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 남부시장 하늘정원 한 편에서는 도란도란 정다운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자분자분한 이야기 소리는 끊길듯 말듯 들렸다가 까르르 웃는 소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웃음꽃의 근원지는 '할머니 공방'이다.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으면서 이야기꽃도 더불어 피어난다.
'할머니 공방'은 공공작업소 심심과 G마켓이 공동지원한 사업으로 오래된 물건이나 버려진 물건을 리폼하여 할머니들이 전통디자인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공공작업소 심심 측은 작년 9월, 총 8주간의 교육기간을 통해 할머니 공방의 새 안주인이 될 세 명을 선발(?)했다. 여기에 뽑힌 솜씨좋고 맵씨좋고 눈썰미 훌륭한 이 세 명의 주인공을 지난 16일 만났다. 그녀들로부터 살맛나고 즐거운 공방이야기를 들어본다.
#1 '이 나이에도 뭔가 할 수 있구나' 감격
이인자 할머니(68) : "할머니 공방을 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특별히 수공예를 한 적은 없었지. 물론 바느질이야 많이 했지만 아이들 양말을 꿰맨다거나 터진 옷감을 잇는 정도였지, 별다른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했지.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공방교육 광고를 보게 되었어.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정말 재미있는 거야.
뭐가 제일 기뻤냐면 '내가 이 나이에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여태 모르고 살았는데, 모르고 살았어도 어떻게든 살았겠지. 그런데 이걸 모르고 죽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전시회 앞두고 다포나 가방같은 걸 만들고 있으면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아마 처음 데이트했을 때도 이렇게 설레지는 않았을 걸. 가방을 이렇게 만들면 좋을까, 저렇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고 있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라."
#2 내가 번 돈으로 손자손녀 용돈 주는 재미, 쏠쏠해송순덕 할머니(71) : "사람들은 내가 재봉틀질하는 걸 보면 깜짝 놀라. 이 나이에 안경도 안 쓰고 어떻게 바느질을 할 수 있느냐고(웃음).
자식들은 내가 여기(공방)에 나가는 거 반대해. 어깨도 아프고 눈도 아픈데 뭐하러 나가서 고생하느냐고. 그런데 아프기는커녕 얼마나 재미있고 살맛나는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지. 내 걱정해주는 거야 잘 알겠지만 정말 건강을 생각한다면 노인들에게 일거리를 줘야 하거든. 아침밥 먹고 버스 타고 여기 오면 9시정도 되거든. 점심먹기전까지 부지런히 만들다보면 정말 밥맛도 나고 몸도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
요즘은 길을 지나다가 예쁜 공예품이나 커튼 같은 것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보게 되더라고. '응 이건 저렇게 하면 예쁘겠다, 다음엔 저렇게 한번 만들어봐야지' 머릿속에서 혼자 상상하다 보면 어찌나 즐거운지. 이렇게 머리를 쓰는 게 치매예방에도 좋은 것 같아.
돈도 벌어서 좋지. 돈 싫다는 사람 어딨어. 자식들이 용돈 주지만 내가 직접 번 돈하고 어디 같겠어? 내가 번 돈으로 손주들 과자라도 하나 사주고 용돈이라도 주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3 "일 욕심? 할머니들도 만만찮아" 박영예 할머니(69) : "우연히 어르신 일자리 취업센터에서 강좌를 보았지. 처음엔 동화구연을 했는데 나하고는 영 맞질 않아서 그만두었어. 나중에 보니까 공방 교육이 있더라고. 예전에 남편하고 양복점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이 편이 훨씬 낫겠다 싶어서 신청을 했지.
재밌지. 이 재미를 뭐하고 바꿀 수 있겠어. 시간은 남아돌고 할 일은 없는데 이렇게 뭔가 집중해서 만들어내고 창작할 수 있다는데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쁘고 즐거워. 아침에 눈떴을때 '오늘도 내가 출근할 곳이 있구나' 생각을 해봐. 그것처럼 고마운 일이 또 있는지.
사람들이 다 그래. 여기에 다니면서부터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다고. 그런데 정말 요즘 너무 재미있어. 그동안 직장을 구하고 싶어도 나이·경력이 걸림돌이 되어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이런 자리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이런 자리가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 주위에 손끝 야물고 솜씨좋은 할머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이런 자리를 주면 일자리도 제공하고, 할머니들 솜씨도 대대로 이어가고 일석이조 아니겠어?
이래봬도 할머니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 줄 알아? 자신들이 만든 작품들 남에게 뒤처지지 않아보일려고 얼마나 노력한다구. 그리고 할머니들이 만든 작품이라 허술하다는 말 듣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애쓰고 있어. 그런 할머니들의 열정·욕심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또한 많지 않은 급여이긴 하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이렇게 일욕심이 많다는 것에 대해 자신들도 새삼 놀랐다고 했다.
그들은 인터뷰 끝에 노인들에게도 이러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말만은 꼭 써달라고 몇번이고 당부했다. 할머니 공방에서 만들어진 손지갑·가방·커튼·다포 등 생활공예품은 오픈마켓을 통해 판매된다. 어르신들의 솜씨와 연륜도 살릴 수 있고, 낡은 용품을 재활용할 수도 있고, 노인들의 일자리도 제공하고 일석삼조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처음에는 '할머니 공방'이라는 이름대신 '언니공방'이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었단다. '할머니'라는 어감이 왠지 너무 구식이라는 것. 하지만 언니공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 할머니공방에는 있다. 연륜, 세월, 추억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보태면 '일에 대한 감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