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작품화하다
.. 로트렉은 그녀들 속에서 생활하며 그녀들을 속속들이 관찰했기에, 그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를 작품화할 수 있었다 .. 《장소현-뚤루즈 로트렉》(열화당,1979) 57쪽
“그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라는 대목이 좋습니다. 으레 토씨 ‘-의’를 끼워넣어 “그만의 세계”라고 하거든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그만이 그릴 수 있는”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만이 찍을 수 있는”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만이 쓸 수 있는”으로 알맞게 풀어내어 쓰면 됩니다.
‘그녀들’은 글흐름에 따라 ‘창녀들’로 고치고, “그녀들 속에서 생활(生活)하며”는 “창녀들과 함께 살며”나 “창녀들과 부대끼며”로 고쳐 줍니다. ‘관찰(觀察)했기에’는 ‘살펴보았기에’로 다듬습니다.
┌ 작품화 : x
│
├ 작품화할 수 있었다
│→ 작품으로 빚을 수 있었다
│→ 작품으로 남길 수 있었다
│→ 작품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
│→ 작품으로 선보일 수 있었다
└ …
‘영화화하다’가 아닌 ‘영화로 찍다’입니다. ‘소설화하다’가 아니라 ‘소설로 쓰다’예요. ‘작품화하다’는 ‘작품으로 남기다’라든지 ‘작품으로 선보이다’처럼 고쳐써야 알맞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작품으로 남기다”라 하지 않고 ‘남기다’나 ‘보여주다’나 ‘그리다’나 ‘담다’나 ‘펼치다’라고만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 그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를 그릴 수 있었다
├ 그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를 담을 수 있었다
├ 그만이 그릴 수 있는 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
└ …
아무 자리에고 붙여서 말이 될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化’가 아닙니다. ‘-化’를 도깨비방망이로 여기며 아무 자리에나 쓴다면, 말이 엉망이 되고 글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뜻은 두루뭉술해지고 느낌은 흐리멍덩해집니다. 우리는 어디 먼 나라 말이 아닌 우리 말에 살가이 눈길을 두며 찬찬히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ㄴ. 공원화하다
.. 지난여름의 수해 같은 도시 사고, 그리고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를 공원화하겠다는 도시계획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 .. 《김형국-하면 안 된다》(지식산업사,1986) 57쪽
“지난여름의 수해(水害)”는 “지난여름에 일어난 물난리”나 “지난여름 물난리”로 다듬고, ‘그것을’은 ‘이를’로 다듬습니다. ‘구(舊)’라 하지 않고 ‘옛’이라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 공원화(公園化) : 공원으로 만들거나 공원처럼 꾸밈
│ - 주민들의 반대로 공원화 계획이 취소되었다 / 광장이 공원화되다
│
├ 공원화하겠다는 도시계획
│→ 공원으로 꾸미겠다는 도시계획
│→ 공원으로 삼겠다는 도시계획
│→ 공원으로 가꾸겠다는 도시계획
└ …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공원화’가 한 낱말로 올라 있습니다. 뜻밖입니다만, 그만큼 이 낱말이 많이 쓰였다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그러면, 이 낱말이 국어사전에 오를 만큼 널리 쓰일 만한지, 우리가 이와 같은 낱말을 얼마나 써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은 꼭 한 낱말 ‘공원화’를 말해야 할까요. 한 낱말이 아닌 “공원으로 꾸미다”나 “공원으로 만들다”라고 말하면 모자랄까요. 우리가 국어사전에 올려야 하는 낱말은 ‘공원화’일까요. 이런 낱말을 괜히 국어사전에 하나둘 실어 놓는 가운데 정작 우리가 국어사전에 실어 놓고 널리 나누거나 익히거나 껴안을 낱말을 잊거나 잃고 있지는 않을까요.
┌ 주민들의 반대로 공원화 계획이 취소되었다
│→ 주민들이 반대하여 공원 만드는 계획이 취소되었다
│→ 주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공원을 못 짓게 되었다
├ 광장이 공원화되다
│→ 광장이 공원으로 되다
│→ 광장이 공원으로 바뀌다
│→ 광장이 공원으로 꾸며지다
└ …
쓸 만한 낱말은 써야 합니다. 쓰임새 높은 낱말은 국어사전에 실어야 합니다. 그러나 널리 쓰고 있는 낱말이라 하여도 올바르게 쓰고 있는지 돌아볼 노릇이고, 쓰임새 높은 낱말이라도 알맞춤하게 쓰이면서 사람들 입과 손에 익게 되었는지 살필 일입니다.
┌ 쉼터
├ 마을쉼터
├ 숲터
├ 이야기터
└ …
‘공원’은 한자말입니다만, 꼭 걸러내어야 할 낱말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나름대로 우리 삶터를 좀더 살뜰히 돌아보면서 우리 삶터 이야기를 담아낼 만한 새 낱말을 빚어 보고자 마음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쉼터’라는 낱말이 생겨나서 쓰인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생각해 보면서, ‘마을쉼터’라든지 ‘동네쉼터’라든지 ‘나라쉼터’라든지 ‘자연쉼터’ 같은 낱말을 가지치기해 볼 수 있습니다. 놀이터와 일터처럼 ‘숲터’나 ‘꽃터’나 ‘나무터’ 같은 낱말을 빚어 볼 수 있습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쉬는 자리라는 뜻으로 ‘이야기터’ 같은 낱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한 글자 줄여 ‘얘기터’로 하거나, 또 한 글자 줄여 ‘말터’라 할 수 있고요.
말이란 쓰는 사람 나름이고, 생각하는 사람 나름이며, 가꾸는 사람 나름입니다. 우리가 우리 말을 좀더 알맞게 쓰려고 한다면 더욱 알맞는 쓰임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말에 생각을 한껏 쏟아 본다면 한결 훌륭한 새 낱말을 일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말을 우리 손으로 가꾸면서 보듬는다면 나라 안팎으로 우리 글을 자랑하는 일이 아닌 우리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운 삶을 꾸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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