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헌책방 나들이란옆지기 식구들이 사는 일산집으로 나들이를 가서 지낼 때, 함께 텔레비전을 보는 자리에서 으레 책을 앞에 펼쳐 놓곤 합니다. 읽건 못 읽건 펼쳐 놓습니다. 몇 줄 겨우 읽건 한 쪽도 못 읽건 펼쳐 놓습니다. 책을 펼쳐 놓는다고 텔레비전을 못 보지 않으며, 지루한 광고가 늘어지면 책에 눈을 박을 때가 한결 낫습니다.
인천에서 일산으로 갔다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틈틈이 3호선 홍제역에서 내려 헌책방 대양서점을 찾아가곤 합니다. 읽을 만한 책을 만나건, 읽을 만한 책을 못 만나건, 홀가분하게 책방 나들이를 합니다.
1매장과 2매장으로 나뉜 홍제동 대양서점. 이곳을 찾아온 지 어느덧 열 몇 해가 되었습니다. 유진상가 옆을 지나는 고가도로 옆에 자리한 조그마한 헌책방을 처음 알아본 때가 꼭 엊그제 아닌가 싶은데, 하루이틀 한 해 두 해 발길을 이으면서 책도 한 권 두 권 열 권 스무 권 백 권 이백 권 천 권 이천 권을 헤아리도록 구경하고 장만합니다.
먼저 1매장에 들릅니다. 대양서점 큰아저씨는 실장갑을 끼고 책 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책손이 책시렁을 살피면서 흐트러뜨린 책 매무새를 바로잡고, 빈자리를 채우며, 갈래에 따라 차곡차곡 나누어 놓습니다. 오래도록 손을 안 타는 책은 아래쪽으로 옮기고, 아래쪽에 있던 책을 위로 올려놓기도 합니다. 이러는 동안 저는 옆에서 살그머니 사진 몇 장을 찍는데, 큰아저씨는 옆에서 누가 사진을 찍는 줄 모릅니다. 책 갈무리를 마치고서야, “어, 왔어요?” 하면서 알아보십니다. 그제야 저도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오랜만에 왔습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다른 데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는 책이 안 나와서 죽겠어요.” “다른 헌책방들도 새 헌책이 안 나와서 힘들어 해요. 이제는 모두들 창고 장사를 한다고 해요.” “그렇지요? 다른 데도 힘들지요?”
먹고살기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헌책방은 다른 장사보다 ‘힘들다’는 말이 곱으로 나옵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골목집이 줄고 아파트가 늘면서 집집마다 내놓는 헌책이 폐휴지가 되어 곧바로 폐지처리장으로 가는 일이 늘었습니다. 아파트에서 폐휴지 모으는 날 맞추어 간다고 하여도 경비실이며 부녀회며 웃돈을 건네야 하는데다가, 웃돈을 주고 들어가도 되팔 만한 책이 안 나오는 일이 잦아서 아까운 책이 버려지는 꼴은 그대로 보게 됩니다. 더욱이 폐지 값이 껑충 뛰는 바람에 샛장수 가운데에는 헌책방에 내다 팔기보다는 폐휴지상에 곧바로 가져다 파는 쪽이 낫다고 여기게 되고, 모든 헌책을 다 사들여 되파는 헌책방이 아니라, 되팔 만한 책을 가려서 사들이니 헌종이 모으는 할매 할배도 아예 헌책방에 가져오지 않고 고물상으로만 갑니다.
