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제들이 몇 가지 있다. 마치 못 볼 것을 보거나 못 들을 욕을 들은 듯 반응하는 그런 것들 중에는 특히나 일본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독도, 역사왜곡, 그리고 야스쿠니 등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또 한국인들의 신기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민감한 만큼이나 이런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정말 신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 외치는 한국인들에게 왜 독도가 일본 땅이어서는 안 되는지 물어보자. 이에 명확한 답을 해줄 이가 몇이나 될까? '역사 왜곡하는 나쁜 놈들'이라 열변하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물어보자. 이에 명확한 답을 해줄 이가 몇이나 될까?
야스쿠니 신사에 관한 문제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 2001년 고이즈미 총리가 8·15 참배를 공언하고 4월 공식 참배를 시작한 후로 야스쿠니는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비록 그 열기는 조금 식었을지라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야스쿠니’라는 말에조차 마치 못 들을 욕을 들은 듯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가?
그러나 사실 야스쿠니 참배가 왜 나쁜 것인지, 정확한 사실 파악과 함께 자기 논리로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한국인들은 몇 안 될 것이다. 야스쿠니에 대해 단순히 참배 사실과 그 논란만 보도하는 단순정황보도의 미디어, 그리고 그에 따라 한목소리로 욕하는 대중, 이 사이에서 '왜'라는 본질적 질문은 묻혀가고 있다. 때문에 '야스쿠니는 나쁘다!'라고 외치는 이에게 '왜 나쁜데?'라는 질문은 별반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야스쿠니 신사란 무엇이고 우린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가? 이에 생각하기 위해 강화의 작은 대안학교, 산마을고등학교의 학생과 교사 14명이 지난 1월 14일, 일본의 퇴직 역사 교사 오오타니 선생님의 수업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
도쿄 치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시대 천황의 주도 하에 '동경 초혼사'라는 명칭으로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주로 천황전쟁의 희생자들이 신으로 모셔지게 되었다. 하여 신사 이곳저곳에는 천황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애초 전쟁의 성격을 띠고 건립된 신사답게 들어가는 입구부터 전리품 중 하나인 중국에서 빼앗아 온 해태 상이 눈에 띈다. 원래 한국에서 임진왜란 때 약탈해 온 북관대첩비도 전리품으로써 있었지만, 3년 전 북한의 요구로 인해 함경남도로 반환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일본 최초 근대 군대를 창설한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이에 버금가는 권위의 무사였던 이 중에 아시카가 타카우지가 있는데, 타카우지는 막판에 천황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간의 공들에도 야스쿠니에 합사되지 못했다. 끝까지 오로지 천황에게 충성한 이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야스쿠니였던 것이다.
좀 더 들어가면 청동으로 만들어진 야스쿠니의 도리이('ㅠ'자 모양의 문으로 대개 일본 신사의 초입에 서 있는데 대개 목재로 만들어진다)들 중 두 번째가 나온다. 도리이에 들어서면 신사에 참배 중인 일반 일본 시민들을 볼 수 있다. 동전을 함에 던지고 두 번 절한 뒤 두 번 손뼉치고 다시 한 번 절을 하고 물러난다. 퇴근길인 듯 보이는 서류가방을 한 손에 든 직장인 남성도 있고 함께 온 연인도 있다.
이처럼 신사는 일본인들에게 깊이 스민 하나의 문화다. 한국에서는 야스쿠니 신사를 가장 많이 접해왔고 그만큼 논란이 되고 있어서 그런지 신사에 대해 무조건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우선 신사를 일본의 문화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야스쿠니를 관찰해야 야스쿠니의 특이점과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가 보일테니 말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이러한 특이점이자 문제점은 경내 오른쪽에 있는 유슈칸에서 잘 드러난다.
유슈칸은 1882년 건립된 일본 유일의 전쟁박물관인데, 이곳에는 야스쿠니에 봉납된 각종 보물들을 비롯해 메이지 천황군의 전리품, 동경 초혼사 자료, 시대를 아우르는 각종 무기류, 기타 전쟁 관련 유품이 5만5천여 점 가량 소장되어 있다. 이런 유슈칸에서는 양심적인 강의를 하는 일본의 역사 교사들과 이를 저지하는 우익인사들과 종종 다툼이 붙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양심적인 사람들 중 하나인 오오타니 선생님을 따라 들어선 유슈칸의 제1 전시실은 '무사의 마음'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전시실 입구의 시를 보면 '바다에서 죽건 산에서 죽건 천황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겐 아무 소망이 없네'라고 적혀있다. 오로지 천황, 오로지 일본을 위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어두운 흔적이다.
