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3시께 '경찰을 다시 짭새라 불러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블로그 글을 올렸다. (
http://blog.ohmynews.com/gauzari/235766)
1980년대 학생들은 경찰을 '짭새', 형사를 '곰'이라고 불렀지만 1990년대 말부터 이런 이름도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촛불과 용산참사 뒤 경찰의 행태를 보면 이제 다시 '짭새'라 불러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올린 게 29일 오후 3시 36분인데, 2시간 뒤인 오후 5시 39분 43초에 댓글이 하나 달렸다.
'광파리'라는 아이디의 이 인물은 '짧고 굵게' 악플을 달았다.
'미친놈 맞을 짓만 골라하고 다녔네. 또라이 시끼, 그래도 지네 엄마 강간 당하면 경찰에게 잡아달라고 애걸할 껄 븅신시끼...'기자 생활 하면서 별별 악플 다 겪어봤다. 심지어 살해 협박 이메일도 받아봤다. 그러나 내 개인을 겨냥한 것이어서 그냥 넘어갔다. IP추적을 해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화가 꽤 났다. 나 혼자 욕먹으면 참고 말면 그만인데 가족을 끌어들이면 화가 더 나는 법이다.
댓글 내용으로 볼 때 악플러가 혹시 경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블로그 내용이 경찰을 비난하는 것이니 그들 처지에서는 화가 날 수도 있다. 만약 나 혼자만 겨냥한 쌍욕 댓글을 달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도가 심했다.
난생 처음 악플러 IP(118.44.×××.250)를 추적해 봤다. 예상대로였다. 충북경찰청이었다.
지난 5일 충북경찰청 홍보실에 자초지종을 말하고 캡처한 화면을 보내줬다. 다음날 오전 홍보실 관계자가 연락을 해왔다.
그는 "그 IP 자체는 충북경찰청 것이 맞다, 그런데 1월 초에 방화벽을 교체하면서 로그 기록이 모두 사라졌다"며 "설사 피해자가 민형사 고소를 해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다 해도 댓글 단 사람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파악해 보니 젋은 전경이었다, 양해해달라" 정도 수준일 줄 알았더니 아예 잡을 수 없단다.
충북경찰청 시스템 담당자의 설명은 이랬다.
"변명 같이 들리겠지만…1월 초에 방화벽을 교체하면서 P사의 새 장비를 들여왔다. 그런데 새 장비에 익숙하지 않아 우리가 세팅을 잘못했다. 이전 장비는 무조건 로그 기록(컴퓨터의 인터넷 접속 기록)이 남았지만 새 장비는 항목별로 로그 기록을 남길 수도 있고 안 남길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세팅을 잘못해 충북경찰청 홈페이지에 접속한 로그 기록만 있을 뿐 다른 로그 기록은 전혀 없다. 우리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기자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됐다."충북경찰청의 경우 민원실과 보안이 중요한 수사 부서, 그리고 전경들은 다른 망을 쓴다. 즉 그 IP 자체는 충북경찰 본청 및 산하 직원이 쓰는 컴퓨터 가운데 수사 부서 이외의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다.
같은 IP로 1월30일 오전 <오블>(<오마이뉴스> 블로그)의 다른 블로거의 용산 참사 관련 글에도 댓글이 달린 것으로 봐서 악플러는 충북경찰청 소속 직원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충북경찰청과 그 산하 11개 경찰서는 모두 같은 망을 쓰는데 여기에 물린 컴퓨터가 3000대 정도란다.
118.44.×××.250은 공인 IP다. 즉 충북경찰청 컴퓨터는 인터넷에 접속할 때 방화벽을 거치면서 오직 이 하나의 IP만으로 표시된다. 로그 기록이 없다는 충북경찰청 쪽 해명이 사실이라면 악플러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언뜻 생각해 보니 영장을 받아 3000대 컴퓨터 전체를 압수해 하드 기록을 뒤져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내가 사이버 범죄 수사대에 신고한다고 해도 이 사건이 제대로 처리될까? 혹시 내가 조중동 기자였고 그런 류의 악플러 IP를 추적해 보니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것이었다면 압수수색 영장 발부받아 사무실을 뒤집어 놓았겠지만….
용산 참사 수사과정에서 경찰의 숱한 말바꾸기와 검찰의 편파적인 수사 행태를 볼 때 이번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이 될 것이 뻔하다. (하기야 경찰이 악플 단속한다는 말은 숱하게 들어봤는데 경찰이 악플 달다가 잡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사건은 한편으로 이명박 정권이 추진 중인 사이버 모욕죄의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잘 보여준다. 정권 반대세력의 댓글러들은 '모욕'이라는 불분명한 잣대로 잡아들일 것이고 친정부 세력들이 반대 집단에게 가하는 온갓 '사이버 테러'는 눈감아 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이버 모욕죄 취지대로라면 내 블로그에 악플 단 그 경찰 추정 인물은 갖은 핑계로 잡히지 않을 것이고 되레 "경찰을 짭새, 형사를 곰이라고 불러 모욕했다"며 내가 붙들려 갈 것같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10일 자진사퇴 기자회견에서 "공권력이 절대로 불법 앞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는 조직 내외의 요구가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나의 사퇴가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일선 경찰들도 똑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자기 내부 인물로 추정되는 '사이버 테러범'도 못 잡는 것인지 안 잡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찰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나 마찬가지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현재로서는 이것뿐이다.
"악플 단 경찰 추정 인물 자수하여 광명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