만들어져 읽히는 책이 있으면, 그만큼 되읽힐 책이 나와야 할 텐데, 책은 오늘날 다른 물건과 마찬가지로 한 번 사서 보고 버리는 쓰레기처럼 대접을 받습니다. 쓰레기 아닌 책 대접을 받아 도서관에 갖춰진다고 하여도 여느 노동자가 도서관 나들이를 하기에는 버겁습니다. 새벽같이 열어 밤늦게까지 지키는 도서관이 드무니까요. 주말에만 읽는 책이 아닌 한편,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동네에서 홀가분하게 찾아갈 만한 도서관이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또 읽을 만한 책들이 금세 판이 끊어져 새책방에서 사라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또한 동네 새책방이 하나둘 문닫을 뿐 아니라 애써 살아남았어도 베스트셀러 아니고는 갖추지 못하게 되는 얼거리인 우리나라에서는, 골목 한켠에 오래오래 뿌리내리고 있는 헌책방은, 느지막히 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한테는 고마운 ‘책쉼터’입니다. 일찍 닫아도 여덟 시쯤이고, 늦게 닫으면 열한 시나 열두 시까지도 불을 밝히는 헌책방이라, 회사일이나 공장일이 늦게까지 이어져도 잠깐이마나 책으로 마음을 쉬거나 돌릴 수 있어요.
(2) 지식인 김병익과 친일부역자 노천명 다시 읽기큰아저씨와 두런두런 헌책방 걱정을 나누다가 <김병익-생각의 안과 밖>(문이당,1997)이라는 산문모음을 집어듭니다. 산문은 자기 생각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면서도 어떤 틀에 매이지 않는 글이곤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든 안 좋아하는 사람이든, 시원시원 써내려간 산문을 읽으면 따뜻함과 넉넉함을 얻을 수 있어 즐겁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번 김병익 님 책은 영 마땅하지 않습니다. 책을 펼쳐 읽는 내내 ‘쓰기 싫은 글 억지로 썼다’는 느낌과 ‘읽기 귀찮은 책 어쩔 수 없이 읽고 쓴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명색이 평론가이기도 하고 발행자이기도 해서 내게는 매일 서너 권의 신간들이 그 저자나 출판사로부터 기증되어 들어온다 … 비평가로서의 직무유기라고 꾸중하더라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책들을 모두 읽기는커녕 차례나 머리말에 눈길을 보내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고 겉봉만 훑고는 휴지통에 던져버리는 것도 있다(204쪽)”고 적는 말에는 ‘문화권력’을 누리는 분으로서 너무 우쭐댄다 싶은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일이 바쁘고 읽을 다른 책도 많아 날마다 서너 가지 새책을 받아들기 벅차다고 하는 말씀이지만, 저는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으레 열 권 남짓 되는 책을 사들기 마련이고, 사는 책 말고 안 사면서 훑거나 읽는 책도 꽤 많습니다. 요사이는 아이 보랴 집안살림 꾸리랴 바쁜 나머지 날마다 나들이 하는 일은 못하지만, 두어 해 앞서까지만 해도 날마다 한두 번씩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열 권씩 꼬박꼬박 사들였는데, 이러면서 못 읽고 미뤄지게 되는 책도 많지만, 언젠가는 다 읽어치우게 되더군요.
아무래도 제 호주머니를 털어서 사는 책하고 누군가 거저로 주는 책하고는 다를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문 100원을 들이건 1000원을 들이건, 제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사들이는 책은 함부로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 없습니다. 하다 못해 냄비 받침으로 쓴다고 하여도 쉬 폐휴지로 삼지 못하고 둘레에 ‘그 책을 고맙게 받아들어 읽을 만한 사람’한테 건네게 됩니다.