이를 시작으로 유슈칸을 둘러보면 전시된 전쟁 관련 유품만큼이나 그 역사를 왜곡하는 부분을 많이 찾아낼 수 있다. 한 예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미국, 스페인, 프랑스,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등의 서양 국가으로부터의 침략을 표시한 지도는 일본이 이에 따라 '어쩔 수 없는 무장'을 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받은 공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쟁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 사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또한 '한국 병합'이라 표현한 내용을 보면 한국이 일본의 모든 병합 내용에 찬성하고 이를 승인했다는 식의 주장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청일전쟁은 청이 조선을 침략했기 때문에 일본이 어쩔 수 없이 청을 공격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또한 중일전쟁 영상을 보면 일본군이 고생 끝에 마침내 승리의 만세를 외치는 감동적 장면이 연출되어 있지만, 일본인들이 저지른 학살 등 만행은 역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더 무서운 것은, 일본이 대외적 역사 왜곡뿐만 아니라, 자국민들에게 제국주의를 세뇌시키는 것에도 신중하고 치밀한 노력을 기했단 것이다. 전시에 널리 읽힌 일본 국민교육칙어를 보면 "어린이들이여, 천황님께서 말씀하시는 걸 잘 들어야 해요", "어머니·아버지를 잘 모셔야 해요"라고 적혀 있는데 재밌는 것이 부모를 잘 모시라 해 놓고서는 "전쟁이 일어나면 천황님을 위해 전쟁에 나가야 해요"라고 적어 놓았으니 참 아이러니다. 부모보다도 천황인 것이다.
옛날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곤 했던 세대인 산마을학교의 교사들은 이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학생들은 중학교 때까지 매 행사마다 하던 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가 제창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세뇌를 가했던 일본은 자국 군인들마저 자살 용병으로 '소비'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런 가미가제의 실제 흔적으로 다리 없는 착륙 불가 비행기, 사람이 탈 수 있는 어뢰가 버젓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정말이지 일본군대는 적군은 고사하고 민간인도, 군인도 그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것이라고 오오타니 선생님은 씁쓸해 하셨다.
이런 충격적이고 뻔뻔한, 그리고 때론 섬뜩한 전시물들과 함께, '야스쿠니가 왜 나쁜데?'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린 또 다른 전시실로 들어섰다. 야스쿠니에 합사된 전사자들 중 사진이 있는 이들의 사진과 명패를 진열한 곳이었는데, 이곳에 바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의 사진과 명패가 버젓이 있다. 전쟁의 명령을 내린 최고 책임자의 사진이, 그 명령으로 인해 죽어 간 일본의 청년들 사이에 아주 평온히 걸려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야스쿠니에는 8인의 A급 전범들과 이들로 인해 죽어간 이들이 함께 합사되어 있다. 이들 중엔 수많은 조선인들도 있다고 한다. 야스쿠니 신사의 본질적인 문제와 모순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반나절 동안의 야스쿠니 탐방은 교사이건 학생이건 간에 한국의 산마을학교 식구들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야스쿠니는 무엇이었는지, 왜 그것이 문제가 되었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렇다. 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우리나라에도 국립현충기념관이 있듯이 야스쿠니 신사도 A급 전범들과 유슈칸만 없다면 하나의 추모 신사로써 적합한 것일까? 야스쿠니 신사는 왜 부적절하고, 어떤 점이 개선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또 하나의 앞선 시각으로써, 우리도 피의자의 입장에서 국립현충기념관을 바라보는 때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린 단순히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무조건 비난하는 대신, '왜'라는 질문에 답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더 나아가 우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블로그(http://blog.hani.co.kr/dreamer/1864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윤고은 기자는 산마을고등학교 학생입니다. 지난 11일부터 21일까지 산마을고등학교 식구 14명이서 일본의 대안학교 지유노모리와의 교류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