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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의 삶과 사랑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땅-생명의 기운을 짓밟고 자리한 삭막한 회색도시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소란 동물이 단순히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광우병도 이 때문에 생긴거다...)을 채워주기 위해 제 생을 모두 살지 못하고 도살 당해야만 하는 가축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벗임을 영화는 잊혀져간 소리를 통해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소리에 공명-감동한 사람들은 점점 삶과 생명에 눈뜨기 시작했고, 어느새 30만이 넘는 관객들은 기적처럼 울린 워낭소리에 꽁꽁언 땅을 녹이는 촉촉한 봄비처럼 눈물을 내리고 있다.  

* 워낭 : 마소의 귀에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소와 함께 한집에서 먹고 자며 살아온 농사꾼 부부는 영화를 보러간다.
소와 함께 한집에서 먹고 자며 살아온 농사꾼 부부는 영화를 보러간다. ⓒ 워낭소리

이 영화를 오늘(13일) 어머니는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아버지와 함께 보러 가신다고 한다. 비가 와도 걱정 안와도 걱정인 게 농사꾼이라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대개 집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아직 본격적인 농사철도 아니니 오늘처럼 하루종일 봄비가 내리는 날은 집에서 TV를 보거나 부침개를 부쳐 먹거나 낮잠을 자면서 하루를 보내기 일쑤인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꼬드겨서 영화를 보러 가겠다 하신다. 평소 두 분이서 나란히 영화를 보러 가거나 다른 취미생활을 하시지 않는 편인데, 어머니는 오늘 <워낭소리>를 꼭 보러 가시겠다 한다.

단비 내리는 날, 어머니는 워낭소리를 보러 가신다!!

농사꾼 집안의 고지식한 장남에게 시집와 낯선 농삿일과 고된 집안일을 하며 자식을 낳고 길러온 어머니에게도, 한집에서 함께 살아온 소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보다 어렸을 적부터 소가 소를 낳는 것을 지켜보고 송아지를 받아내고, 그 소를 위해 꼴을 베고 여물로 쇠죽을 끓이고 똥을 치우고 축사를 깨끗한 짚으로 덮어주고 아침 저녁으로 돌보며, 달구지와 쟁기로 소와 함께 일하며 살아온 할아버지와 다름없는 아버지는 더욱 그러할 듯 싶어 어머니는 생떼 아닌 생떼를 부리신게 아닌가 싶다. 친목회에 가기 전에 어린 조카와 놀고 싶어 "아이참! 무슨 영화인데 그러냐"면서 투정부리는 아버지를 어린애 다루듯 달래면서.

아참 오래전 아버지는 밭에서 일하다 우리집 누렁이(소)에게 받힌 일이 있다. 순한 누렁이가 무슨 일인지 갑자기 머리로 아버지를 받아 한동안 고생하셨다. 그 누렁이에게도 딸랑이(워낭)가 있었다. 큰 눈망울로 어린 나를 반겨주던 누렁이가 "딸랑딸랑" 거리는 소리는 참 맑고 경쾌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니 온 가족은 옛집에서 소를 키웠고 소와 함께 일해 왔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니 온 가족은 옛집에서 소를 키웠고 소와 함께 일해 왔었다. ⓒ 워낭소리




암튼 단비가 내리는 아침 느직이 일어나 옥상에 올라 빗방울을 요리조리 피해 걸레를 가져와 계단청소를 끝냈다. 그 뒤 아침겸 점심을 먹고 방에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거실에서 아버지와 TV를 보시던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이것 좀 검색해봐라!"라고 하셨다. 요즘 사랑니 때문에 치과를 오가시면서 얼핏 본 인천 계산동의 한 영화관에서 <워낭소리>가 아직도 상영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셨다.

그래서 "휘뤼릭"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하고 있는지 확인해 드리고 인터넷 예매까지 해드렸다. 프린터로 사이버티켓을 출력할 수 없어 예매번호를 메모해 드리고, 영화관에서 티켓을 수령할 때 필요한 신분증도 건네드렸다. 이럴 때는 어머니와 함께 영화관까지 가야 하는 건데, 대형영화관을 이용하지 않으려 하고 비가 와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기도 어려워 영화티켓을 예매해 드리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지독한 겨울가뭄을 살짝 달래줄 봄비가 내리는 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옛집에서 함께 살던 소의 워낭소리를 듣기 위해 집을 나설 채비를 하고 계신다. 비가 오니 조심히 다녀오시길...

 가지고 있던 상품권과 사이버머니로 영화예매를 했다. 상업영화만 상영하는 대형영화관도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를 계속 상영하면 좋겠다.
가지고 있던 상품권과 사이버머니로 영화예매를 했다. 상업영화만 상영하는 대형영화관도 다큐멘터리나 독립영화를 계속 상영하면 좋겠다. ⓒ 이장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워낭소리#영화#소#어머니#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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