.. 내가 못 본 연극 <미란다>나 잡지 <펜트하우스>도 예술로 인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얇삽한 인기주의를 작용시켰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예술적 비판성과 다른 상업주의에서 배태된 외설로 판정받게끔 된 것이 아닌지 하는 의혹이 든다 .. (21쪽)책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책 이야기를 글로 쓰기까지 한 김병익 님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이 글 저 글 읽다가, <생각의 안과 밖>에 실린 첫 글을 읽으면서 어이없는 너털웃음을 짓습니다. 어떻게 ‘보지도 않은 책’을 함부로 “상업주의에서 배태된 외설로 판정받게끔 된 것이 아닌지 하는 의혹이 든다”고 잘라말할 수 있을까요. 너무 바쁜 나머지 책을 싼 봉투만 훑고 쓰레기통에 처박으시는 그 매무새이신지라, 책을 펼치지 않고 책이름만 들어도 무슨 줄거리를 담았는지 꿰뚫을 수 있다는 말씀이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펜트하우스>를 감쌀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저한테 책을 가르쳐 준 스승 가운데 한 분이 언젠가 ‘<플레이보이>와 <펜트하우스>를 모르고 잡지를 만들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던 이야기를 김병익 님한테 들려주고 싶습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높낮이가 좀 떨어졌지만, 1960∼70년대 <플레이보이>와 <펜트하우스>는 잡지 짜임새나 엮음새나 종이질이나 줄거리나 자리잡기나 사진 질감이나 아주 뛰어났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한겨레21>이나 <씨네21>이나 <시사저널> 또는 <주간조선> 따위는 <플레이보이> 엮음새나 사진을 좇아갈 수 없습니다. 이 잡지들을 몸소 본다면, 이 잡지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본다면, 예전 것과 요즘 것을 견주면서 헤아려 본다면, ‘잡지를 만들려면 이만큼은 해야 비로소 잡지라는 이름 두 글자를 붙일 수 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됩니다. 멋모르는 주제로는 제멋을 모를 뿐 아니라 남 멋 또한 모르고 말아, 남들이 애써 이룬 열매와 보람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이 좋은 열매와 보람을 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맙니다.
<노천명-꽃길을 걸어서>(전위문학사,1978)라는 산문모음이 보입니다. 노천명이라는 이름 석 자가 달갑지 않지만, 산문모음은 어딘가 다를지 모르리라 생각하면서 펼칩니다.
.. 다른 조건보다도 그저 몸 둘 곳이 불편해서 웬만하면 내 집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서 살아 볼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 적도 있었으나, 막상 서울엘 올라와 어느 날 해질 무렵 정동거리를 비롯해 종로 샌전으로 명동거리를 혼자 거닐며 나는 흡사 이방인이 되어 낯선 거리를 거니는 것만 같다. 아니, 그보다도 내가 저승엘 와서 이제는 인연을 끊어 버린 전세상의 기억에 남은 거리들을 어렴풋이 더듬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 친한 사람들의 발길이 땅이 닳도록 다닌 골목들이며, 일찌기 우리들이 정답게 마주앉아 한 잔의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무겁지도 앟고 나쁠 것도 없는 얘기들을 주고받던 그 다실들이 있던 터전은 대관절 어디쯤이냐. 내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블루타이를 고르던 그 양품점은 또 어디만큼 되는지 나는 알아낼 재주가 없다. 못 쓰게 된 세숫대야며 타다 남은 우그러진 쇠침대, 깨어진 접시의 흰 조각들이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빈터에서 빛나는 것은 일종의 무서움을 준다. 이 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신혼의 젊은 부부였는지도 모른다. 이 일을 당하던 그날 아침에 저 세숫대야에다 세수를 한 주인공은 지금쯤 이북으로 납치되어 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며 혹은 그날 아침 싸우다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 (234쪽/서울은 멀리서)
글끝에 날짜가 적히지 않아 모릅니다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을 가 본 느낌을 적은 글로 보입니다. 전쟁으로 무너진 곳은 서울뿐 아니라 어디를 가든 쓸쓸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노천명 님이 떠올리는 서울 모습이란 ‘다실에서 차를 마시고’ ‘양품점에서 넥타이를 고르던’ 그런 서울이었군요. 해방 뒤, 또 식민지 때 다실과 양품점을 드나들던 사람은 누구였고 어떤 집안이었는가를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 인생의 여축이 많았던 이십대에 있어서 청춘의 그 아이아몬드 같은 금세를 내가 알았을 리 없고, 여기에 내 이십대는 괜히 묵혀져 버렸던 것이다. 하기야 화려한 서장이었다. 그때 이 나라엔 하나밖에 없었던 여자 최고학부를 나오자 모 신문사에서 금방 데려갔고, 여기서 일을 하는 한편 나는 나이팅게일이 노래를 토하듯이 쉴새없이 시를 토했으며, 또 용정이니 북간도니 이두구니 연길 등지를 한 바퀴 여행하고 와서는 <산호림>이라는 처녀 시집을 내놓았다. 