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내가 다녔던 직장(어학원)에는 쌤(Sam)이라고 불리던, 회식 때마다 임재범의 <고해>를, 언니들의 심금을 울리게 불어대던 막 서른을 넘긴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가 우리 어학원에 들어오기 위해서 이력서를 냈을 때 영국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을 보고 우리 한국인 선생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긴장을 했다. 괜히 어디서 시작이 되었는지 오기가 발동해서 면접도 난데없이 영어로 봤다. 한명을 대적하는데 5명이 눌러버리면 그까짓 거쯤이야!
쿵쾅거리는 그날. 무언가 고상하고 이지적일 것이라는 벅찬 기대와는 달리 그는 굉장히 토종적인 외모와 차림새의 소유자였다. 배가 유달리 나와서 조금 이국적이기는 했지만. 면접을 하는데 준비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나니 바닥이 나버렸다.
"영국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왜 어학원에 지원을 하셨나요?" "빚 갚으려고요."그때 우리 어학원에는 IMF 당시 경제 위기의 '쓰나미'를 호되게 맞았었던 선생들이 주축이었기에, 갑자기 면접은 이심전심 동병상련이 되어 의논할 것도 없이 바로 회식으로 이어졌다. 그는 다음날부터 마치 오래전부터 근무하였던 것처럼 출근하기 시작했다.
수줍음 많은 웃음에 학생들에게 존칭어를 썼던 그는 무엇에 그렇게 목숨을 걸었는지 늦게 수업이 끝나고도 학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수업을 연구했다. 이윽고 삼개월정도 지나고 나니 강사 인기투표에서 1등까지 하였다. 그랬던 그에게 그림자 같이 따라다니던 중학교 2학년의 조카 여학생이 있었다. 이름은 사생활 보호 상 영심이라고 하겠다. 쌤은 영심이와 학원에서 함께 공부하고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날 샘이 면담을 요청했다. 내용인 즉 부모님이 보증금 1천만원짜리 식당을 하시는데 잘 안되어 내놓았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의 혈액암이 악화되어 입원을 하셔야해서 식당과 집안 짐정리를 해야 하는데 짐을 둘 마땅한 장소가 없으니 학원의 창고에 잠시 놔두어도 되겠냐는 것이다. 어차피 자네도 학원에서 숙식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후로 학원은 그의 안정적인 주거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쌤이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학원이 집이었으니 나오지 않은 것이라는 것보다는 학원에서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런 적이 없었기에 모두 노심초사했다.
"아버지 병원이 어디래?", 찾아간 그곳에는 초췌한 그가 있었고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우직한 덩치에서 짠물이 나오는 게 창피하다면서 테이블에 고개를 묻으면서 쌤이 말했다.
"중환자실에 계신데요. 3백만원이 없어서 수술을 못한대요. 3백만원이…." 어디서 의협심이 생겼는지 우리 선생님들이 돈을 걷었다. 30만원 조금 웃돌았다. 어디서 3백만원을 빌리나 고민하다 우리 학원 이사님들에게 SOS를 쳤다.
"언제 이렇게 좋은 일을 해보겠습니까? 사교육 시장 욕 먹을 때 억울하다 하소연만 하지 말고 사회에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이 기회입니다. 350만원 지금 주세요."결과는 대성공, 쌤이 어색할까 병원에 몰래 300만원을 냈고 나머지는 쌤과 함께 고기를 사먹었다. 하지만 혈액암이라는 것이 혈액으로 돌아다니다가 여기저기 붙어서 또 다른 암으로 전이되고 하는 골치 아픈 병이어서 아버지의 체력은 바닥이 났고 결국은 돌아가셨다.
아마 쌤은 그 일을 계기로 가난 때문에 생명이 오가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에 대해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학원의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렇게 지쳐갈 때쯤 쌤이 한가지 소식을 전했다. 난데없이 영심이가 요즘 이상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춘기라서 반항심이 생겨서 그러나 보다 했단다. 집안일이 정신없어서, 그리고 아이가 씩씩해서 신경을 잘 안 썼는데 요즘 들어 뭔가를 숨기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요즘 학원에도 잘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랑 연락을 하는 것 같은데 아이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핸드폰은 잠금장치가 철저히 되어있었고 통화목록은 항상 삭제였다. 그러더니 주말에는 아예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다. 보다 못한 쌤이 대화를 시도했으나 뭐가 그리도 당당한지 "삼촌은 사람 몰아붙이지 말라!"고 대저항을 했고 그 입을 더 꾹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증거가 포착되었다. 영심이의 옷장 깊숙이에서 드레스와 형형색색의 스타킹 화장품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집안은 완전히 뒤집어졌지만 바로 공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따금씩 터지는 미소가 봉선화 터지듯 깨끗했던 아이. 가난한 삼촌 옆에서 궁상맞고 눈치 보일 텐데도 삼촌하고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그냥마냥 즐거워 보였던, 만화책을 유달리 좋아하던 그 소녀. 결국 쌤 가족들은 영심이 몰래 통신사의 추적 장치 서비스에 가입을 했다.
그리고 주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쌤은 출발했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핸드폰의 추적 장치가 가리키는 도심의 어느 길목으로 우리 영심이가 방황하는 도시의 거리로 나섰다. 우리 가엾은 영혼 나의 조카. 이 삼촌이 이제부터 보호한다! 그날 아무도 모르게 조카의 뒤를 밟은 쌤에게는 연락이 없었고 혹시나 우리의 예상이 맞을까 불안해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 조금 늦게 출근을 하니 학원이 웃음바다가 되어있었다. 그 바다 한중간에 환하게 웃고 있는 쌤.
"세상에. 말로만 듣던 코스프레를 하더라고요. 만화주인공 하고 똑같이 입고 돌아다니는 거요. 영심이가 그 동호회에 가입을 했더라고요. 지가 세상에 세일러문이래요. 세일러문."누가 상상이나 할까. 우리가 어른들이어서 괜히 지저분한 오해를 했던 것일까? 그 아이에겐 만화속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이 돌파구였을까. 그 아이에게 희망이 빛나는 세상은 그렇게 주말에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학원이 문을 닫았다. 창고 정리를 하는데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서랍장과 장롱들이 먼지에 쌓여 오갈 데를 모르고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많았던 눈물과 추억들을 묻고 또 우리는 새로운 길을 걸어야겠지. 이제 서른이 넘어버린 우리들은 새로운 길에서 희망과 꿈보다는 생존을 내세워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세일러문과 함께 장밋빛 꿈을 꾸던 영심이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내인생의 미스터리 기사에 공모하는 글이랍니다. 수첩이 너무나 탐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