을 입지 않으니,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명절 행사 때 한복입고 일하시는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대형 마트나 의류상가에서 한복입고 근무하시는 도우미 분들이나 야외 행사에서 한복입고 일하는 분들 중에 한복 입는 형식을 모르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분들은 사람을 대하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미지'가 중요한데 옷을 제대로 못입은 상태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평소 행사 업무에서는 직원이나 도우미들의 용모단정이 중요시 되었지만, 특이하게도 한복은 늘 예외였습니다. 명절이니 한복을 입고 일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문제는 제대로 못입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죠. 더욱이 명절 행사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복 특유의 단아함과 전통의 미를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큽니다.
제가 작년 추석 때 서울광장에서 열린 명절 행사에서 도우미로 일했었는데요. 업체 측에서 한복 입고 근무한다는 사전 통지를 하지 않아서 '이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서울광장에서 '일회성' 도우미로 일했습니다. 결국에는 도우미 모두 업체측에서 준비한 한복을 입고 근무하게 되었는데, 저고리 매는 법을 모르는 남성분들이 절반 정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고리 고름 묶을 줄 아는 사람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다른 분들은 고름 대충 말아 올리거나 리본처럼 묶고 일을 하게 됐죠.
남성분들 중에서는 반팔을 그대로 껴입고 근무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이날 날씨가 더워 저고리-바지만 입고 근무했기 때문에 자기 맨살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죠. 더구나 한복 사이즈가 자신의 몸에 제대로 맞는 것이 아니어서 반팔을 껴입고 근무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안에 입은 티셔츠 색은 흰색을 비롯해 푸른색, 검정색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한복 저고리 안에는 반팔을 껴입지 않는 게 맞습니다.
여성분들 같은 경우에는 귀고리를 착용한 상황에서 한복입고 근무를 하더군요. 원래 한복을 입었을 때는 귀고리를 비롯해 목걸이나 짙은 화장 등은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고리 맨 위에 하얀색 부분(정확한 이름은 동정)이 악세사리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중1 가정 시간에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상들의 '센스'라 할까요) 장신구가 있을 필요가 없죠. 그리고 한복입을 때 진주 목걸이로 멋을 내시는 여성분들이 있는데 이것 역시 불필요합니다.
대형 마트나 의류매장 같은 곳에서 한복입고 근무하시는 여성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복에 셔츠와 바지를 껴입다 보니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요(물론 셔츠 입지 않고 근무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는 속옷을 제대로 갖춰입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여성 한복 속옷 구성은 속치마, 속바지, 적삼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원래는 이것보다 더 많았는데 세월이 흘러 세 종류로 간소화 되었습니다) 대개 속치마만 입고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 한복 특성상 속치마와 그 밑부분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속에 껴입은 바지가 노출 될 수밖에 없죠.
문제는 속옷을 아예 입지 않고 근무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작년 설날 전 모 의류 매장에서, 그리고 어제 모 대형 마트에서 본 한복 입은 도우미들은 기존 셔츠와 바지에 '속옷 없이' 한복 입고 근무를 하고 있더군요. 한복에 관심 있으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속옷 입은 사람과 안 입은 사람의 차이는 금방 드러납니다. 한복의 품격을 높이려면 속옷을 입어야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죠. 업체측에서도 그저 '한복만 입으면 그만이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우미들의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업체측에서 명절 행사 때 도우미들에게 한복을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어떤 곳에서는 도우미가 직접 한복 입기도 하지만), 여성 한복 같은 경우 속옷이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설령 지급된다고 하더라도 속치마만 이뤄질 뿐 속바지나 적삼까지 갖춰주지 못하죠. 고무신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개량 한복을 지급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원래 한복은 우리나라 대표의상이자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옷이지만 현대 사회에 접어들어 간편화된 옷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이는 명절 행사에서 한복을 제대로 못입는 분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한복은 우리들에게 '명절에만 입는 옷'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요즘에는 명절에 한복입지 않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죠. 이제는 명절 행사에서 마저도 한복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옷이자 한국의 자랑인 한복, 소중하게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유명 연예인이 중요한 자리 혹은 국제 행사에서 한복입고 등장하는 모습을 반갑게 받아들입니다. 한복이 한국 고유의 미를 상징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정작 우리가 한복 입는 법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돌이켜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복이 앞으로 영원히 변치 않을 '한국의 자랑', '한국 고유의 미'로 남으려면 우리들이 한복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pulse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