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어제는 고향 친구들과의 정례모임이 있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천안으로 가서 친구들을 만났지요.
친구들이 모두 모였기에 식당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안 좋은 친구가 많아서 술은 여섯 명이 고작 소주 세 병만 마시는 걸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한 친구가 농담을 하더군요. "두주불사의 친구들이 술을 안 마시니 소주공장은 이제 망했다"고 말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점심을 먹고 회비를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에도 경제적으로 몹시 쪼들려서 두 달 치 회비인 6만원조차 어려워 겨우 3만원만 내야 했습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모처럼 죽마고우들을 만나 밥을 먹고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까지 경제적으로 힘든 현실을 비추자면 솔직히 '쪽 팔려서' 죽을 지경이곤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핀잔을 준다거나 제가 못 산다고 하여 무시하는 친구는 전무하지요. 여하튼 다른 사람도 아닌 살가운 50년 지기들 앞에서 호기 있게 술을 사고픈 건 이 세상 모든 남아들의 어떤 이심전심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회비마저 꼬박꼬박 내지 못 하는 측은한 신세이고 보니 친구들을 보기에도 정말 + 진짜로 면목이 없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지만 아무튼 저도 IMF가 도래하기 전엔 쾌속의 드라이브는 아닐지언정 지금처럼 군색하고 꾀죄죄한 몰골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지금이야 돈도 없고 건강도 퍽이나 안 좋아서 어제도 술을 한 모금도 안 마셨습니다만 당시엔 그야말로 두주불사의 주당클럽 '원내총무'였지요!
끼리끼리 논다고 친구들의 거개가 저를 닮아 술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머니가 모두 빌 때까지 억병으로 술을 퍼 마신 세월 또한 장구한 연륜을 자랑하지요.
허나 이젠 아니네요. 오늘은 아들이 올 신학기 대학등록금을 내는데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여 거기에 수반되는 학자금 대출 수수료인지 뭔지 해서 급히 또 돈이 필요하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역시나 딱히 돈이 없었는지라 다시금 지인에게서 급전을 융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이럴 적마다 참 가난한 이 가장의 마음속으론 몹시도 시리고 아픈 자괴의 칼바람이 들어차곤 하네요! 아울러 어쩌다 제 꼴이 이처럼 우습게 되었나 싶어 어떤 때는 정말이지 이 세상을 살고픈 맘이 눈곱만치도 없곤 합니다.
누구는 내 나이쯤 되면 집 한 채야 진즉에 마련했을 터이고 경제력까지 갖추었기에 이제 자녀를 여의는(결혼시키는) 상상만으로도 사는 맛이 새록새록하다는데 말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처조카가 상견례를 했습니다. 함께 따라가 점심과 술도 얻어 먹었는데 하지만 제 아들보다 불과 한 살 연상인 처조카의 상견례였기에 그를 보는 제 마음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머지않아 저 역시도 사돈이 될 분들과 마주 앉아 혼담을 주고받아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처럼 찢어질 듯 가난해서야 과연 어느 누가 제 아들과 딸을 사위와 며느리로 점지하고 데려갈까 싶어 더럭 겁까지 난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지독한 가난의 풍상을 겪는 지도 올해로 어언 10년이 다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와중에도 두 아이를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맨 덕분이라 믿습니다.
오늘도 출근할 때 지참했지만 점심 값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도시락을 싸 가지고 출근한 지는 벌써 5년도 넘었습니다. 이렇게 지독한 내핍생활을 하였기에 서울서 공부하는 딸의 바라지도 겨우겨우 해낼 수 있었던 것이었지요.
어느 해 여름이던가 딸에게 돈을 톡톡 털어 모두 송금해 주고 나니 정말이지 시내버스를 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조차 없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어 퇴근할 때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어가야만 했지요. 근데 여름 뙤약볕을 한 시간 가량이나 걷다 보니 배가 고픈 건 이루 말 할 수도 없고 지치고 힘들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더군요.
역전시장을 지나는데 천 원짜리 국밥과 역시나 한 사발에 천 원인 막걸리가 왜 그리도 먹고 싶어 환장하겠던지요! 그렇지만 그날은 돈이 없어 그 걸 도저히 사 먹을 수 없었습니다.
여하튼 그 때 참 많은 걸 느끼게 되더군요. 그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와 같이 돈이 없는 가장은 이미 가장으로서의 자격은 물론이요 위신과 체면까지 덩달아 추락되고 깎인다 함을 여실히 통감했단 얘깁니다.
우리 사회를 쓰나미처럼 강타하고 있는 지독한 불황은 갖가지의 상흔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선 저의 생업은 아예 예년의 3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극심한 상처를 입고 있지요.
아들은 지난 겨울방학엔 알바 자리를 못 구하는 바람에 저 이상으로 어렵게 지내야 했습니다. 딸은 원래 올 2월에 대학을 졸업할 예정이었지요.
그러나 먹구름보다 짙은 불황과 청년실업 신드롬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내년이나 되어야 졸업하게 될 듯 싶어 올해도 딸에게 돈을 보내주자면 벌써부터 겁이 더럭 납니다.
물론 딸도 번다고는 하지만 인턴으로 받는 급여가 얼마 안 됩니다. 그런 까닭으로 객지에 있는 딸은 언제나 제 조바심의 단초인 것이죠.
예전에 제가 돈을 좀 벌 때는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술을 사 주길 즐겼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같은 '무용담'도 과거사로 치부된 지 오래입니다.
수중이 늘 그렇게 비고 보니 누굴 만난다는 것도 싫고 차라리 두렵습니다. 그래서 퇴근하면 두문불출하면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일상으로 자리잡은지 오래죠.
결론적으로 지독한 불황은 가장이란 저의 위신을 심히 추락시켰습니다. 아울러 그나마 지니고 있던 가장으로서의 용기와 불굴의 투지까지도 시나브로 깎아 먹는 악재로까지 작용했습니다.
그 바람에 굴퉁이처럼 나이만 허투루 먹은 이 무지렁이 필부라는 가장은 오늘도 씁쓸하고 서글픈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벌떡 일어나야 할 텐데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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