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일본이 걸어온 길
..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은 대만 출병 이후 근대 일본이 부국강병의 길을 걸었던 것과 형태만 바뀌었지, 본질은 여전히 반복되는 듯한 점이 없지 않다 .. 《아라사끼 모리테루/김경자 옮김-오끼나와 이야기》(역사비평사,1998) 125쪽
“세계대전 패전(敗戰) 이후(以後)”는 “세계대전에 진 뒤로”로 다듬고, “대만 출병(出兵) 이후”는 “대만에 군사를 보낸 뒤로”로 다듬습니다. ‘형태(形態)만’은 ‘모습만’으로 손보고, ‘본질(本質)’은 ‘속살’이나 ‘알맹이’로 손보며, ‘여전(如前)히’는 ‘똑같이’나 ‘마찬가지로’로 손봅니다. ‘반복(反復)되는’은 ‘되풀이되는’으로 고치고, ‘점(點)’은 ‘대목’으로 고쳐 줍니다.
┌ 일본이 걸어온 길은 (o)
└ 부국강병의 길을 걸었던 것과 (x)
처음과 끝을 똑같이 하라는 말은 대통령한테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들 스스로를 보면서도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과 즐기는 놀이 모두 처음과 끝이 고르게 아름답고 싱그럽고 튼튼하며 씩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곧은 일을 처음과 끝이 같도록 꾸리고, 즐거운 놀이를 처음과 끝이 마찬가지이도록 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고받는 말과 글도 처음과 끝이 알맞춤하도록 맞추어야지요. 처음에는 잘 쓰다가 뒤로 갈수록 얄딱구리해지지 않도록, 처음에는 요모조모 마음을 많이 쓰다가 뒤로 가면 어영부영 대충대충 쓰지 않도록 추슬러야지요.
┌ 돈 많고 힘센 나라라는 길을 걸었던 때와
├ 돈과 힘을 북돋우는 나라로 거듭나려던 때와
├ 돈과 힘이 있는 나라로 걸어가려던 때와
└ …
“사람의 길”이 아닌 “사람이 걷는 길”입니다. 한 나라가 나아가는 길도 “나라가 걷는 길”이지 “나라의 길”이 아닙니다. “통일로 나아가는 길”이거나 “통일로 걷는 길”이지, “통일의 길”이 아닙니다. “자주평등으로 나아가는 길”이거나 “자주평등으로 가는 길”입니다. “자주평등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길을 잊습니다. 자꾸 놓칩니다. 자주 버립니다. 자주 등돌립니다. 우리 갈 길을 우리 스스로 붙잡거나 다독이거나 북돋우지 못합니다. 우리 나눌 말을 우리 스스로 챙기거나 일구거나 다스리지 못합니다.
ㄴ. 제힘으로
.. 제힘으로 수프에 밥을 넣고 질척질척해질 때까지 섞어서, 마셔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만든 뒤에 먹는 것이다 … 최소한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 《일본아동문학자협회 엮음/문연주 옮김-하늘은 이어져 있다》(낮은산,2008) 240쪽
“삼킬 수 있을 정도(程度)로”는 “삼킬 수 있을 만큼”으로 다듬고, “먹는 것이다”는 “먹는다”로 다듬으며, “돕는 것이다”는 “돕고 있다”로 다듬습니다. ‘최소한(最小限)’은 ‘적어도’로 고쳐 줍니다.
┌ 제힘으로 (o)
└ 스스로의 힘으로 (x)
보기글 첫머리를 보면 ‘제힘’이라는 말을 알맞게 잘 넣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우리 말은 이렇게 쓰면 됩니다. 이처럼 넉넉하게 쓰고 올바르게 쓰면 됩니다. 그렇지만 그 뒤 몇 줄 지나고 보니 ‘제힘’이 아닌 ‘스스로의 힘’이라는 말투가 튀어나옵니다.
이런. 알맞게 잘 쓴 말투가 몇 줄 이어나가지 못하는군요. 올바르게 적은 말투가 얼마 목숨을 잇지 못하고 마네요. 잘 살리고 북돋운 말투를 살갗 깊숙이 받아들이지 못했는가 봅니다.
ㄷ. 또 하나 이유
.. 아이 키우기가 그리 힘들지 않았던 또 하나 이유는 어려서부터 살림살이가 손에 익었기 때문일 게다 .. 《박영숙-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알마,2006) 20쪽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손질합니다. “때문일 게다”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때문이리라”나 “때문일 터이다”로 손질하면 한결 낫습니다.
┌ 또 하나 이유는 (△)
├ 또 하나 까닭은 (o)
│
└ 또 하나의 이유는 (x)
온 나라를 주름잡는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큰 회사 ‘삼성’은 퍽 예전부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이미지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삼성 회사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광고를 하기 앞서도 이 나라 사람들은 “또 하나의 (무엇)”이라는 말을 제법 쓰고 있었는데, 이 광고가 나온 뒤로는 훨씬 널리 훨씬 더 깊이 “또 하나의 (무엇)”이라는 말투가 퍼집니다.
생각해 보면, 삼성 같은 회사가 “또 하나 식구”나 “또 하나 있는 식구” 같은 말투로 광고를 했다면, 사람들 말투도 “또 하나의 (무엇)”이 아닌 “또 하나 (무엇)”으로 되도록 이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제 스스로 제 말길을 찾아나서지 못하는 가운데, 방송이나 신문이나 책 따위에서 바람처럼 일으키는 말투에 자꾸만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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