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활자화되다
.. 이 글이 활자화될 무렵이면 정씨의 신상문제 처리가 끝나겠지만, 그의 동반자살론은 코미디의 걸작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 《한승헌-그날을 기다리는 마음》(범우사,1991) 25쪽
‘동반자살론’에서 ‘-論’을 ‘이야기’로 고쳐 줍니다. “코미디의 걸작”은 “배꼽잡는 우스개”나 “훌륭한 우스개”쯤으로 다듬어 봅니다. ‘기억(記憶)될’은 ‘남을’이나 ‘이어갈’이나 ‘생각하게 될’로 손질합니다.
┌ 활자화(活字化) : 원고가 인쇄되어 나옴. 또는 원고를 인쇄하여 냄
│ - 내 작품이 활자화만 되지 않았을 뿐이지 /
│ 처음으로 자신의 글이 활자화된 것을 보는 얼치기 시인의 감격
│
├ 이 글이 활자화될 무렵이면
│→ 이 글이 책에 실릴 무렵이면
│→ 이 글이 잡지에 날 무렵이면
└ …
‘활자화되다’를 찬찬히 뜯어 보면 ‘활자 + 화 + 되다’인데, ‘되다’와 ‘화(化)’는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활자가 되고 되다”인 셈이라 잘못된 겹말입니다. 한자말 ‘활자’를 쓰고 안 쓰고를 떠나서, 이와 같이 어설피 겹말을 쓰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비슷한 말투로 ‘방송화되다’나 ‘영화화되다’나 ‘소설화되다’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때에도 모두 잘못된 겹말입니다. ‘방송이 되다’와 ‘영화가 되다’와 ‘소설이 되다’라고 적어야 알맞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쇄화되다’라든지 ‘원고화되다’ 같은 말을 쓰는 이들은, 또 ‘서적화되다’ 같은 말을 쓰는 이들은 없을 테지요.
┌ 내 작품이 활자화만 되지 않았을 뿐이지
│
│→ 내 작품이 활자로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 내 작품이 책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 내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 …
그렇지만, ‘-化’가 붙는 말투뿐 아니라, ‘-化되다’라 쓰는 분이 자꾸자꾸 늘어납니다. 시를 쓰는 분은 ‘시화되다’라 말합니다. 노래를 하는 분은 ‘음반화되다’라 말합니다. 방송에서 일하는 분은 ‘영상화되다’라 말해요.
┌ 자신의 글이 활자화된 것을 보는
│
│→ 자기 글이 활자가 된 모습을 보는
│→ 자기 글이 찍혀 나온 책을 보는
│→ 자기 글이 실린 책을 보는
└ …
알맞지 않은 말을 쓰는 일은 알맞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않은 말을 쓰는 일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못났음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스스로 제 얼굴에 먹을 바르는 노릇입니다. 부끄러운 일이고, 창피한 일이며, 고개를 들 수 없는 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잘못과 글잘못으로 부끄러움이나 창피를 느끼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잘못된 말을 쓰고 외려 고개 빳빳한 우리들은 아니온지요. 엉터리 글을 쓰면서 되레 고개 꼿꼿이 세우는 우리들은 아닙니까.
ㄴ. 규격화되다
.. 규격화된 대답이었다. 나머지 말은 매일 숙제 때문에 고생하고, 선생님이 꼭 따르라고 한 지시들이 담긴 수많은 통지문을 읽고 처리하느라 파묻혀 버렸다 .. 《로테 귄/조경수 옮김-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황금부엉이,2006) 31쪽
‘매일(每日)’은 ‘날마다’나 ‘나날이’로 다듬습니다. ‘고생(苦生)하고’는 ‘고달프고’나 ‘힘들고’나 ‘애먹고’로 손보고, ‘처리(處理)하느라’는 ‘다스리느라’나 ‘치러내느라’로 손봅니다.
┌ 규격화(規格化)
│ (1) 공업 제품 따위의 품질, 모양, 크기, 성능 따위를 일정한 표준이나 격식
│ 에 맞게 함
│ - 주요 부품의 규격화 / 생산 시설의 자동화로 제품의 규격화가 이루어졌다 /
│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서 어느 회사의 제품을 사서 쓰나 마찬가지이다
│ (2) 어떤 사물이나 사상, 여론 따위를 일정한 방향이나 틀에 맞도록 함
│ - 획일적인 교육의 단점은 사고의 규격화이다 /
│ 일부 언론사의 영향으로 여론은 점차 규격화되어 갔다
│
├ 규격화된 대답이었다
│→ 판에 박힌 대답이었다
│→ 틀에 박힌 대답이었다
│→ 뻔한 말이었다
│→ 똑같은 말이었다
└ …
공장에서는 ‘규격품’을 만듭니다. ‘규격’이라는 한자말을 달리 담아낼 토박이말을 빚어낼 수 있을 테지만, 이대로 쓰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먼 뒷날 우리 뒷사람이 좋은 토박이말을 빚어내어 알뜰히 담아내어 주기를 기다려 봅니다.
┌ 주요 부품의 규격화 → 주요 부품 규격 맞춤
├ 제품의 규격화가 이루어졌다 → 제품 규격을 맞추었다
├ 획일적인 교육의 단점은 사고의 규격화이다
│→ 틀에 박힌 교육은 생각을 틀에 박히게 하는 말썽거리가 있다
│→ 틀에 박힌 교육 때문에 안타깝게도 생각이 틀에 박히게 된다
├ 점차 규격화되어 갔다
│→ 차츰 틀에 박히게 되었다
│→ 나날이 틀에 박힌 쪽으로 흘러갔다
└ …
그런데 ‘규격’ 뒤에 ‘-化’를 붙인 말투는 어떠할까요. 이러한 말투도 널리 쓸 만할까요.
┌ 공산품은 규격화되어서
│
│→ 공산품은 규격이 맞아서
│→ 공산품은 크기가 같아서
│→ 공산품은 똑같이 만들어져서
│→ 공산품은 다 똑같아서
└ …
쓸 만한 낱말이라면 얼마든지 쓸 일이고, 쓰임새 넓은 말투는 알뜰살뜰 쓸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사고의 규격화”라든지, 이 보기글을 실은 국어사전에 나오는 “획일적인 교육의 단점”이라든지, 이러한 말투는 우리한테 얼마나 알맞거나 좋은 말투일는지 궁금합니다.
“일부 언론사의 영향으로 여론은 점차 규격화되어 갔다”가 아닌 “몇몇 언론사 때문에 여론은 틀에 박힌 쪽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는 “몇몇 언론사 힘 때문에 여론은 자꾸 외곬로 흘러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 나라와 사회와 문화와 교육 모두 틀에 박힌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우리 말과 글 또한 틀에 박힌 말과 글이 되고 말지 않나 싶습니다. 제도권 교육은 제도권 사회를 낳고, 제도권 사회에서는 제도권 문화밖에 살아남을 수 없는 가운데 제도권 말과 제도권 글만 넘치게 되지 않을는지요.
이리하여, 노래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영어로 짓고 알파벳으로 쓰는 일이란 참으로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어느 노래패 일을 맡는 분은 “프리티하고 발랄한 소녀적인 감성을 컨셉으로 하는 걸그룹이 대세인 요즘 애프터스쿨은 파워풀하고 자유분방함을 표출하는 ‘멋있는 언니’가 컨셉트이다” 하고 기자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은 생각도 말도 삶도 놀이도 일도, 또 사회운동이며 정치 경제며 틀에 박히고 판에 박힌 채 다람쥐 쳇바퀴를 돌고 있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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