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판사 개인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법원 전체로 볼 때는 언론의 공정 보도 없이는 국민의 신뢰를 얻는 법원으로 거듭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소송을 하게 되었다."
현직 판사가 <조선일보>의 기사로 자신과 법원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지난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정진경 부장판사는 "<조선일보>의 '막말 기사'에 대한 소송을 계기로 언론의 법원에 대한 보도 태도가 개선되기를 기대한다"며 기사를 쓴 류아무개 기자와 <조선일보>를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판사가 언론사를 상대로 제소하는 일은 흔치 않다. 도대체 어떤 내막이 있었을까. 현직 판사와 <조선일보>의 진실게임이 법정으로 가게 된 사연을 보자.
<조선> "불공정 재판 시비" 보도... 해당 판사 "악의적 왜곡·명예훼손"이 문제의 발단은 석 달 전 <조선> 기사였다. 지난해 11월 18일 <조선>은 "법관평가제 부른 어느 판사의 재판"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서울 지역의 한 법원에서 빚어진 '불공정' 재판 시비 때문에 변호사 단체들이 법관평가제도를 도입할 전망이다"라고 시작하면서 법관평가제 도입의 계기가 되었다는 A 부장판사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은 서울변호사협회(서울변협)와 B 변호사의 주장을 토대로 A 부장판사가 특정 사건의 원고와 원고 대리인인 B 변호사에게 ▲변호사생활 몇 년 했느냐는 등 막말을 하고 ▲손해배상 감정신청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일방적으로 퇴정하였으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기각하는 등 불공정 재판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결국 A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면서 뒷부분에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취지로 A 부장판사의 전화통화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했다. 기사에 나온 A 판사는 정진경 판사였으나, <조선>은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조선>은 그 후에도 이 사건과 관련한 보도를 몇 차례 더 냈다.
이 기사가 나간 직후 정진경 판사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채 사실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나와 법원의 명예를 훼손한 기사"라고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기사가 나온 당일인 작년 11월 18일 법원공무원노동조합도 성명을 내고 "<조선>은 해당 변호사가 변론기일 전날 기피신청을 낸 점, 불성실하게 재판에 임한 점, 재판부에 무례한 행동을 한 점 등 변호사의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변호사와 서울 변협의 주장을 토대로 '소설'에 가까운 기사를 써냈다"고 비판하였다.
정 판사는 기사가 나온 지 1주일 후 해당 기자에게 유감의 뜻을 전하는 전자우편을 보냈으며, 작년 12월에는 서울변협과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에 진상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정 판사는 진상조사 요청서에서 "(대한변협의) 진상 조사 결과 제가 편파적으로 불공정한 재판을 진행한 것이라면 20년간 지켜온 법관의 직을 물러날 것"이라고까지 밝혔다.
<조선일보>와 대한변협 등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정 판사는 결국 소송을 내게 된 것이다.
정 판사 "B 변호사와 <조선>이 법원 권위 실추" 정 판사는 <조선>의 기사가 사실관계부터 왜곡했다고 지적한다.
우선 법정에서 B 변호사에게 막말을 하였다는 부분이다. 정 판사는 "B 변호사가 자꾸 재판장의 말을 끊어버리기에 먼저 들은 후에 의견을 이야기하라고 하였다. 그런데도 자신의 말을 먼저 들으라고 발언하기에 '변호사 생활을 얼마나 하였느냐'고 물어보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감정신청 철회 요구 부분도 왜곡되었다는 것이 정 판사의 주장이다. 정 판사는 "감정신청에 대해 B 변호사에게 재판부의 의견을 제시하였을 뿐 철회를 요구한 사실이 없다. 다만, 감정료만 2천만원 이상이 드는 만큼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그밖에 기사에 나온 다른 주장에 대해서도 정 판사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 판사는 <조선>의 기사가 ▲준비기일에 재판부의 견해를 전달한 후 준비절차를 주심판사가 진행할 것임을 고지하였는데도 일방적으로 퇴정한 것으로 보도하였고 ▲ 변론기일 하루 전에야 B 변호사가 기피신청을 하고 아예 변론기일에 출석조차 하지 않은 채 온갖 허위사실로 재판부를 비방하는 상황이 있었는데도 단순히 기피신청을 기각한 것처럼 썼다는 것이다.
정 판사는 "재판이 상당히 진행된 상황에서 기피신청을 이유로 사건을 다음 재판부로 넘기는 것은 판사로서 정당한 자세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고 말했다.
정 판사는 "B 변호사가 단순한 사건 대리인의 지위를 넘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였고, 재판 내내 자신들의 뜻대로 재판이 진행되지 않자 재판부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재판부를 괴롭혔고, 준비절차 종결 후에는 불리하다고 느끼자 변론기일 하루 전에 기피신청을 하였다"고 항변했다.
그는 "B 변호사가 재판의 결과가 불리할 것이 예상되자 언론(<조선일보>)까지 동원하여 재판부를 비난하였고, 언론도 법원의 권위를 깎아내린 셈"이라고 주장했다.
"'막말 판사'?... 제목부터 공정보도와 거리 멀다"정 판사는 <조선일보>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취재에 응하여 충분한 설명을 하였음에도 익명을 이용하여 나와 법원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글을 싣는 <조선>에 대해 적절한 대응수단으로서 소송을 하게 되었다"며 "이 사안은 제목부터가 '법관평가제 부른 어느 판사의 재판', '막말 판사에 똘똘 뭉친 변협' 등을 사용하는 등 언론의 공정보도와는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사법부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과 법원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판사들과 법원 직원들은 "기자들이 자신의 기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거나 "이번 기회에 보수언론들의 잘못된 보도 행태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판 결과를 떠나 주목받는 소송임에는 틀림없다.
정진경 판사 "중간에 소송 접는 일 없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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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느 판사에 대하여 옷 벗고 시위대에 합류하라고 한 <조선일보>의 '막말 기사'에 큰 충격을 받았고, 저에 관한 '막말 재판' 보도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진경 판사는 오늘(9일) 사법부 내부게시판에 "제소의 변"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정 판사는 오전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이 사건을 담당할 재판부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앞으로는 언급을 자제하겠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왕 여기까지 온 이상 (소송을) 중간에 그만두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뜻을 굽힐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 판사는 "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한 쟁송이 저 개인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개인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판사는 "혹시 승소하게 된다면 (승소금액을) 차별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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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