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고령화.. 어촌에서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새삼 절감하자, 교실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 .. 《소노다 마사하루/오근영 옮김-교실 일기》(양철북,2006) 57쪽‘어촌(漁村)-산촌’이라고도 합니다만, ‘바닷가마을-산마을’이라 하면 좀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절감(切感)’은 ‘뼈저리게 느낌’을 한자로 담은 말입니다. 보기글에서는 ‘느끼자’로만 적어도 되고 ‘깨닫자’나 ‘알게 되자’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교실 안은 잠시(暫時)”는 “교실은 한동안”으로 다듬습니다.
┌ 고령화(高齡化) : 한 사회에서 노인의 인구 비율이 높은 상태로 나타나는 일 │ - 농촌 사회에서는 고령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 ├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 나이든 사람이 늘어나고 있음을 │→ 늙은 사람이 늘어나고 있음을 │→ 젊은이가 줄어들고 있음을 └ …“늙은이가 늘어나는” 일이라고 손질해 보고 싶습니다만, ‘늙은이’라는 낱말을 안 좋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늙은 사람이 늘어나고”로 손질해 봅니다. “나이든 사람이 늘어나고”로 손질할 수 있고, 뜻을 살려 “젊은이가 줄어들고”로 새롭게 써 보아도 됩니다.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쓰고 뜻 그대로 써야 올바릅니다. 늙었으니 늙은이이고, 젊으니 젊은이이며, 어리니 어린이입니다. 그런데 이런 ‘꾸밈없는 말’을 꾸밈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우리 어른들 때문에 말과 글이 자꾸 비틀립니다.
어느 어린이들이 ‘늙은이’라는 낱말을 ‘편견으로 잘못 생각’하거나 ‘선입관으로 엉뚱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우리 어른들만 똑바로 생각하고 똑바로 보고 똑바로 말할 줄 알면, 말은 아주 넉넉해집니다. 글은 더없이 아름답게 됩니다. 우리 어른 스스로 똑바로 안 살면서 말을 엉클어 놓고 있으며, 우리 어른 스스로 똑바로 생각을 안 하면서 글을 엉망진창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 농촌 사회에서는 고령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 │→ 농촌 사회에서는 늙은이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 시골에서는 늙은 사람만 늘고 젊은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 시골에서는 늙은 사람만 더욱 늘어나고 있다 └ …‘고령화’와 맞설 만한 ‘저령화’는 안 씁니다. 그러나 앞으로 언제가 될는지 모릅니다만, ‘고령화’ 같은 낱말을 우리 스스로 털어내지 못하면 ‘저령화’든 ‘중령화’든 온갖 얄딱구리한 낱말이 자꾸자꾸 생겨나고 퍼지고 뿌리내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ㄴ. 미화시키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는 대상을 조금도 미화시키거나 이상화하지 않고 단지 진실한 개성만을 그렸다 .. 《장소현-뚤루즈 로트렉》(열화당,1979) 31쪽‘지적(指摘)한’은 ‘말한’이나 ‘든’으로 다듬습니다. ‘단지(但只)’는 ‘다만’으로 고치고, ‘진실(眞實)한’은 ‘참된’이나 ‘거짓없는’으로 고쳐 줍니다.
┌ 미화(美化) : 아름답게 꾸밈 │ - 환경 미화 / 미화 작업 / 업적의 미화 / │ 그에 관한 이야기는 지나치게 미화되어 있다 / │ 그들은 그들의 침략을 지나치게 미화해서 말하고 있다 │ ├ 대상을 조금도 미화시키지 않고 │→ 대상을 조금도 (곱게) 꾸미지 않고 │→ 대상을 조금도 덧바르지 않고 └ …보기글에는 ‘미화’ 말고도 ‘이상화’라는 ‘-化’붙이 말이 나타납니다. 먼저 ‘이상화-하다’는 “좋은 것처럼 보이게 하다”로 풀어내면 어떨까 싶습니다. 다음으로 ‘미화-시키다’는 ‘꾸미다’나 ‘곱게 꾸미다’로 풀어내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한테 익숙한 말투를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버릇으로 굳었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사람들은 말투뿐 아니라 생각도 고치지 않습니다. 자기가 품는 생각이 옳든 그르든 그예 밀어붙이고 맙니다. 잘못 생각하거나 잘못 바라볼 수 있는데, 자기 눈길이 잘못되거나 그릇되었으리라고조차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저 늘 그대로입니다. 늘 똑같습니다. 어쩌면 아주 어릴 때 한 번 굳어진 눈길이 고쳐지지 못하고, 아주 어릴 때 쓰던 말투가 나중에까지 고이 이어지지 싶습니다.
┌ 환경 미화 →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기 ├ 미화 작업 → 아름답게 꾸미기 ├ 업적의 미화 → 해 온 일 아름답게 꾸미기 ├ 지나치게 미화되어 → 지나치게 좋게 꾸며져 └ 미화해서 말하고 → 좋게 꾸며 말하고사람들이 맛집을 찾고 멋집을 찾는 모습을 보면 참 놀랍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밥을 찾아서 먹고픈 마음이면서, 왜 ‘그렇게 아름다운 말을 찾아서 배우려고’는 안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맛집을 찾기만 할 뿐 스스로 땅을 일구어 싱싱한 곡식과 푸성귀를 얻은 다음 손수 맛난 밥을 차리려고 애쓰지 못하니, ‘나이가 들어서까지 말을 더 배워야 하느냐?’고 생각해 버리지 않을까요. 나이가 들든 말든 배울 일은 배우고, 고칠 대목은 고치며, 새로워질 구석은 새로워지도록 추슬러야 합니다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삶이 아닌 죽음으로 흐르고 있지 않을까요. 거침없이 힘차게 흐르는 우리 삶이 아니라, 어느 한때부터 흐름이 멈추고 마냥 고여 있는 우리 삶은 아닐까요.
대학교 졸업장이 어느 한 사람 가방끈을 말해 주지 않습니다만, 졸업장 하나로 언제까지나 자기 머리와 마음을 내버려 두고 있지 않나요. 졸업장 하나 없이 바지런히 애쓰는 매무새를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에 한글을 배우는 매무새를 둘러볼 줄 모르며, 우리 말씨가 아이들한테 얄궂게 스며들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지는 않는가요.
곱게 매만진다고 고와지지 않습니다. 달콤하게 덧바른다고 달콤해지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척 보인다고 하면 그저 ‘척’일 뿐입니다. 곱게 보이도록 겉치레를 할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곱게 살아내야 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운 삶과 고운 생각과 고운 말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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