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말대로 삼각산의 신령하고 밝은 기운 때문일까? 북한산 자락 수유리(인수동)는 민족을 빛내고 나라를 위해 묵묵히 살아가신 분들과 관계가 깊다. 국립4.19묘지와 순국선열의 묘는 물론이고 민족의 독립과 통일, 민주화를 위해 일하신 분들이 이곳저곳 살아계신다.
인수동사무소 바로 뒤에 있는 ‘통일의 집’도 그 하나다. 고(故) 늦봄 문익환 목사의 반려자이자 평생을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일해온 '통일 할머니' 박용길 장로가 여기 살고 있다. 3.1만세 운동이 있던 1919년에 태어나 올해로 구순 하나이신 백발이 무성한, 그러나 정정하신 할머니다.
‘통일의 집’은 밖에서는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민족사박물관이다. 민족 현대사에 기념할만한 사진과 문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박씨는 생생한 ‘통일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때 전시된 자료들은 당시 생생한 역사 현장을 증언해 준다.
정원에 들어서면, 평화를 기원하는 솟대가 반갑게 맞이한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거실에는 문익환‧장준하‧함석헌‧김대중‧윤보선 등 대번 알아볼 수 있는 분들의 사진과 글이 가득 차 있다. 할머니는 우리를 방으로 안내했다. 방안에도 역사적 유물이 전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유물 속에서 할머니가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는 것은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익환 목사님이 거침없이 민주․통일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인 박용길 할머니의 몫이 컸다. 할머니는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민가협)활동을 해왔고, 현재 '통일맞이' 상임고문으로 민족 화해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다. 작년에는 금강산과 개성관광 중단되었고, 올해 들려오는 소식도 차갑기만 하다. 그럴수록 할머니의 간절한 마음은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다.
"한 나라가 둘로 나뉘어져서, 이게 무슨 꼴인가 싶어요.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일이라면 어디든지 가야겠지요."일제 식민지와 분단, 독재의 아픔을 한 몸으로 받아오며, 민족 자주와 민주의 길을 온 몸으로 열어 오셨던 분답다. 할머니는 과거 "민주화해라, 빈익빈 부익부를 시정하고 민주주의 신념을 회복하고 통일의 길을 닦아라"고 외쳤다가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재판관에게 유죄를 언도받았지만, 역사의 재판장에서는 무죄를 인정받았다.
유신의 비민주성을 밝힌 성명사건도 역사는 무죄를 언도했다. 통일 할머니는 이곳을 찾는 청년들에게 "권력을 두려워하지 말고 민족과 시대의 과제를 거침없이 풀어가라"고 외치고 계신다.
덧붙이는 글 | 북한산 자락 인수동 아름다운 마을신문 www.welife.org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