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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까치 설날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의 설 연휴도 지나가고 있다. 이번 설 연휴는 사회 전반의 기운을 반영하듯 들뜬 분위기 보단 차분하게 지나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에 대한 설렘, 한 해를 시작하는 명절의 분위기가 모든 이에게 기대감을 안겨 주지는 않는다. 노총각, 노처녀들에겐 명절은 피신처를 만들게 하고 30만 청년 백수에겐 다시 한번 굴욕감과 패배감을 느끼게 해준다. 몇 년 전만해도 명절을 가족과 보내는 대신에 일을 하는 이들은 천하에 둘도 없이 동정을 받았지만 올해엔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이렇듯, 이번 설 연휴는 어떤 이에겐 즐거운 가족과의 만남의 장이었으며 누군가에겐 피하고 싶은 휴일이었다.

 

2002년 설과 올해 설, 그리고 '똥덩어리'

 

이번 설 명절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까치까치 설날에 내리는 하얀 눈이라. 몇 년 전 군대에서 보낸 명절이 생각났다. 2002년 2월 군번으로 입대한 나는 춘천 102보충대로 입대하여 인제 12사단에서 신병교육을 받았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구정 연휴와 신병교육 기간이 맞물려버려 6주 훈련이 7주 훈련으로 늘어버렸다.

 

뭐, 그래도 설 당일엔 합동 차례를 지내서 맛있는 음식과 막걸리도 '한잔' 마실 수 있다는 '빅 뉴스'를 듣긴 하였다. 막걸리라니, 입대를 앞두고 속이 문드러질 정도로 알콜을 들이 부었지만 그 달콤한 이름 석자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였다. 그리고 군대에서 맞는 첫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 떡국을 먹고 사단에서 마련한 합동 차례를 지냈다. 달콤한 막걸리를 원샷! 으로 시원하게 넘기고 나니 펄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여자친구와 보낸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그 만큼 감동적이지 못했다. 몇 주전 입대식에서 연신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 생각에 코끝도 찡해졌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외아들인 나, 단 셋인지라 더욱 외로운 명절을 보내실 생각을 하니 더 슬퍼지고 울컥해졌다. 그러나 눈이 내리길 한 시간, 두 시간 그 울컥함은 전혀 다른 성질의 울컥함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다섯 시간 후. 내입에서 나온 단말마의 비명.

 

"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똥.덩.어.리!"

 

그렇다. 그날 이후 펑펑 내리는 함박눈은 나에게 똥덩어리.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번 2009년 설에도 이 똥떵어리 때문에 길에서 고생하셨던 분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명절에 내리는 눈과 비는 모두에게 낭만적이지 만은 않은 것이다.

 

28세 이양의 설 귀향...귓가에 맴도는 엄마의 목소리

 

고성인 집에서 춘천으로 대학 입학, 취업을 하여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된 지 어언 8년여가 되어가는 이은경양(28)는 1년에 단 두세 차례만 본가에 가게 된다. 구정과 추석, 명절은 그녀가 집에 가는 몇 안 되는 날 중의 하나이다. 이제는 노하우가 생겨 차가 안 막히는 타이밍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게 되었지만 20살을 갓 넘겼을 때는 이 집에가는 길이 그야말로 고통의 길. 오오 그것은 고행의 길이었다고 한다.

 

보통 지방의 버스터미널들이 그렇지만 버스는 전화나 인터넷 예약이 힘들다. 본인이 원하는 날짜의 표를 사기 위해서는 그 전날들에 발품을 팔아 표를 확보해야 했다. 고향가는 즐거움이 아무리 기쁘고 크더라도 학생인 그녀에게 왕복 택시비 7천원은 학교 식당의 백반 일곱끼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의 부담이었다. 이럴 때 교통(이라고 쓰고 고통이라고 읽는다)상조가 있었다면 다음과 같은 광고를 했을 것이다.

 

"명절 아침부터 터미널에 나가 표가 매진이 안 됐으면 다행이죠? 매진이라면 매진이 되지 않은 차편의 시간까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기다려야 되고. 거기에 고속도로가 막혀 차가 연착이라도 된다면....어휴"

 

그녀는 올 설날에도 버스표를 구하기 위하여 새벽 일찍부터 터미널로 나섰고 결국 터미널에서 3시간을 기다린 후 승차할 수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하는길. 올해 28세가 된 그녀에겐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출발하기 전 통화한 어머니의 한마디 때문이다.

 

"너 남자친구는 안 데려 오냐?"

 

명절을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들 다음 추석부턴 모두에게 즐거운 명절이 되었으면...
명절을 보내고 돌아가는 사람들다음 추석부턴 모두에게 즐거운 명절이 되었으면... ⓒ 지영수

고향에 도착한 나...그러나 친구들은 오지 못했다

 

작년 말 우리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라디오 연설에서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어 일자리를 찾으면 취업 못할 곳이 없다 하셨다. 그 선견지명을 몇 년 더 앞선 나는 눈높이를 낮추어 취직을 한 지 어언 2년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대통령도 바라는 일자리가 아닌가!

 

사회 초년병의 연봉이 어디 많이 차이 나겠는가?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거기서 거기인 연봉들이 수두룩하며 근무 환경이나 복리후생도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번 설 연휴 역시 힘든 경제 여건속에서도 떳떳한 사회인으로서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물론, 이번 설연휴 4일(주5일제기준)을 전부 즐기지는 못하였고,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에 추가 근무를 하였지만 말이다. 어쩌겠는가 눈높이를 맞추어 취직한 직장은 나의 능력을 너무 뛰어나게 인정해주어 더욱 많은 일을 하기 원하니 말이다. 물론,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 설 상여금과 수당은 줄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도 그렇게 명절 분위기가 나지는 않았다. 연장 근무로 인해 고향을 찾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으며 친척들도 부담이 되는지 많이 모이지 않았다. 결국 이번 명절은 당일 성묘를 한 후 하는 일 없이 빈둥대다 일이나 더 하자는 심정으로 귀경길에 오르게 하였다.

 

올 추석엔 걱정거리 좀 덜었으면..

 

위 기사의 내용은 본인의 경험담과 주변의 이야기를 추려서 꾸며본 것이다. 허구의 일상이 아닌 실재하는 명절 기행기인 것이다. 설 연휴를 우울하게 보내다 보니 걱정은 아직도 한참 남은 추석 연휴이다.

 

이번 2009년은 가히 직장인들에겐 우울한 한해이다. 공휴일은 줄을데로 줄어버린 데다 추석 연휴 역시 연휴 같지 않은 포지션(?)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경제지표는 작년과는 다르게 우리가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보다는 더 나빠지지 않게 노력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명절은 그 의미가 퇴색되어져 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휴일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 설 연휴에 온갖 변명을 댄 노총각, 노처녀들은 추석까지 새로운 짝을 만나지 못하면 설의 악몽이 반복될 것이고 백수 삼촌은 또 조카들의 용돈을 뺏게 될지도 모른다. 민족 고유의 명절, 모두가 한시름 덜고 정말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명절이 어서 빨리 찾아왔으면 한다.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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