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오전 8시쯤 방비엥의 버스터미널로 갔다. 라오스의 옛 수도이며 관광지인 루앙푸라방으로 가기 위해서다. 버스시간표를 보니 오전 9시(미니버스)와 10시(VIP버스) 두 편의 버스가 있다. 아직 버스 출발시간이 멀었는지 주위에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미니버스는 12인승 봉고차로 요금은 VIP버스(약13000원)보다 조금 더 비싸다.
이곳 방비엥에서 머물렀던 숙소는 호텔(약6만원)로 우리나라 2급 호텔수준이다. 이곳 숙박사정은 꽤나 좋은 편인데, 게스트하우스라 불리는 숙박업소가 아주 많다. 오천원부터 이 삼 만원까지 가격이 매우 다양하며 깨끗한 편이다. 다만 물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이용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어 다소 불편함이 따른다.
잠시 후, 기다리던 봉고버스가 왔다. 승차인원 12명중에 한국 사람은 나와 아내를 포함하여 3명, 9시가 조금 지나자 버스는 루앙 푸라방을 향하여 서서히 출발을 한다. 봉고차는 버스에 비해 실내공간이 좁다 보니 몸을 움직이는데 많은 불편함이 따른다. 더구나 내가 앉은 자리는 맨 뒷좌석 가운데로 머리 받침대가 없어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앉아 7시간 이상을 타고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선다.
방비엥을 떠난 미니버스는 곧 험한 산길로 들어선다. 강원도의 험준한 산맥을 오르듯 구불구불한 산길이 이어지고 버스는 그 험한 산길을 곡예를 하듯 잘도 달린다. 지나는 길가엔 간간이 민가가 있을 뿐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창밖으로는 주변 산봉우리들이 주마등처럼 계속 이어진다.
잠시 쉬어 산 아래 멋진 풍경도 감상하고, 현지인들의 구성진 아리랑도 들어봤으면 좋으련만, 젊은 기사 양반은 별세계 사람처럼 속도를 더 내며 계속 전진만 할 뿐이다. 버스가 산등성으로 올라서자 길가를 따라 지어져 있는 집이 여러 채가 보인다. 이 높은 고산지대에도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몇 가구씩 모여 사는 작은 산마을은 계속 이어지는 산등성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이 높은 곳에서 뭐하며 사는 걸까? 먹는 것은 산에서 구한다 치고 물은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마을에 잠시 내려서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깝다.
버스를 뒤쫒던 햇살은 어느새 산등성이 위로 올라서 산 아래를 수직으로 비춘다. 멀리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강도 호수도 전혀 보이지 않고 뿌연 날씨 속에 오직 산들만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제 버스 안은 조용하다. 앞자리에 앉아 계속 스킨십을 하던 금발의 젊은 남녀도 지루한 모양인지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졸고 있다. 아내는 멀미가 많이 나는가 보다. 힘없이 옆에 놓인 배낭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다. 아무데서나 잠시 쉬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때 창밖을 보자 아이들이 줄지어 책가방을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간다. 곧이어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나고 상점들이 길가에 늘어서 있다. 잠시 후 버스는 기다리던 넓은 광장으로 들어선다. 게다가 음악 소리까지 들려오는 고산지대의 휴게소. 아! 얼마나 반가운지! 모두들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차에서 내린다. 4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달려와 쉴 수 있는 꿈같은 휴게소다. 이곳에는 여러 음식점과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음악까지 흘러 나와 제법 휴게소 분위기가 살아난다.
화장실(요금 250원 정도)을 갔다 온 후, 음식점을 둘러보니 먹을 만한 메뉴가 없다. 가판대에서 파는 샌드위치를 사서 간단히 먹고 큰길로 나가 보았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자아이들은 가슴에 책을 앉고 친구들과 다정히 걸어가는데, 발걸음이 가볍고 표정이 매우 밝아 보인다. 그들에게 다가가 "싸바이디"라고 인사를 건네며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들은 쑥스러운 모양이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흰 셔츠와 검정 치마를 입고 비포장 길을 걸어가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옛날 우리나라 학교길 풍경을 보듯 시골스럽고 순박한 모습이다. 그들이 지나가는 큰 길옆으로 나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어린아이들이 마당에 털석 주저앉아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얼마나 짓궂게 놀았는지 온몸이 흙투성이다. 이를 본 엄마가 다가와서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뭐라고 야단을 친다.