지금은 흔적조차도 없어진 남산동의 그 호화스러운 경성호텔에서 정초에 출판기념회를 받던 기억, 당시 나는 진달래빛으로 아래위를 입고 나타났는데, 고 김상용 선생을 위시해 미세스 매이너 등 모두 박수들을 해서 내 입장을 화려하게 해 주던 일은 더구나 잊혀지지 않는다 .. (248쪽/나의 20대)해방 앞뒤로, 또 한국전쟁 앞뒤로,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거나 굶주림에 고달파 하지는 않았습니다. 없는 살림에도 넉넉한 사람들이 있었고, 넘치는 사람으로 모자람이나 아쉬움을 못 느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잘사는 집에서 태어나 걱정근심 없이 학교를 다니고 뻥뻥 뚫린 길을 걸었다 하여 섣불리 손가락질을 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 자연발생적인 영감이나 시심(詩心)에게서 시를 받아 오던 때는 이미 지났다. 오늘의 시인은 그 소재를 찾기 위해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하겠다. 현실로부터 눈을 감고 나비처럼 피해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군중 속으로, 시민 속으로,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하겠다. 그래서 골목 안 아주머니의 하찮은 넋두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고 악머구리 끓듯하는 저 자유시장 상인들의 비명도 들어 보는 게 좋으며, 때로는 정치가의 호화로운 속에 무겁게 자리한 고독한 얘기에도 귀를 빌려 주는 게 좋다. 그래서 그들의 고민과 의욕을 나타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때로 귀족적인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시를 아끼지도 않지만, 보다 더 그 시는 시민들 속에 뿌리를 내려야 할 줄 안다. 이러한 시의 지반이야말로 녹음이 우거진 시의 새 영토가 아닐 수 없다 … 시인은 시인이 오늘 불러야 할 시의 소재가 뒹굴고 있는 넝마가 널린 청계천 다리 밑이며, 성 언저리의 빈민굴, 부랑아 수용소의 주변들을 답사하며 그 쓰레기통들을 헤쳐 거기서 시인은 아름다운 장미를 피워서 보여주는 것이 오늘의 한국 시인들의 노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소재는 쓰레기통보다 더 추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요는 이 추한 소재를 시인이 아름답게 처리하는 데에 달렸기 때문이다 .. (241∼244쪽/시의 소재에 대하여,1956)
그렇지만, 아무 아쉬움 없이 살던 분이, 아무 아쉬움 느껴지지 않는 문학을 펼친 분이, ‘시를 쓰는 글감은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서 들려줄 때 “군중 속으로, 시민 속으로, 현실 속으로”하고 외치는 모습을 볼 때에는 그만 입이 쩍 벌어집니다. 그래, 그러면 노천명 님이 말하는 ‘군중’은 누구이고, ‘시민’은 어디에 있으며, ‘현실’은 어떤 모습인지요?
골목 안 아주머니 넋두리가 ‘하찮’더라도 귀를 기울이라 하는데, 참말로 골목 안 아주머니 말씀은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데다가 ‘하찮’을 뿐인지요?
청계천 다리 밑 사람들은 ‘추하’고, 사대문 둘레 빈민굴 사람들도 ‘추하’며, 부랑아 가둔 곳 아이들도 ‘추할’ 뿐인가요?
책을 잘못 골랐군, 하고 생각하다가, 아니 책을 잘 골랐다, 하는 생각이 뒤이어 듭니다. 그예 친일부역자 노천명 님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만, 노천명 님은 한낱 ‘친일부역자 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모르고 세상을 주름잡는다는 헛이름에 매인 노천명’ 님이었음을, 이 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하나도 알 수 없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3) 떠난 이가 남긴 자취<한국종교사회연구소(글),황헌만(사진)-백두산>(미진사,1990)이라는 책은 사진과 글로 백두산 둘레 우리 겨레 삶터와 살림살이를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마음먹고 ‘기록’을 하려고 다가섰구나 하고 느껴지는데, 마음만 앞선 기록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기록이다 보니, 이제까지 보아 온 다른 ‘백두산 이야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깊이와 너비를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미진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하나같이 남다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술과 예술과 디자인 쪽 책을 즐겨 펴내는 곳인데, 이곳에서 겨레 문화를 다룰 때에는 이만한 깊이와 너비가 되는 셈이라 할까요.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할 만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시골마을 살림집’ 모습을 사진 몇 장으로 들여다보는 내내, “조선족이 살고 있는 전통적인 마을 모습이다. 초가지붕과 회벽 그리고 통나무굴뚝 등이 특히 눈길을 끌고 있다”고 하는 사진말과 함께 사진이 한결같이 가없이 구수하고 살갑다고 느껴집니다.
