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것은 실체가 아니다.
안경 너머로 보는 세상은 단지 안경 너머의 세상일뿐 실체가 아니다. 우리가 보는 것도 자기의 생각에 비추어 보기 때문에 실체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고교시절 높은 돗수의 안경을 쓴 선생님의 말씀이다.
그당시는 그 말씀의 의미를 깊게 알지 못했지만 왠지 그 말이 마음에 들어 차장으로 지나가는 세상을 볼 때 종종 생각했고, 안경 너머의 세상을 보기 시작할 때도 종종 생각했다.
그리고 카메라로 사물을 담기 시작하면서 사물의 일부만 담는 것이 실체를 얼마나 많이 왜곡할 수 있는지를 알았을 때 그 말을 종종 떠올렸다.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작은 이슬 속에 새겨진 풍경을 보고 담는 일은 참 재미있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것을 담다보면 담겨지지 않은 혹은 사진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감춰진 풍경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언젠가 이라크에서 미군병사가 이라크 포로병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사진을 보았다. 그 사진을 보면서 침략자를 미화시키는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아래에 주변의 상황을 조금더 짐작할 수 있는 사진이 있었다. 이전 사진에는 없는 장면, 물을 먹는 포로를 총으로 겨누고 있는 장면이었다.
들꽃은 주로 접사로 담는다.
주변 풍경보다는 소재중심의 사진, 꽃만보고 예쁘다고 하시던 분들은 간혹 들꽃이 피어있는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에게!'하고 실망을 한다.
그럴때면 '애걔!'하는 그 속에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 들어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것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만일 누구나 볼 수 있었다면 그 또한 밋밋한 것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보지 못하지만 누구의 일상에나 들어있는 것이기에 더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이리라.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너무 멀지 않은 곳에 희망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만 같은 거리에 희망이 존재하고 있다면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글동글, 작고 맑은 보석을 담는 일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작은 흔들림에도 제대로 사진을 담을 수 없어 숨을 죽이고 찍다보면 숨이 턱턱 막힐 때도 있다. 화면을 통해서 확인하고 나서야 미세한 떨림을 감지할 수 있어서 그냥저냥 기념으로라도 남는 사진은 몇장 되질 않는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게 몰입의 시간이다.
몰입하다보면 내 안에 있는 찌끼같은 것들이 사라진다. 때론 일시적일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이슬사진에 몰입을 하면서 나의 속내를 씻어간다.
동글동글한 이슬방울을 담으니 모난 마음이 치유되고, 작은 것을 담다보니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게 된다. 맑은 이슬을 담다보니 내 마음도 맑게 유지하게 위해 노력하고, 그 안에 새겨진 꽃을 보며 내 안에도 그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새기고 살아야지 한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이 일상화 되어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프로를 지향하는 분들은 자기만의 영역을 가지려면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보고 담는 것, 그것은 어쩌면 실체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짜도 아니다. 아주 작은 부분 속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을 보는 일, 간혹 왜곡이 있을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아름다운 것을 보려고 노력을 한다.
늘 꿈을 꾼다.
풀섶마다 이슬 송글송글 맺힌 어느 날 아침, 이슬방울 마다 멋드러진 풍광이 들어있고, 햇살은 맑고 바람 잔잔한 날 카메라를 들고 그들 앞에 서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