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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업고 마실 아기를 업고 마실하는 우리 세 식구. 또는 아기를 안고 마실하는 우리 세 식구. 아기가 커서 자기 어릴 적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서, 그리고 이제 사라지고 말면 아기가 크던 동네 모습을 돌아볼 수 없을 터이니 더더욱, 아기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게 됩니다.
아기 업고 마실아기를 업고 마실하는 우리 세 식구. 또는 아기를 안고 마실하는 우리 세 식구. 아기가 커서 자기 어릴 적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어서, 그리고 이제 사라지고 말면 아기가 크던 동네 모습을 돌아볼 수 없을 터이니 더더욱, 아기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게 됩니다. ⓒ 최종규

모든 사람은 다 다른 이름 하나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름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이름이 개똥이 되든 소똥이 되든, 한 사람을 꾸밈없이 잘 드러내거나 보여주는 이름이든 아니든, 이름 몇 글자를 어버이한테서 받습니다.

모든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책을 다루는 책방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헌책방 가운데 드문드문 간판도 이름도 없이 꾸리는 곳이 있는데, 이런 헌책방을 두고 “간판 없는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했습니다. 그냥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곳이 있고요. ‘헌책방’이라고만 이름을 붙인 분들한테 말씀을 여쭈면, 이 이름보다 헌책방을 더 잘 말해 주는 이름이 없다고, 이름은 이름일 뿐이니 헌책방에 와서 헌책을 잘 찾아서 볼 수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제 막 여섯 달을 넘긴 우리 딸아이한테는 아이 어머니가 ‘사름벼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이름을 두 글자로만 붙여 버릇하는 우리 나라에서 넉 자 이름은 눈에 잘 뜨이고, 의료보험증에는 뒷 글자 하나가 잘리기까지 합니다. 한국사람은 마치 세 글자짜리로만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듯 여겨서 그러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 이름은 버젓이 넉 자일 뿐입니다. 요즈음 ‘어버이 성 함께쓰기’를 하는 분들도 넉 자이고, 우리 아이도 넉 자입니다. 흔히들 우리 딸아이 이름을 듣고는 ‘최 사름벼리’ 하고 아이 아버지인 제 성까지 붙여서 말씀하시곤 하는데, 우리 아이는 그저 ‘사름벼리’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어버이 성 함께 안 쓰기’를 하려고 아이한테 이름을 넉 자로 붙였거든요. 우리 딸아이한테 ‘사름’이 성이고, ‘벼리’가 이름입니다. 그저, 한국 호적법에서는 성을 바꿀 수 없게끔 되어 있어 법에 따라서만 그리 못할 뿐입니다. 남녀평등, 아니 여남평등을 생각하면서 ‘어버이 성 함께쓰기’를 하시는 뜻은 훌륭하기는 하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 살피면 ‘어버이 성’이라고 해 보아야, 어머니 성도 ‘어머니를 낳은 아버지 성’이라, 어느 쪽 성을 붙여도 다 같은 ‘남자 집안’ 성이 될 뿐입니다. 이쪽 성이나 저쪽 성이나 마찬가지예요.

지난해 12월 7일, 어린 딸아이는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지 아버지가 태어난 날 맞추어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딸아이한테 아이 어머니가 붙여 준 세례이름은 ‘폼포사골롬바’입니다. 세례성사를 주시는 신부님은 이 세례이름을 처음 듣는다고 하였는데, 다른 분들도 하나같이 처음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침 이런 이름으로 거룩한 님이 계시기도 했는데, ‘폼포사’는 아기한테 친할머니 되는 분 세례이름이고, ‘골롬바’는 아기한테 외할머니 되는 분 세례이름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아이는 ‘사름벼리 폼포사골롬바’라는, 이 나라에서는 꽤 긴 이름을 지 어버이한테서 받았습니다.