짚으로 이은 지붕과 싸리로 묶은 빗자루 들을 찍은 사진은, 사진으로 들여다보기만 하여도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사진작품으로도 멋스러움을 잃지 않습니다. 사람을 찍은 사진도, 집살림 안쪽을 찍은 사진도, 저잣거리를 찍은 사진도 어설픈 ‘인물 중심 예술 초상 사진’에 빠지지 않는 한편, 멋없는 기록으로 빠지지 않습니다. 책을 엮는 이하고 사진 찍는 이가 잘 어우러졌구나 싶으면서, 사진 찍은 이가 사진 찍히는 연변조선족 사람하고 마음이 잘 맞고 이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Duby Tal(사진)/Moni Haramati(글)-skyline Jerusalem>(Mod Pub,1994)을 집어듭니다. 요즈음은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사진에 담긴 이무렵 이스라엘 집들은 높이가 골고루 낮아서 집집마다 햇볕을 골고루 쬘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사람들 살림집이 이렇게 어슷비슷한 높낮이로 이루어진다면 서로서로 이웃사촌으로 여길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집을 짓는 데 들어가는 돌이나 흙이나 나무나 짚이 어슷비슷하다면, 더 높은 집도 낮은 집도 없을 테며, 집을 허물 때 자연에 쓰레기가 생기지 않고, 새로 지을 때에도 자연을 망가뜨리지 않습니다.
땅에서 뒹구는 삶이 아름다우면, 하늘에서 가만히 내려다볼 때에도 새삼스레 아름다웁지 않으랴 싶습니다.
<a day in the life of Israel>(Collins,1994)은 하루 동안 어느 한 나라 삶을 담아낸 사진작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이야기는 오래도록 못 찾고 있었는데, 마침 “하늘에서 내려다본 이스라엘” 사진책과 함께 들어와서 운좋게 집어듭니다. 이 좋은 사진책을 기꺼이 내놓아 준 이름모를 분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새삼 올립니다.
<김기현 엮음-이정혜 유고집, 학과 같이 살다>(평화출판사,1974)라는 글모음을 집습니다. 낯선 이름이 가득한 글모음인데, 이정혜 님은 엮은이 아내였고,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아, 이 아픔과 안타까움을 유고집으로 묶으며 달래었다고 합니다.
.. 서울을 완전히 벗어나자, 땅안개가 기어가고 구름인지 뿌연 것이 산중허리에 감돈다. 우리는 이것을 보았을 때 얕으막한 환성을 올렸다. 차는 험준한 산을 끼고 돌기도 하고, 깎아 놓은 듯한 절벽을 품기도 한다. 우리를 딸아오던 강물의 빛깔이 아직도 내 눈에 삼삼하다, 장사치들의 사투리를 진기하게 들으면서 원주역을 빠져나와 치악산을 바라보니, “섬강은 어디에모 치악은 여기로다” 한 정송강의 <관동별곡>의 일절이 생각났다 .. (156쪽/도담의 선경,1958)살아 있을 때 글이 아닌, 죽고 난 뒤 그러모은 글이라, 떠난이가 막 스물을 넘겼을 무렵 앳된 마음과 생각을 드러낸 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뒤이어, 1950∼60년대에 대학생으로 있던 사람이 아침을 어떻게 열었는가 하는 자취를 살짝 엿봅니다.
