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칭찬을 꺼려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뭐냐? 내면의 부추김을 크게 준다는 얘기다. 하물며 사사로운 일 하나에 긍정의 힘을 부여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졸업 시즌이다. 그래서 요즘 학교는 부산하다. 6년 동안 아이들의 생활을 좇아서 그에 맞은 부추김거리를 찾고 있다. 가장 먼저 6년 개근상을 챙겨보았다. 스물아홉 아이들 중 열명. 예년에 비해 조금 높은 수치다.
그리고 6년 정근상(6년 동안 결석 한 번에 조퇴한 번까지 해당) 일곱이었다.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개근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몸이 건강하다는 증거다(1년 개근은 27명이나 시상하지 않는다).
아련한 유년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유독 상 받을 복이 없었던 나는, 어느 해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나, 그해 ‘교내 고전 읽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난생 처음 얼떨결에 당한(?) 일이었다. 그것도 높다란 조회대 위에 올라가 전교생(그 당시 시골초등학교였지만 꽤 규모가 큰 학교였다. 전교생이 600명 가까웠으니까)이 지켜보는 앞에서 상을 받는 그 기쁨을 무엇에 비하랴! 내 모든 기상을 추동하고도 남았다.
그날따라 수업은 지루하게 진행됐다. 집에 가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까닭이다. 마침내 수업을 마치고 십리 길을 한달음으로 달려가 “엄마, 나 백점 받았어!”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좋았던 기분이 한풀 꺾였다. 오뉴월이며 한창 일철이다. 집안 어른들은 논일을 나가고 없을 시간. 그래서 들판으로 내달았지만 양파를 뽑느라 겨를이 없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었다.
누구든지 칭찬을 꺼려할 사람은 없다
사상 첫 최우수상을 받은 감흥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때문에 이후 어떤 상을 받아도 나는 시큰둥하게 대했다. 그런데 교사로서 아이들을 맡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의 ‘가소성’을 발현시키는 데는 상장만한 게 또 없는 것이다.
상은 받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여타 아이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제가 된다. 하고자 하는 열의를 높이는데 참 좋은 불소시개다. 교사라면 마땅히 아이들의 의욕을 부추기는 ‘불잽이’가 되어야한다.
예전 같으면 졸업식에서 ‘성적우수상이 최고의 상’으로 대접받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의례적인 상들은 사라졌다. 대신에 아이들의 소질과 특기를 인정하는 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부문에 걸쳐 모두에게 제각각 다른 상을 준다.
때문에 상장 이름만 들어도 아이들 하나하나의 개성과 적성, 창의성까지 도드라지게 밝혀지게 된다. 상을 주는 사람도 기쁘고 받는 아이들도 만족한다.
하준우, 너는 친구가 많고 또한 우정이 두텁다. 또한 친구를 잘 도와 다른 친구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난 네가 참 부럽다. 이에 ‘서로 잘 도와상’을 주어 너를 칭찬하고 싶다. - 부곡초 6학년 박동혁
장영준, 너는 항상 우리에게 산뜻한 웃음을 준다. 우리가 심심해하거나 지루해 할 때 너의 유머 한 마디는 머릿속을 맑게 하는 청량제와 같다. ‘너무 잘 한다상’을 주어 너를 칭찬하고 싶다. “ - 부곡초 6학년 김성도
신혜진, 너는 날마다 환하게 웃으며 표정이 맑고 자신 있게 행동한다. 그럴수록 더 예뻐 보인다. 그래서 ‘티 없이 맑아 상’을 주어 너를 칭찬하고 싶다. - 부곡초 6학년 하지애
뭐든 잘 지켜상’ ‘너무 잘 한다상‘ ’참 든든한 일꾼상‘ ’서로 잘 도와상‘ ’늘 푸른 솔직상‘ ’티 없이 맑아상‘ 언뜻 이름만 들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잘 지키고, 무언가 해내려고 하는 굳건한 의지와 자신감이 부럽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두 팔을 걷을 줄 알고,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 2009-○ 호
늘 푸른 솔직상
부곡초등학교
6학년 ○반 ○○○
○○○, 너는 너무도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녀
바르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어린이다! 너의 이야기속에는
변함없는 진실이 담겨있고, 너의 행동 하나마다 꾸밈없는
순수함이 아름답게 도드라져 보여. 너는 너이기에 최고다.
이에 모두가 너를 칭찬해주고 싶구나!
2009년 2월 18일
부곡초등학교장 성 낙 진
이번 부곡초등학교 제 82회 졸업생들에게 생활모범상인 ‘늘 푸른 솔직상’ 상장 내용이다. 기존의 해묵은 상장문구를 아이들과 머릴 맞대고 새롭게 마련했다. 그 기본 틀은 전국의 초중등학교 중에서 특별난 상을 시상하고 있거나 시범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시상모형을 참고로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다보니 기본 문틀은 몇 번이나 바꿔야 했다. 때문에 아이들도 이와 같은 상장에 만족하고 있다.
아이들의 존재를 부추기는 유별난 상
어떻게 보면 변화의 대열에서 가장 첨단에 서야할 대상은 학교다. 하지만 학교는 고루하다고 할 만큼 수십 년을 연연토록 기존의 틀을 답습하고 있다. 관행이라는 것 때문이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지금은 아이들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단순하게 상장 문구하나 바꾸는 게 무슨 대수냐고 여길지 모르나, 사회를 변혁하는 바탕은 늘 조그만 일들이 모여 가능했다. 커다란 성공은 지푸라기 같은 하찮은 생각들이 모인 결과다.
모든 이름의 상은 주는 사람도 기쁘고 받는 사람 역시 즐겁다. 연일 이마다 상 복이 줄줄이 터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것이 아니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아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부추기는 상, 아이들의 굳건한 의지를 추동하는 또 다른 상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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