일하는 아빠와 아기 필름사진을 스캐너에 앉혀서 긁는 동안, 아기는 아빠 무릎에 누워서 아빠를 빤히 올려다보기도 하고, 손발을 쭉 뻗으며 놀기도 합니다.
일하는 아빠와 아기필름사진을 스캐너에 앉혀서 긁는 동안, 아기는 아빠 무릎에 누워서 아빠를 빤히 올려다보기도 하고, 손발을 쭉 뻗으며 놀기도 합니다. ⓒ 최종규

아기가 엄마 배속에 있을 때, 아버지인 저는 배를 어루만지면서 ‘순복아, 순복아’ 하고 불렀습니다. “오순도순 복실복실 잘 살아 다오” 하면서 ‘순복’이라 했는데, 아기가 태어난 뒤로는 이 이름은 거의 안 쓰게 됩니다. 요사이는 ‘사름벼리’라는 이름 말고 ‘돼지야, 돼지야’ 하고도 부르는데, 때에 따라서 살짝 짓궂게 놀리고픈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좀더 가깝고, 한결 사랑하기에, 이런 이름으로도 불러 보고 저런 이름으로도 불러 봅니다.

요 한 달 사이,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해뜸,1987)라는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일찌감치 판이 끊어졌다가, 2006년 5월에 오랜만에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이 책 하나는 다시 나와 주었으나, ‘로버트 카파 사진책’은 아직까지 한 권도 한국땅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어 아쉽습니다만, 이 하나로라도 로버트 카파 전쟁사진과 ‘전쟁사진 찍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으니 고맙고 반갑습니다.

퍽 예전에 이 책을 읽었기에 책이름이 왜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인지 잊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노라니, “1주일 후 나는 이지렛드에서 찍은 내 사진이 이번 상륙작전 중 제일 훌륭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암실 조수가 너무 흥분한 끝에 현상된 필름을 말리다가 실수로 과열이 되어 필름의 유제가 녹아버려, 런던 사무실 직원들의 눈앞에서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106매 찍은 나의 사진 중에서 건질 수 있었던 것은 겨우 8장뿐이었다. 열을 받아 흐려진 사진에는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144쪽)” 하고 나옵니다. 이때는 로버트 카파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하면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사진을 찍던 때이고, ‘헝가리(카파가 태어난 나라)는 연합국한테는 적인 나라여서 카파가 전쟁사진을 찍기 몹시 힘든’ 형편이었으며, 어찌어찌 《라이프》 잡지사 사진기자로 다시 뽑혀서 전쟁터 맨앞에서 군인들과 함께 움직였는데, 이날 상륙작전 때 거의 처음으로 ‘손이 덜덜 떨리면’서 ‘죽는구나!’ 하고 느꼈다고 합니다. 《라이프》 잡지사 사람들이 그때 그 카파 마음을 어찌 읽고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 붙였는지 궁금한 노릇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런던에 있던 사무실 직원들 눈에 ‘카파가 찍은 사진에 담긴 두려움’을 고이 읽어내면서, ‘전쟁이란 이것이다’ 하는 한 마디를 넌지시 보여주고자 했구나 싶어요. 아무튼, 로버트 카파는 ‘군인과 함께 상륙을 했’지만, 사진기 두 대에 감긴 필름을 다 쓰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부상병을 배에 실으려고 들어오던 수륙양용장갑차 한 대를 보고는 ‘부끄럽고 어쩌고를 따지지’ 않고 뛰어들었으며, 이리하여 카파는 그 상륙작전 때 안 죽고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이 상륙작전에서는 거의 모두 저승사람이 되었다더군요.

추위보다도 배고픔보다도, ‘사람이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그예 죽어서 사라지는’ 두려움이 훨씬 우리 두 손을 덜덜 떨게 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 떨림을 나타낸 ‘카파 사진에 붙은 이름’은 오래도록 우리한테 남습니다.