.. 아침 여섯 시 오십 분 통근차로 부산역에 내려서 안나다방 문간에서 머리를 빗고, 콜드로 얼굴을 닦아낸 다음 <동아일보>를 사들고 동래행 버스를 탔다 … 나도 집에서는 올해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는데, 여기서 메주를 찧어 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를 도와서 살림을 꾸려나가도록 해야겠다. 나는 너무나 이기주의자이고 바보다. 위선자란 말이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퍽 쓸쓸해 하시면서, 이북 할머니와 아들딸 얘기를 하며 자꾸만 생각나곤 한다고 하셨다. 편지 등이 오면 조심이 되고, 기도한다고. 여기 할머니는 아이를 못 가져 봐서 아이를 귀여워한다고 하나, 내가 보기에는 정반대다. 아이를 낳아 길러 본 사람만이 모성애를 더 느끼나 보다. 할아버지는 너무나 그를 아끼는 것 같다 .. (199쪽/대학시절,1960)저 또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몸이 되고 보니, 참으로 ‘아이 못 가져 보았을 때 아이를 마주하는 마음’과 ‘아이를 낳아 기른 사람이 아이를 마주하는 마음’이 사뭇 다릅니다. 크게 벌어집니다. 아끼는 마음은 같을 테지만, 아끼는 깊이와 너비가 달라요.
.. 이제는 꿈속에서만 가 볼 수 있는, 어려서 뛰어놀던 집마당과 골목길, 소꿉동무 생각이 난다 .. (161쪽/<감자>를 읽고서,1958)1958년에 ‘꿈속에서만 가 볼 수 있는 골목길’이란 독후감에 넣은 꾸밈말입니다. 요즈음처럼 막개발이 이루어지는 때가 아닌데, 그 골목길이 어디로 사라질 리 있겠습니까. 그저, 그 고향마을로 가기에는 시간이 없고, 서울에서 학교 다니느라 바쁘다는 소리일 뿐입니다.
문득, 글쓰는 많은 분들이 ‘골목길’을 이와 같이 ‘아련한 추억’쯤으로만 여기고 있을 뿐, 정작 ‘사람 사는 터전’으로는 돌아보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헌책방이라는 곳도 ‘케케묵은’ 곳이나 ‘퀴퀴한’ 곳이나 ‘어두컴컴한’ 곳으로 여길 뿐, ‘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때 되면 신문잡지방송에서 헌책방을 다룬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추억의 헌책방”이 어떠하다느니 “헌책방 하면 퀴퀴한 분위기가 떠오르지만” 하면서 말머리를 엽니다.
책을 책대로 꾸밈없이 받아안지 못하는 마음가짐은, 사람을 사람대로 티없이 마주하지 못하게 하는 몸가짐이 되고, 삶터를 삶터대로 디디지 못하는 매무새에 머물게 합니다.
(4) 집으로 돌아가는 길하나하나 살뜰히 고르고 돌아본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전철은 미어터집니다. 제 옆과 뒤에 서며 자꾸 툭툭 건드리는 젊은이는 큰 목소리로 또래 동무들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뭐 하는 녀석인가 싶어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니 무슨 교회 다니는 청년부 학생인데, 교회가 새로 공사를 하는 데 노역 한 이야기, 교회에서 놀러가는 준비를 하는 이야기, 캐롤 부르는 이야기 들을 합니다.
아무래도 저라는 사람은 그릇이 작아서, 이런 철없고 설익은 예수쟁이들을 곱게 보아넘기지 못합니다. 이 젊은네들이 교회에 다니며 예수를 믿고 성경을 읽어 보았자 가슴팍은커녕 머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마는데, 이런 매무새로 무슨 하느님 사랑을 하겠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이 젊은 무리한테 무어라 따끔히 한 마디를 하지 않았으니, 저도 이네들하고 마찬가지 꼬락서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젠장. 오늘 만난 좋은 책들을 생각하자. 철부지 철없는 짓을 마음과 눈에서 씻자. 집으로 조용히 돌아가고, 내 마음밭을 조용히 다스리자.
덧붙이는 글 | -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 02) 394-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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