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건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이런 건가요?”
계단에 걸터앉아 시니컬하게 질문하는 소녀에게 우유가 든 갈색봉지를 든 선글라스 낀 남자가 말한다.
“사는 건 원래 그렇게 힘든 거야.”
십 수 년 전 퇴근 후 집에 사람도 열쇠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찾은 진 비디오방에서 본 영화 <레옹>(1998)의 대사다.
‘집에 열쇠가 없어서 다행이야’라는 뿌듯함을 안겨준 영화. 집 따위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몰입했던 영화<레옹>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어린 마틸다의 마를린 먼로 흉내 버전도 명대사도 아닌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스팅의 노래 "Shape Of My Heart" 때문이다.
어둡고 퀴퀴한 비디오방에서 혼자 흐뭇한 표정을 지은 때로부터 십 수 년이 흐른 어느 날 자정이 넘은 시각. 난 에프엠에서 낯익은 저음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그는 스팅이었다.
사랑 때문에 너무 힘이 든 여자는 절절하게 슬픈 노래를 들려준다면 실컷 울고 나서 정신 차리겠노라 했고 패널이었던 가수 유영석은 스팅의 "Until"을 들려준 것이다.
언젠가 비디오 방에서 숨죽이며 들었던 그 목소리. 난 그의 매력적인 낮은 저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절제한 듯 하면서도 섬세한 보이스의 스팅 말이다.
폴리스 시절의 스팅
누군가를 알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렇게 시작하는 어떤 계기나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 미친 듯이 그 음성이 깃든 노래 "Until"을 찾아 헤맸고 그 노래 역시 <케이트 앤드 레오폴드>의 영화 음악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난 사실 몰랐다. 스팅이 영국의 세기 적 그룹 폴리스의 멤버였다는 사실도, 영문자 론니 플레닛의 영국소개란에 폴리스가 태어난 나라라는 설명으로 시작된다는 사실도 말이다.
스팅이 폴리스였으며 폴리스가 몇 명인지도 몰랐던 나지만 그들의 첫 번째 히트곡 "Roxanne(1979)와 1980년 발표된 'Every Breath you take'는 모를 수 없었다. 장장 8주간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면서 뉴웨이브 록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그 곡들은 폴리스의 대표적인 곡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77년 관객 100명이 채 안 되는 런던 뒷골목의 클럽공연의 첫무대를 시작으로 85년 폴리스란 이름으로 더 이상 활동하지 않을 때까지 그들은 7년 동안 무려 6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83년의 마지막 앨범<SynchroniCity>는 빌보드 차트 정상 17주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1천만 장이 넘는 판매를 했다고 전해진다.
스팅의 영화음악들
자신에게 있어 음악의 뿌리는 재즈에 있다고 말한 스팅은 86년 폴리스 해체 이후 자신이 추구하던 음악을 펼치기 시작한다. 85년 첫 솔로 앨범인 <The Dream Of The Blue Turtle>(1985)의 히트곡 “Moon Over Bourbon Street”를 들어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음악은 조금 더 재즈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두번째 솔로앨범 <Nothing Like The Sun>(1987)에 수록 된 “Fragile"의 스페니쉬기타 선율은 허무한 멜로디를 담고 있다.
“강철이 살을 파고들어와 피가 흘러도 붉은 노을빛으로 말라 버리고 내일이면 비가 내려 그 자국을 모두 씻겨 내겠지...” 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는 국제양심수 사면위원회 활동을 하며 남미 내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그는 또한 브라질 열대우림 보존운동을 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Fragile"은 삼림보호 운동을 하면서도 많이 불렸으며 911테러 당시 실황 앨범 제작을 목적으로 소규모 공연을 위해 모인 각국의 팬들 200여 명 앞에서 취소 직전까지 가는 심사숙고 끝에 시작된 공연의 첫 곡으로 테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불렀다고 전해진다.
재즈와 클래식 제 삼국의 월드 뮤직 등 폭넓게 시도하는 그의 음악은 철학과 사회성이 짙은 가사로 많은 평론가들과 아티스트,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84년 프란시스 토멀티와 이혼한 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던 그에게 8년 후 재혼하는 영화제작자 트루디와의 만남은 영화와 영화음악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는 계기가 된다.
스팅을 말하려면 폴리스를 빼놓을 수 없듯이 영화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그의 필모그래피가 되었다. <레옹>에 삽입된 자신의 곡 "Shape Of My Heart"와 같이 스팅의 기존 곡들은 많은 영화에 사용됐다.
유영석이 청취자를 위해 선택한 스팅의 <언틸>은 2001년 맥 라이언과 휴 잭맨이 주연해 100년의 시공을 뛰어 넘는 로맨스를 펼치는 영화 <케이트 앤드 레오폴드>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2002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스팅에 최우수 주제가상을 안겨 준 곡이기도 하다.
그 외 스팅이 제작한 사운드 트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곡은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Angel eyes"와 “My One And Only Love"가 있다. 2001년 애니메이션 <쿠스코 쿠스코>와 1999년 <마이티>의 영화 음악은 골든 글로브의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스팅은 이 외에도 10편이 넘는 영화음악 제작에 참여했다.
스팅의 기존 히트곡을 사용한 영화는 무수히 많다. <물랑루즈>, <콜드 마운틴>, <러시아워>,<웨딩 싱어>,<에이스 벤츄라>등 100여 곡이 넘는 곡이 드라마나 영화 등에 삽입됐다.
스팅의 영화사랑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줄리아 줄리아>(1987), <록 스타 앤 투 스모킹 베럴즈>(1998) 등 20여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던 그는 잘생긴 외모로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을 당시에는 끊임없는 러브 콜을 받아왔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진정한 뮤지션이자 사회운동가
9살 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 14살 때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음악을 들으며 기타를 연습했다는 그는 피아노 팬 플롯 색소폰과 기타 만돌린 하모니카를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가장 매력적인 악기는 낮은 저음의 목소리일 것이다.
전직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와 재즈와 탱고를 좋아하던 아버지 아래서 자란 그가 독침이라는 뜻의 스팅(Sting)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가난한 어린 시절 즐겨 입던 노랗고 까만 줄무늬의 축구 유니폼이 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 때 영국에서 교사를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가 78년 뉴웨이브 록의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시작해 2000년 그래미 최우수 남자 보컬 상을 수상하고 지금의 자리에 서있기까지 변하지 않은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사실이다.
86년 대중적인 팝에 고급스러운 재즈를 접목시켜 선보였고 얼마 전에는 16세기 영국 류트음악의 명연주자이며 대작곡가인 존 다울랜드(John Dowland1563~1626)의 곡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정통 클래식 음반 <Songs From The Labyrinth> (미로에서 온 노래)를 발표했다.
얼마 전 미 대통령 취임식에서 스티비 원더와 축하공연을 했던 스팅의 나이는 이제 58(1951년생)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그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었다. 세월을 알리는 깊은 주름이 다시금 그의 얼굴을 확인하게 했지만 에프엠을 통해 들리는 그의 낮은 저음의 멜로디는 변하지 않은 그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철학적이고 문학적 소양이 많은 그가 새롭게 추구하는 음악. 우리들은 인권 문제나 환경운동을 했던 사회운동가인 그가 추구하고 변모하려고 하는 새로운 지점의 음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는 나에게 스팅을 기억하게 해 준 것은 에프엠을 통한 슬픈 사연 때문이었다. 그의 활동이 지닌 세계적인 영향력과 함께 그가 만든 조용한 한 소절의 멜로디가 슬픔에 가득찬 청취자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