골목 기와집은 모두 다르다 옛 기와집 창문은 집집마다 조금씩 모양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창문에 붙이는 방범창도, 또 시멘트를 흙벽에 새로 발라서 붙이던 타일도.
골목 기와집은 모두 다르다옛 기와집 창문은 집집마다 조금씩 모양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창문에 붙이는 방범창도, 또 시멘트를 흙벽에 새로 발라서 붙이던 타일도. ⓒ 최종규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를 읽으면 카파 사진 몇 장에 몇 마디 말이 덧붙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나는 파리로, 내가 먹고 마시고 그리고 사랑을 처음 알게 된 아름다운 거리인 그 파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사진기 파인더 속의 수천의 얼굴, 얼굴들이 차차 뿌옇게 흐려졌다. 그 파인더는 내 눈물로 고여 갔다.(201쪽)”라든지, “나야말로 겁장이다.(160쪽)”라든지, “나는 전사하는 사나이의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이 마지막 날, 용감한 병사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게 되는 사람은 죽어간 그들을 이내 잊게 될까?(235쪽)”라든지.

사진은 ‘말 없는 사진’으로 모든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지만, 이처럼 한 마디 두 마디 세 마디 붙는 ‘말’, 곧 ‘사진말’은, 사진과 함께 우리한테 수많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셈입니다. 아니, 사진을 읽어내는 눈썰미는 우리 모두한테 다 따로따로 있지만, 이러한 사진말 몇 마디는 사진쟁이가 이 사진 한 장으로 어떠한 자기 넋과 삶을 스며 놓았는가를 꾸밈없이 헤아리도록 돕는 말이라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제 깜냥껏 제 사진에 사진이름과 사진말을 붙여 보곤 합니다. 이를테면, ‘골목 기와집은 모두 다르다’라고 사진이름을 붙인 다음, “옛 기와집 창문은 집집마다 조금씩 모양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창문에 붙이는 방범창도, 또 시멘트를 흙벽에 새로 발라서 붙이던 타일도.”처럼 사진말을 달아 줍니다. ‘겨울잠 골목텃밭’이라고 사진이름을 붙인 뒤, “골목텃밭은 겨울을 앞두고 겨울잠 준비를 했습니다. 이제 곧 봄이 다가오면서 지난가을 모습이 문득 떠오릅니다.”처럼 사진말을 달아 봅니다. ‘책과 책과 책’이라는 사진이름을 붙이면서 “책이 있고 또 책이 있고 다시 책이 있는, 예나 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나 늘 책이 있는 곳.”과 같은 사진말을 달곤 합니다. ‘묵어 가는 책’이라는 사진이름을 붙이고 “팔리지 않을수록 묵어 가는 햇수는 늘고, 묵어 가는 햇수가 는다고 책값이 더 비싸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종이는 나날이 바스라질 텐데 언제쯤 한 번 더 펼쳐지면서 사랑을 나누게 될는지.” 하고 사진말을 달아 놓습니다.

밤골목 깊어가는 밤, 골목집 텃밭도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골목집 텃밭은 다가오는 새봄이 되면 기지개를 켜고 겨울잠에서 깨어날 테지요.
밤골목깊어가는 밤, 골목집 텃밭도 조용히 잠들어 있습니다. 골목집 텃밭은 다가오는 새봄이 되면 기지개를 켜고 겨울잠에서 깨어날 테지요. ⓒ 최종규

저는 제가 찍은 모든 사진에 사진이름을 하나씩 붙이고 사진말도 한두 줄씩 꼬박꼬박 달아 놓습니다. 여태까지 찍은 사진이 여러 만 장이니, 여러 만 번에 걸쳐 사진이름을 붙였고, 여러 만 번에 걸쳐 한두 줄 또는 두어 줄이나 서너 줄씩 사진말을 써 온 셈이에요.

돌아보면, 이렇게 다 달리 사진이름을 붙이고 사진말을 달기란 몹시 힘듭니다. 나중에는 똑같은 사진이름에 어슷비슷한 사진말이 달리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꾹꾹 눌러 가면서 적바림하는 사진이름과 사진말은, ‘다 다르게 붙일 수 있는 사진이름이나 사진말이 아니라면, 내가 찍는 사진은 예나 이제나 똑같은 사진, 판박이 사진, 겉모양만 그럴듯한 사진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는 생각을 하게 도와줍니다. 사진이름을 다르게 붙일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로워지는 사진을 찍을 노릇이며, 사진말을 사진 하나에 맞추어 달리 달 수 있게끔 필름 한 통만큼 찍은 사진이라면 서른여섯 가지 이야기를 엮어내도록 생각하고 부대끼고 함께할 일이라고 다짐합니다.

