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봄날 오후에 백야도로 간다. 봄볕이 완연하다.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차창으로 달려드는 봄바람이 풋풋하다. 텅 빈 들녘과 산자락에는 따사로운 햇발이 쏟아지고 있다. 봄볕을 듬뿍 받은 보리밭의 청보리는 푸른 융단인 듯 짙푸르다.
곳곳에서 마주하는 마늘밭도 청초하다. 푸른 봄기운이 감도는 백야도 섬마을. 마을 뒷길에 서면 봄바람에 서걱대는 댓잎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바다는 옥빛을 가득 머금고 있다. 백호산 산자락의 산밭에선 촌로가 밭갈이를 한다.
“워~ 이랴! 이랴!”
부지런한 촌로는 벌써 이랑 긴 산밭의 가장자리를 갈고 있다. 밭둑에 삥 둘러선 엄나무의 부러진 가지에서 수액이 흘러내린다. 산자락의 마른 잎은 봄바람이 속삭이듯 다가설 때마다 봄노래를 불러댄다.
촌로가 쟁기로 갈아엎은 밭이랑에서는 봄내음이 물씬물씬 묻어난다. 흙의 향취에 취했다. 어린 시절의 고향 풍경이 언뜻 스쳐지나간다. 낯선 나그네가 다가서자 밭갈이에 열중하던 우공이 낯가림을 한다. 우공은 왕방울 눈을 껌벅이며 곁눈질을 하며 천천히 걷는다.
“이랴~ 어서가자!”“벌써 밭갈이를 하네요?“봄의 씨앗을 널라니까 갈아요.”“소가 낯가림을 하고 일이 서투르네요.”“와따~! 이래도 2년을 가르친거요. 이랴! 가자 이놈아”
여수 화정면 백야리 남서쪽에 있는 조그만 섬 백야도에 봄이 오고 있다. 백야도의 봄은 한 촌로가 우공과 함께 쟁기로 산자락의 비탈 밭을 갈아엎어 캐내고 있다. 우공은 입마개를 한 채 묵묵히 일을 한다.
“기계로 로타리를 하면 흙이 잘 뒤집어지질 않아요. 비탈 밭은 쟁기로 갈아야 수월해. 이곳은 친환경농업을 하는디 일 년에 밭을 두어 번 뒤집어줘요.”“무슨 작물을 심을 거예요?”“유기물 토양을 만들어 친환경 옥수수를 심을 거요.”
쟁기질을 하는 촌로는 고준채(72)씨다. 우공은 5살이며 이번에 2번째 새끼를 뱄다. 산달이 보름여 남았다고 한다.
“우공과 함께 사시나요?”“소막사는 따로 있어. 두엄내기 편할라고 산밭에다 막사를 지었어. 옛날같이 집에다 기른 사람이 없어”“소가 사람을 알아보나요?”“사람을 알아봐.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알아.”이제 우공은 보름여가 지난 따사로운 봄날 송아지를 출산할 것이다. 그래서 촌로는 우공이 혹여 힘들까봐 쉬엄쉬엄 산밭을 갈고 있다. 백야도의 봄은 소 쟁기 밑에서 삐죽삐죽 땅을 비집고 그렇게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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