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 | 원제 Al-Arabah Al-Dhahabiyah la Tasud ila al-Sama (1991) 살와 바크르 (지은이), 김능우 (옮긴이) | 도서출판 아시아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세간의 화제(였)다. TV나 드라마를 통 보지 않아 왜 사람들이 <아내의 유혹>을 '막장 드라마'라 욕하면서도 열광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드라마에 대한 촌평과 뉴스를 통해 간헐적으로 접한 이야기들을 보면, 남성(남편)에 의해 그 존재나 삶이 귀속 아니 구속 당하는 여성(아내)의 삶과 인생이 송두리채 파괴된 뒤 그녀의 매혹적이고 선정적인 복수와 구도, 장면들이 상투적이지만 사람들 특히 누구의 아내로 누구의 애인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여권 신장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지배가 판치는...) 여성들의 억눌리고 잠들어 있는 욕망과 의식을 깨치는 자극을 매회마다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내, 엄마, 애인이란 꼬리표가 달린 존재가 아닌 여성으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현실이 아닌 드라마 속의 가상현실에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이는 드라마 기획의도에서 명확히 드러나 있다. 드라마 제작진은 여자들이 꿈꾸고 소망하는 것을 드라마에 담아 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 여자들이란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든 만족하지 않든,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가슴 한 편에 남기고 살아가는, 드라마에서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선택한 결혼에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었다가 다시 되살아나 남편과 내연녀인 친구에게 복수하고 새로운 인생과 사랑을 찾아가는 전처(아내)다.(복수 끝에 또 다시 남자와 사랑에 얽매이는게 거시기 하다.)
그런데 <아내의 유혹>의 전개와 등장인물들은 꽤 낯익다. '4주 후에 뵙겠습니다'를 되뇌는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주되게 다루는 사랑과 결혼, 불륜과 질투, 갈등과 배신 그리고 이혼 등 복잡하고 억지스러운 이야기들은 <아내의 유혹>에서도 아니 '막장'으로 치닫는 국내 드라마에서 좀체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아닌가 싶다. 이 단골 메뉴에서 남녀의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과 남성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와 사회는 대부분 철저히 미화된다.
깨질듯한 갈등요소가 반복되더라도 결국에는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성이 남성과 가족, 사회에 순수히 복종하고 그것을 행복이라 자기최면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순간부터 드라마는 끝을 맺는 거다. 막장같은 현실과 전혀 다른 꿈같은 모습들을 남긴 채, 남성과 남편, 가족에 귀결되는 구속된 삶을 강요받고 그것이 미풍양속이라 '행복의 종착지'라 길들여진 여성들에게는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여성들이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지위를 확보했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인 여성들이 오랫동안 남성이 지배해 온 사회구조와 감옥과 같은 틀을 깨치기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 힘겨운 노력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아랍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살와 바크르의 장편소설 <황금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을 읽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이집트의 사회-정치-경제의 모순과 맞물려 돌아가는 여성에 대한 착취와 지배, 희생, 구속으로 인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닭장 안의 암탉들처럼 살아가는 감옥에 갇힌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엿보다 보면 '잠재적 가해자'라는 남성으로 태어나 그 야만적인 남성성을 버리지 못하고 은연 중에 아니면 노골적으로 여성들을 핍박.착취.유린해 왔을 나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무척 낯설지만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집트의 사회상과 전통, 관습 그리고 사람들의 사랑과 배신, 탐욕, 파멸, 회환 등 인간 본래의 보편적 삶과 정서를, 여자 교도소에 수감된 소매치기, 구걸, 매춘, 마약 거래,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른 여성 재소자들의 말할 수 없는 사연들로 가득한 소설은 피라미스와 스핑크스만을 떠올리는 이집트와 남성의 진짜 모습을 고발하기 때문이다.
억눌리고 강요받는 사회 구조가 만든 고달프고 배신당한 삶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인이자 남편이자 새 아버지인 한 남자를 죽이지 않을 수 없었던 여성 재소자와 그녀들의 이야기들로 말이다. 백마가 끄는 황금마차로 승천하는 것 밖에는 그녀들이 온전히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풍자와 냉소를 던지는 갖가지 이야기들로 말이다.
암튼 드라마나 소설이나 '닭장 안에 갇힌 암탉은 수탉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가?' 란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준다. 남성의 지배와 구속에서 여성들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라고 말이다. 여성도 여성주의자도 아니면서...명쾌한 답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잠재적 가해자가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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