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하지만 선생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펑크족 여자아이(남자아이?)는 자신의 귀를 막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이하영-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양철북,2008) 125쪽
“자신의 귀를”은 “자기 귀를”로 다듬거나 “귀를”로 다듬어 줍니다.
┌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
│→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 짜증을 내며 말했다
│→ 짜증 부리며 말했다
│→ 싫다는 듯이 말했다
│→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 거슬리다는 듯이 말했다
│→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다
│→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 …
마음이 좋을 때에는 신경질을 부리지 않습니다. 마음이 나쁠 때에 신경질을 부리게 됩니다. 마음이 느긋할 때에는 신경질을 부리지 않고, 마음이 안 좋거나 못마땅할 때에 신경질을 부립니다. 그런데 ‘신경질’이란 무엇일까요. ‘신경’이란 또 무엇일까요.
┌ 신경질(神經質) : 신경이 너무 예민하거나 섬약하여 사소한 일에도 자극되어
│ 곧잘 흥분하는 성질
│ - 신경질을 내다 / 신경질을 부리다 / 그는 신경질이 많다
└ 신경(神經)
(1) [의학] 신경 세포의 돌기가 모여 결합 조직으로 된 막에 싸여 끈처럼 된 구조
- 신경을 자극하다 / 발뒤꿈치의 신경이 마비되도록
(2) 어떤 일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
- 신경이 무디다 / 신경에 거슬리다 / 신경을 한곳에 모으다
“어떤 일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신경’이라고 하기에, “신경이 무디다”는 “느낌이 무디다”로 풀어낼 수 있지만, “신경에 거슬리다”와 “신경을 한곳에 모으다”에서는 걸맞지 않습니다. “마음에 거슬리다”나 “마음을 한곳에 모으다”로 풀어내어야 걸맞습니다. 그러면, 말뜻도 ‘느낌이나 생각’이라기보다는 ‘마음’이라고 적어 주어야 알맞지 않으랴 싶어요.
“신경이 예민하여 사소한 일에도 흥분하는 성질”이 ‘신경질’이라는데, 국어사전에서 ‘짜증’ 말뜻을 찾아보면, “마음에 꼭 맞지 아니하여 발칵 역정을 내는 짓”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이 대목에서도 한자말 ‘신경’이란 토박이말 ‘마음’을 가리키고 있음을 헤아릴 수 있고, ‘신경질’ 뜻풀이도 퍽 어렵게 한자말로만 엮어 놓았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나저나, ‘신경-신경질’이라는 낱말은 언제부터 우리 말에 스며들어서 오늘날처럼 두루 쓰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네 옛사람들은 이와 같은 낱말로 제 마음과 느낌을 담아냈는지 궁금합니다.
┌ 짜증 / 싫음
└ 성가심 / 귀찮음 / 거슬림 / 못마땅함 / …
모르는 일이지만, 지난날 이 땅 사람들은 ‘신경-신경질’이라는 낱말은 안 쓰면서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다른 수많은 한자말처럼, ‘신경-신경질’도 일제강점기 앞뒤로 일본을 거쳐서 들어오지 않았으랴 싶고, 지식인들만 즐겨쓰다가 차츰차츰 신문과 책과 방송에 쓰이면서 우리 입과 귀에도 익숙해진 낱말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짜증’이라는 말을 썼겠지요. 그리고 ‘싫다-성가시다-귀찮다-못마땅하다-거슬리다’ 같은 낱말을 쓰면서, 때로는 ‘내키지 않다-마땅하지 않다-마뜩하지 않다-달갑지 않다-반갑지 않다’ 같은 말을 쓰면서 우리 뜻과 마음과 생각을 주고받았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우리 국어사전에는 ‘짜증’ 한 마디만 실리고 ‘싫음’이나 ‘성가심’이나 ‘귀찮음’ 같은 낱말은 실리지 않습니다. 그림씨와 움직씨가 이름씨 꼴로 실리지 않아요. 영어사전이나 나라밖 말을 다룬 수많은 사전을 살피면, 그림씨와 움직씨를 실으면서 이런 낱말을 널리 쓸 수 있게끔 ‘이름씨 꼴로 바꾼 낱말’도 함께 실어 놓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제 나라 말을 좀더 널리 헤아리면서 쓸 수 있는 기틀이 닦이고, 차근차근 말 기틀이 닦이면서 말 문화가 자라거나 북돋우게 됩니다만, 우리 국어사전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갈고닦도록 돕거나 이끌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 국어사전은 그림씨는 그림씨로만 못박고 움직씨는 움직씨로만 못박는데다가, 이름씨 또한 이름씨 하나로만 쓰도록 못박습니다. 낱말뜻을 살펴보아도 그래요. 어느 낱말이든 한 낱말에 한 가지 뜻으로만 쓸 수 없는 법입니다. 두 가지 세 가지로 차근차근 가지를 칩니다. 그런데 우리 국어학자는 우리 말에 새로운 말뜻을 더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새롭게 쓰는 말뜻이 있어도 덧달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재미나다’는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만 ‘신나다’는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습니다. ‘짜증나다’도 국어사전에 실려 있지 않아요. ‘샘나다’, ‘바닥나다’, ‘거덜나다’처럼 ‘사랑나다’, ‘믿음나다’, ‘힘나다’, ‘기운나다’ 같은 새 낱말을 얼마든지 지을 수 있고 쓸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북돋우면서 새힘을 불어넣는 일은 거의 찾아보지 못합니다.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지, 어쩔 수 없어도 애써야 하는 일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온나라가 영어 잘 배우기에만 치우치는 터라 우리 말을 제대로 알고 생각하며 쓰기하고는 동떨어지게 되니 그저 손을 놓아야 할는지, 아무리 세상이 이렇더라도 차근차근 낮은자리부터 애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마땅하다 / 못마땅하다
└ 마뜩하다 / 못마뜩하다
‘못마땅하다’라는 낱말을 뜯으면, ‘못 + 마땅하다’입니다. 그래서 ‘마땅하다’와 소리와 뜻이 비슷한 ‘마뜩하다’ 같은 낱말은 ‘못 + 마뜩하다’ 꼴로 해서 ‘못마뜩하다’처럼 써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갈고닦아 주면 우리 말도 얼마든지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글을 손질하고 보듬어 주면 우리 글도 얼마든지 튼튼하게 커 나갑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갈고닦지 않으면, 국어사전은 국어사전대로 앞뒤가 어긋나거나 형편없는 모습이 고쳐지지 않는 가운데, 우리 생각과 넋을 우리 말에 차곡차곡 담아내기 어려워집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 글을 손질하거나 보듬지 않으면, 앞으로도 오래오래 ‘우리 말에 한자가 절반이니 2/3니’ 하는 중얼거림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 우리 마음과 얼을 우리 글에 고이고이 실어내기 힘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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