사진을 찍어 본 분이라면, 한 장을 찍든 백만 장을 찍든 사진을 찍어 본 분이라면, 같은 자리에서 거듭 찍는다 하여도 ‘아주 똑같은 사진’이란 나올 수 없음을 알리라 생각합니다. 똑같은 사진이란 없어요. 조금씩 다르게 되는 사진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다른 사진을 ‘다르게 볼’ 줄 알아야 하고, ‘다르게 느낄’ 줄 알아야 하며, ‘다르게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수없이 넘쳐나게 찍어대는 사진에서 벗어나 ‘많이 찍으면 더 많은 이야기’를 샘솟게 하고, ‘적게 줄여서 찍으면 몇 마디로 모두어 내는 깊은 이야기’를 피어나게 해야 하지 않느냐 싶어요.

책과 책과 책 책이 있고 또 책이 있고 다시 책이 있는, 예나 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나 늘 책이 있는 곳. (서울 노량진 헌책방 〈책방 진호〉에서)
책과 책과 책책이 있고 또 책이 있고 다시 책이 있는, 예나 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나 늘 책이 있는 곳. (서울 노량진 헌책방 〈책방 진호〉에서) ⓒ 최종규

제 사진길을 곱씹어 보면, 처음에는 날마다 헌책방 발자취를 사진으로 담았고, 그런 다음에는 날마다 골목길 삶터를 사진으로 담았으며, 요즈음은 어린 딸아이 자람새를 날마다 사진으로 담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담는 사진은 ‘날마다 찍기’입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거듭나고 달라지고 새로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서 ‘날마다 찍기’를 합니다. 오늘 다르고 어제 달랐으며 내일 다르기 때문에 ‘날마다 찍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하니, 저 스스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 찍는 사진마다 ‘내 사진에 담기는 모습뿐 아니라 내 사진으로 담은 모습을 이야기하는 글’ 또한 늘 달라지고 거듭나고 새로워져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어느 하루도 저 스스로 똑같은 자리에 맴돌지 않도록 추스르고, 어느 잠깐도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가다듬으며, 어느 곳에서도 틀에 박힌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게끔 다독입니다.

날마다 갈고닦는다면 누구나 날마다 다른 사진을 찍으며, 날마다 갈고닦기에 부지런히 찍는 사진마다 다 달리 이야기가 담깁니다. ‘바지런함’이 사진찍기를 하는 밑바탕이라거나 밑거름이라고  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만, ‘꾸준함’이 없으면 사진찍기를 못한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사진이름 한 마디와 사진말 한 줄을 여미어 내려면 이 두 가지를 고르게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진을 사랑하거든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바지런히 마음을 쏟고 꾸준하게 몸을 바치게 되거든요. 사랑하는 책을 바지런히 읽고 꾸준히 즐기며, 사랑하는 고향 터전에서 바지런히 다리품을 팔고 꾸준하게 이웃하고 어울리게 됩니다.

책방골목 거닐기 아이들이 집이나 학교 가까이에서 잠깐 머리를 식히거나 바람을 쐬려고 나들이를 나와서는, 헌책방 죽 이어진 골목을 거닐며 책을 안 사더라도 책냄새를 맡을 수 있는 문화를 이 나라 어디에서나 우리 스스로 일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꿉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책방골목 거닐기아이들이 집이나 학교 가까이에서 잠깐 머리를 식히거나 바람을 쐬려고 나들이를 나와서는, 헌책방 죽 이어진 골목을 거닐며 책을 안 사더라도 책냄새를 맡을 수 있는 문화를 이 나라 어디에서나 우리 스스로 일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꿉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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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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