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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는 예년에 비해 작은 규모로 치러진단다. 올해 예산이 절반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고, 준비 인원들은 아직 새로 꾸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전북도를 대표하는 축제인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마음이 착잡하다. 스스로 일컬어 '예향 전북'이라는 말이 낯뜨거울 정도이다.

지금 상황이라면, 소리축제의 정체 혹은 퇴행이라 말해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전북(엄밀히 따지면 전주) 문화 역량이 딱 그 수준이라고 폄훼해도 선뜻 변명 거리가 마땅치 않을 것 같다. 더구나 축제조직위가 아무리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해도, 모든 잘못을 그들에게 뒤덮어 씌우는 짓은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순진, 아니 우둔하게도 소리축제가 준비만 잘 하면 전국을 넘어 세계에 우뚝 설 것이라 생각했는가!

다른 한쪽에서 자기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들은 실현 가능한 현실의 대안이 아니라면 말을 절제하시라. 맥락이 다른 해외유명 축제와 과도하게 빗대어 견주거나, 애매모호한 정체성 타령을 하며 발목 잡는 일도 어느 정도껏이다. 전북도와 문화예술계가 자기성찰과 진지한 반성으로 함께 책임질 생각은 하지 않고, 태연하게 희생양만 찾는 거 같아 입맛이 꽤 씁쓸하다.

2008년도 축제, 과연 실패인가?

일단 발단의 시초는 작년 소리축제가 '실패'했다는 낙인에서 기인한 것 같다. 한 평가토론회에서 실패한 축제의 대안으로, 물론 수년 전부터 잠복해온 것이지만, 조직 체계의 변화를 촉구하면서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더구나 축제 조직위의 일부 인사가 이미 구설수에 오르내렸기 때문에, 여러 이견이 있음에도 조직 개편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작년 축제로 잠깐 돌아가면, 적어도 마지막 이틀간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운영과 진행 미숙이 심심찮게 눈에 띄긴 했지만, 북적대는 인파 속 축제 분위기는 예년보다 훨씬 나았다. 행사장을 찾은 이들의 소리축제 반응도와 참여도는 이전보다 꽤 높아졌다는 말이다. 야외 무대, 체험행사, 자투리 공연 등을 실속 있게 배치한 덕분에, 일반 시민들은 대부분 시끌벅적한 축제장 분위기와 적극 소통하고 있었다. 여느 해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조직위의 시도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동안 판소리 중심의 축제라는 정체성과 전문 예술공연축제라는 미명 아래 도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지역 주민들의 지지도 없으면서 전국 혹은 세계 축제를 꿈꾼들 그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구를 생각하는, 누구의 축제인지 항상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우리가 쫓고 있는 건 허상에 불과할 따름이다. 현재 소리축제가 우왕좌왕함에도 이를 우려하는 도민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건 자업자득의 결과가 아닐까! 그래서 예술성-대중성 논쟁은 상당히 공허해 보인다.

한편 지난해에는 '판소리'와 거리가 먼 공연들의 전진 배치, 방송국과 연계한 콘서트, 밋밋한 개폐막 공연 등이 축제 정체성과 관련하여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이도 역시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비난 받을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방송국의 참여는 소리축제의 대중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 '판소리축제'가 아닌 이상 '소리축제'의 장르 확장은 앞으로도 불가피해 보인다. 적어도 개폐막 공연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서로의 관람 자세에 따라,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그 해의 주제와 콘셉트에 충분히 부합하는 공연 내용을 담을 수 있었는가이다. 그런 체계를 미리미리 마련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듯 축제를 치러내면 문제는 불거지기 마련이다.

창작 판소리대회나 일간지 발행도 하지 않는 게 더 문제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소리 축제가 판소리 중심이라는 데 이견이 없음을 전제로 하더라도, 너무 판소리의 고전화에만 몰두하는 건 아닌가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도 오로지 판소리 다섯마당의 매력 때문에 해마다 소리축제를 찾은 게 아니었다. 소리의 색다른 변용과 참신한 시도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욱 컸다. 물론 창극이 있다고 하지만, 왜 변변한 창작 판소리대회 하나 남아 있질 않는지 참 궁금했다. 지난해 어느 심야 뉴스 방송에서 선보였던 '시사난타'와 같이 사회 비판의 내용은 둘째치더라도, 우리 일상의 여러 모습을 담아내는 '대중 판소리'의 가능성은 없는 것인가!

또한 공연예술축제로서 소리축제의 필수 조건은 우수 공연 유치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제 아무리 평판이 좋은 공연이라도 당연히 맥락에 맞아야 하며, 이를 적극 도민에게 알려 공유해야 한다. 특히 공연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전문 비평가들의 글들을 묶어내는 작업은 벌써부터 시작했어야 하는 작업이다. 매일 아침 전날의 공연들을 냉정하게 재음미해주고 당일의 추천 공연을 제안하는 일간지 발행은, 괜찮은 축제라면 이미 정형화된 작업이다. 매일 피어나는 공연의 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소리축제의 가능성을 보다 폭넓게 고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내실을 기하기보다는 외부의 비판에 너무나 쫓기듯 축제조직위를 이끌어 온 건 아닌지 곰곰히 되돌아볼 시간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나마 잠시 위안이 될까? 지나친 욕심보다는 향후 연차에 따라 우선 순위를 먼저 정하고, 그에 걸맞은 조직 개편과 운영을 고민할 시점인 건 분명하다. 모든 것을 아우를 생각보다는 선택과 집중으로 소리축제의 엉킨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가야 한다. 이를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 한다면 불행하게도 전북 문화예술의 오명은 피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새전북신문>과 개인블로그에도 송고합니다.



#전주세계소리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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