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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의 별들과 우주만을 그리다 별이 된 착한 사람. 고구려의 별 그림 전통을 계승한 고독했던 화가. 12년 전 4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강용대 화백. 그는 늘 동심의 세계에 머물러 살았던 생기발랄한 피터팬이었고 여러 별들을 여행하며 천진무구한 정직함에 살았던 '어린 왕자' 같았다.

2009년은 국제천문연맹(IAU)과 유네스코가 지정하고 유엔이 선포한 '세계 천문의 해'이다. 실제로 2009년은 뜻 깊은 해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만들어서 천체를 관측하기 시작한 지 400주년, 허블이 우주의 팽창을 발견한 지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우리나라도 전 지구적인 행사에 참여하며 국내에서도 여러 가지 행사를 계획해 놓고 있다. 이런 의미 있는 해를 맞이하여 별과 우주만을 그렸던 한국의 화가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밤하늘의 별이나 천문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많아도 그림으로서 표현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리라.

 생전의 강용대 화백
생전의 강용대 화백 ⓒ 이만주

1953년 서울에서 출생한 강용대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학에서 1년 반여 수학했다. 처음엔 그도 1980년대의 다른 젊은 작가들처럼 실험적인 작업에 가담하며 야외에서의 설치작업과 당시 한국에서 활발하게 일던 '퍼포먼스'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80년대 중반 무렵부터 우주와 별을 한지에 그리기 시작하더니 그 후 남해안을 여행하던 중 갑자기 지구라는 별을 떠날 때까지 그의 작품에서 일관된 화두는 '별과 우주'였다.        

별들도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그는 까만 먹물을 들인 크지 않은 장지(壯紙)를 배경으로 우리의 오방색을 사용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별들의 탄생과 진화와 소멸을 줄기차게 그렸다. 먹이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에 의해 기존의 동양화를 벗어나 그런 용도로 쓰일 줄은 몰랐다. 그의 그림을 보면 천자문의 제일 첫 부분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왜 하늘이 검다하는지 어렸을 적 품었던 의문이 일시에 풀린다. 그의 어떤 그림들은 오늘날 우리가 천체망원경으로 들여다 본 밤하늘의 세계와 거의 비슷하다.

 우주의 강
우주의 강 ⓒ 강용대

우리 선조들 중에 유난히도 별을 많이 그렸던 이들은 고구려 사람들이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총 91기의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 별자리 그림이 발견된 곳은 20여군데가 넘으며 모두 600여개의 별들을 그려 놓았다. 우리는 무덤 속 벽화에 나타난 수많은 별 그림을 통해 고구려인들의 우주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북한에서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부부합장묘로 추정하는 평양지역에 있는 진파리 4호 고분에는 금박으로 별들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고구려인들의 별 그림 전통을 오늘에 계승한 이가 강용대라고 말할 수 있다.

옛사람들에 있어선 별은 환상이고 상상이었다. 그들은 까만 밤, 별들을 바라보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무수한 신화와 이야기를 지어냈고 인간의 운명까지도 별을 보고 미루어 짐작했다. 그들에겐 밤하늘이 시계였고 달력이었고 역법이었다. 그들은 밤하늘을 보고 시간과 절기를 알았다. 그랬었건만 현대인은 밤하늘을 잃어버렸다. 도시의 전기 불빛으로, 공해로 밤하늘이 흐리다. 그보다도 밤하늘 별들을 우러러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현대인들에게 강용대는 애써 밤하늘을, 꿈을, 상상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는 별자리(星座)는 물론 별구름(星雲), 별무리(星團)을 그렸다. 137억 년 전 엄청난 폭발(Big Bang)로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보는 '대폭발 이론'. 그의 작품 'After Big Bang'을 보면 태초의 대폭발이 연상되고 작품 '미완성 우주'에선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가 느껴진다. 강용대가 그린 별 그림과 그에 대해 그가 붙인 제목들을 살펴보면 그가 천문학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을 넘어 깊은 조예를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After Big Bang II
After Big Bang II ⓒ 강용대

강용대는 기인이었다. 생전에는 그의 별 그림들이 그리 큰 각광을 받지 못하였으니 외로웠다. '쓸쓸한 과(科)'는 '쓸쓸한 과'끼리 알아본다고 인사동에선 만난 나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가까워져 한동안 어울렸기에 나는 그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일찍이 유럽을 경험했고 인도, 캐나다, 호주, 태국, 홍콩을 여행했기 때문인지 앞선 지식을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때 일찌감치 넬슨 만델라의 존재성을 알았고 스티븐 호킹을 좋아했다. 생각과 행동 자체가 일반인과는 달랐다. 이제 와 생각하니 생각과 행동뿐 아니라 그의 실제 모습 자체가 생 텍쥐페리의 동화집 '어린 왕자'에 나오는 어린 왕자의 삽화와 닮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에 관한 일화는 많다. 그는 모자 쓰기를 즐겨 몇 개의 모자를 일정 주기씩 돌려가며 쓰고 다녔다. 언젠가,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1원 짜리 동전을 구했는지 작은 부대로 한 자루 가져와 인사동 길거리에서 옆에 촛불을 켜놓고 동전들을 한 손에 쥐고 손바닥 사이로 계속 떨어뜨리며 다시 주워선 떨어뜨리곤 했다. "뭘 하고 있는 중이냐" 물었더니 행인들을 상대로 퍼포먼스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구경꾼이 없었다. 그 혼자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착하니 서울 시내엔 그에게 공술이나 공차를 주는 술집이나 카페가 꽤 있어 목이 컬컬할 땐 그를 따라다니는 것도 재미였다. 그가 잘 드나들던 인사동의 술집으로 '실비집'이 둘 있었는데 주인의 별명이 '총장'이었던 집은 없어졌고 다른 하나는 요즘 종로경찰서 뒷골목의 유진식당이 되었다. 한번은 카페 '사과나무'를 가면 그냥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들어가 마주 앉았다. 그의 얼굴이 해맑고 그때 마침 내 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던 터이라 나는 그의 얼굴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그 때 그 가로 사진이 그 후 그의 전단이나 인터넷 카페에 쓰이는 프로필 사진이 되었다.

강용대는 현대인들이 지상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밤하늘에서 찾아보려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소설에서처럼 밤하늘을, 우주를 모른 채 땅만 쳐다보는 사람들이 실망스러워 망원경을  버리듯, 별 그리기를 그만 두고 별나라로 떠났는지도 모른다. 별을 그리느니 차라리 그 자신 별이 되는 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 강용대 화백의 12주기 유작 전시회는 2009년 3월 4일부터 10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열릴 예정이며 그의 별 그림들은 cafe.daum.net/u-ca에서 볼 수 있다.



#세계천문의 해#별 그림 화가#고구려 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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