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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1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과거 독재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는 공작 정치와 인권 탄압의 산실이었다. 그들 기관의 수장은 사실상 정권의 2인자로 행세하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최고 권력자의 '보위대'로 구실하며 야당을 탄압하고 정치, 경제, 언론, 종교, 학술, 문화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업무였다. 또한 고문과 강압수사를 통해 무수한 조작사건들을 붕어빵 찍듯 찍어낸 것도 그들이었다.

그런 일을 못하게 하고, 하지 않은 것은 분명 '민주정부' 10년의 성과였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어둠의 시대와 단절하고 새로운 정보기관의 상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지난 10일 국회에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되돌리는 ‘중대 발언’이 등장했다. 인사청문회에 나온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국정원의) 정치정보 수집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당당히 쏟아낸 것이다.

현행법상 국정원의 업무범위는 해외정보 수집과 국내대공정보 수집으로 제한돼 있다(국정원법 3조). 따라서 국정원의 정치정보 수집은 권한남용이며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한 원세훈 후보자의 태도는 당당함을 넘어 단호하기까지 하다. “(법을) 고쳐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은 과격한 역주행이지만, 이것은 아예 대놓고 독재시대로 되돌아가겠다는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일이다.

용산사태에서 보듯 경찰은 이미 정권의 돌격대가 되었으며, 민주화시대 그토록 독립성을 외치던 검찰은 정권의 시녀를 자청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정보원이 권력기구로 부활하여 정권의 보위기구로 재탄생하면 21세기 대한민국에 재현되는 것은 말 그대로 ‘동토의 왕국’이다.

나는 17대 국회에서 '국가정보원개혁소위원회' 위원장을 잠시 맡았던 적이 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남북화해 시대를 맞이한 상황에서, 지난날 권력남용과 인권침해로 국민의 총체적 불신을 받았던 국가정보원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개혁의 목표였다.

당시 나는 여러 동료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국정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하였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수사권을 폐지’하고 ‘정치정보수집 금지’를 법제화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CIA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정보기관들은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게 되면 수사를 통해서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정보기관의 자연스런 생리이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은 헌법기관도 아니며 행정각부에 속하지도 않는 특수기관이므로 국정원의 수사권 행사는 헌법이 제96조에서 명시한 행정조직 법정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수사권을 폐지하고 대공사건의 수사 또한 검찰과 경찰에 일임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가졌던 것은 어두웠던 독재시대의 산물이다. 그리고 고문수사와 사건조작으로 인한 엄청난 인권침해가 일어났다. 국가가 여덟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아 사형시켰던 인혁당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32년이 지난 2007년 고인들은 무죄가 확정됐지만 우리는 그분들을 다시 살려낼 수 없다.

한편 과거 독재정권에서 자행됐던 정보기관의 공작정치, 정치사찰, 불법도청 등 권력남용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가로 막는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따라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통치권자의 자의에 의해 정보기관이 국내정치에 동원되는 것을 막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정보기관의 권력남용과 정치적 동원의 근거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국정원의 ‘정치활동 관여를 위한 정보수집 금지’를 법에 명시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을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만약 17대 국회에서 이 같은 국정원 개혁법안이 통과됐다면, 오늘날 정권이 한나라당에 넘어갔다 하더라도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역사 되돌리기는 시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7대 국회의 국정원 개혁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 추진 주체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당시에도 국정원은 ‘절대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대연정과 FTA 추진 등으로 표류하고 있던 참여정부는 국정원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는 “(국정원이) 지금처럼 가면 제도적으로 큰 개혁을 안 해도 되는 수준”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국정원을 개혁할 추진 동력을 상실하였다. 나 또한 국회 정보위원에서 물러나고, 이후 열린우리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남게 되면서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참여정부와 17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국정원 개혁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정과 상관없이 민주화 이후 국가정보원의 탈권력화는 역사의 커다란 흐름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현행법으로도 정보기관의 정치사찰과 정치개입은 엄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법을 바꾸면서까지 어두웠던 과거로 되돌아가겠다는 이 정부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찬성할 국민은 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야당은 지금이라도 17대 국회에서 좌절됐던 국정원의 정치정보수집 금지와 수사권 폐지를 법제화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을 또 다시 암흑의 세상으로 만들려는 이 정부의 시도를 국민과 함께 저지하고 국정원 개혁을 단호히 관철시켜야 한다.

끝으로 여당 의원들에게 옛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돌아가신 성곡 김성곤 선생은 박정희 정권 시절 한국정치를 주름잡았던 여당(민주공화당)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멋있게 기른 콧수염은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데 1971년 9월 야당인 신민당이 물가폭등, 실미도 사건, 광주대단지 소요 사태 등을 이유로 오치성 내무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냈고, 공화당 소속 일부 의원들의 동조로
이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른바 10.2 항명사건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진노했고 김성곤 선생을 비롯한 20여명의 여당의원들이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주모자를 대라’는 취조와 고문을 받았다. 당시 정보부 수사관들에게 공화당 의원들이 각목 세례를 받고, 김성곤 선생은 상표처럼 달고 다니던 콧수염을 뽑혔다는 일화는 어두웠던 독재 시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우울한 삽화로 지금까지 전해진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금 정권을 잡고 다수당이 됐다하여 정부의 공안통치 강화 움직임에 마냥 박수 치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정권의 보위기구로 전락한 정보기관은 권력자에게 반대하는 사람의 소속을 따지지 않는다. 그 칼끝이 겨냥하는 것은 단지 야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일반국민 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수의 논리를 앞세워 독재로 가는 급행열차에 탑승해서는 안 된다. 여당 정치인들에게도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임종인 기자는 변호사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원세훈#국가정보원#정치사찰#정치정보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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