고산지대에 맑은 햇살이 흐드러지게 쏟아진다. 마을거리를 강아지와 닭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마치 고향마을처럼 말이다. 골목을 돌아 나오다가 물이 가득 들어 있는 물통을 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된 물통이었는데 먹는 물 같았다. 주변에 앉아 있는 젊은 사람에게 무슨 물이냐고 물어보니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아마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어디서 길어다 놓은 모양이다.
잠시 후, 미니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다시 달려가기 시작한다. 분명 내리막길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달려가야 할까?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가지고 있던 지도를 보고 몇 번을 보아도 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만 간다. 그렇게 3시간 남짓 달리자 구릉지대가 나타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터미널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
주변에 툭툭이가 지나가고 시멘트 건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버스는 어느새 정류장으로 들어서며 하차를 기다린다. 짐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자 툭툭이 기사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점잖게 "툭툭"이란 말을 건넨다. 툭툭이를 이용해 달라는 말씀 같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이라도 나와 반겨주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장시간 버스를 타고 나니 더 이상 아무것도 타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숙소도 미리 예약을 할 겸 시내를 걸어서 가기로 했다. 다행히 짐도 별로 없고 큰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걸어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거리에서 시내모습을 바라보았다. 높은 건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시내 한 가운데에 서울 남산보다 작은 산이 자리하고 있고 그 꼭대기에 탑이 하나 솟아 있다. 나중에 안 일지만 이곳이 일명 푸시산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일몰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저녘이면 많은 사람들이 올라 멋진 일몰을 감상한다고 한다. 물론 이곳에도 입장료(1000원 정도)가 있다.
1353년부터 600여 년 간 라오스의 옛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은 옛날 왕궁과 수많은 불상으로 가득한 사원을 그대로 잘 간직한 유서 깊은 역사 도시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할 만큼 세계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도시의 문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사원, 왕궁, 전통민가 그리고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의상과 풍습은 물론 30∼40년대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국제공항이 있는 루앙 푸라방은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직접 들어올 수가 있으며, 캄보디아, 훼이싸이 등으로 가는 배편이 발달해 있는 교통의 중심지로 약 2만명 정도 인구가 산다.
시내로 들어오면서 머무를 숙소를 살펴보았다. 여러 형태의 숙박업소가 제법 발달해 있다. 호텔도(11개 정도) 도시 규모에 비해 많이 있고, 게스트 하우스도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시내를 구경할 생각으로 30분 정도 걸어가자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메콩강 주변에 이른다. 이곳에는 여러 음식점과 툭툭이가 진을 치고 있고, 세계의 여행객들이 강변 카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강변 맞은편에는 도로를 따라 게스트 하우스와 상점이 길게 들어서 있다.
강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숙소를 정하기 위해 메콩강 강변을 걸어 보았다. 툭툭이
기사 외에는 적극적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이 없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 푸시산 뒤쪽으로 걸어가자 비교적 깨끗한 숙소가 보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가격을 물으니 생각보다 비싸다(35달러). 하지만 더 이상 가격 할인은 되지 않을 것 같다. 방 안을 살펴보니 호텔보다는 좀 많이 떨어지고 게스트하우스보다는 시설이 제법 갖추어진 것 같다. 아마 이곳도 강변주변이라 좀 비싼 모양이다. 내일 이른 아침에 있는 스님들의 행렬을 보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이 이곳에 숙소를 정해야 할 것 같다.
저녘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시내거리로 불빛이 하나 둘 새어 나온다. 시간을 보니 6시가 넘었다. 메콩강변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떨어지는 일몰을 보고자 고개를 비쭉 내미니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빈 배만이 포구에 묶여 몰려오는 어둠만 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