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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좌파는 무엇이며, 한 번씩 나도 모르게 했던 ‘즐거운 생활 좌파’이고 싶다는 말을 과연 나부터 쓸 자격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 두꺼운 책을 읽었다.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좌파는 무엇이며, 한 번씩 나도 모르게 했던 ‘즐거운 생활 좌파’이고 싶다는 말을 과연 나부터 쓸 자격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 두꺼운 책을 읽었다. ⓒ 조혜원

제목은 <THE left>, 부제는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그리고 천 쪽이 넘는 두께까지. 어느 면을 봐도 쉽게 손이 갈 만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정말 읽고 싶었고, 긴 시간을 들여 결국 다 읽었다. 무엇을 위해 이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책을 나는 읽고야 말았을까?

 

'우리는 좌경학생, 좌전거 타고, 좌장면 먹고~'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우스개처럼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책장에 꽂혀서는 가끔 '제목'만으로도 내 눈길을 머물게 만드는 책이 있다.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으로 살다보니 자의든 타의든 어느새 자주 듣고 쓰게 된 말이 있다. 바로 '좌파'다. 

 

익숙한 말이긴 해도 '좌파'를 내 정체성과 일치시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운동권'이라는 말이 '좌파'보다는 차라리 말하기도 듣기도 편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만큼 좌파는 나한테 멀고도 힘든 표현이었지만 그래서 더 알고 싶기도 했다. 좌파는 무엇이며, 한 번씩 나도 모르게 했던 '즐거운 생활 좌파'이고 싶다는 말을 과연 나부터 쓸 자격이 있는지에 대하여.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또는 사회주의와 좌파) 사이의 복잡한 관계는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이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좌파의 고갱이였고 좌파는 언제나 사회주의보다 그 범위가 넓었다.'

 

책 앞부분에서 저 문장을 딱 보는데, 손바닥을 치고 싶을 만큼 반가웠다. 그리고 반가움은 조금씩 놀라움과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 진보운동 역사가 이렇게 진행됐구나!'하는 '앎'이 준 뿌듯함은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19세기, 20세기 유럽 좌파의 역사를 어느새 차근차근 따라가고 있는 우리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신기하고 놀랍기까지 했다. 

 

'좌파의 힘의 확대는 시민권의 확장 및 공공영역의 개방, 사회서비스의 진척, 법에 따른 노동조합의 뚜렷한 보호 등과 연결된 의회민주주의 확대에 의존했다.'

 

'사회주의자들은 법률에 대한 존중, 유혈사태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불안, 선거지상주의와 의회영역에 대한 뿌리 깊은 일체감, 국익이라는 애국 이데올로기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합법성을 포기하거나 국가권력에 도전하려 하지 않았다.'

 

'1918년 이후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직접적인 정치적 참여에서 고립되었다. (…) 이 사람들은 경제학과 정치학보다는 주로 철학, 문화, 미학에 관해 글을 썼다. 또 대부분 직업적인 학자였다. 이것은 일종의 패배의 마르크스주의였다. 그 근저에는 비관주의와 정치적 단절, 그리고 때로는 절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유럽처럼 큰 힘을 발휘해 본 역사가 없는 대한민국 좌파들이지만, 이런 과정만큼은 아마도 비슷하게 겪었을 것이다. 아래 나오는 고민도 마찬가지로 치렀을 테고.   

 

'노동자들이 조직화된 정치에 무관심해 보였더라도,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올바른 삶에 대한 생각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 종종 '개인적인' 욕망의 경제에 갇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을 어떤 식으로 자유롭게 해방시킬 것인지가 좌파의 문화정치가 직면한 문제였다.'

 

'선택의 여지는 분명했다. 선거에서 완벽한 다수를 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좌파는 폭력을 수반하게 될 대결주의적인 정치로 나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연합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요구를 희석시키고 온건한 개혁에 동의해야 하는가?'

 

 대중이 얼마나 빨리 자신을 조직할 수 있는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프랑스 68혁명과 촛불시위는 참 많이 닮았다. 자연스럽게 분출된 시민들의 분노에서 비롯된 힘, 그리고 그 힘을 좌파 정치 틀 안에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한 모습까지도.
대중이 얼마나 빨리 자신을 조직할 수 있는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프랑스 68혁명과 촛불시위는 참 많이 닮았다. 자연스럽게 분출된 시민들의 분노에서 비롯된 힘, 그리고 그 힘을 좌파 정치 틀 안에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한 모습까지도. ⓒ 조혜원

 

프랑스 68혁명 이야기를 보면서는 87항쟁과 촛불시위가 저절로 겹쳐졌다. 자연스럽게 분출된 시민들의 분노에서 비롯된 힘, 그리고 그 힘을 좌파 정치 틀 안에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한 모습까지도 서로 참 많이 닮은 듯 했다.

 

'1968년에 분출된 에너지는 참여민주주의와 직접행동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한편 민주주의의 도전을 개인의 삶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까지 밀어붙였다. (…) 이 운동들은 공과 사,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재 정의하면서 정치행동의 의미를 확장하고 정치적인 것의 범주 자체를 개조했다. (…) 이것들은 모두 사회주의의 전통적인 핵심을 벗어난 영역이었고, 196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사회민주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충분한 관용적 태도와 상상력을 갖고서 여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 대중이 얼마나 빨리 자신을 조직할 수 있는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대중이 창안해 내는 형식들은 우리가 꿈꾸거나 책에서 읽은 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결국 좌파의 향수에 취한 거잖아. 하지만 추억이 무슨 힘이 있을까? 좌파 혁명이 성공했던 소련도 무너지고 중국마저 자본주의 체제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 이 마당에."

 

맞는 말이다. 유럽처럼 선거에서 좌파 정당이 30-40% 넘게 득표를 하거나, 당원 수 몇 십 만을 넘나들어 본 경험이라곤 없는 우리나라가 아니던가. 혁명은커녕 좌파가 정권을 잡아 본 역사도 없는 나라에 살면서, 좌파 정권들이 우수수 무너져 내린 유럽 역사의 흔적들을 보며 대체 어떤 희망을 읽어낼 수 있겠는가? 하물며 2MB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진보정당 할아버지가 와도 소용없을 것만 같은, 자괴감 섞인 정치 냉소가 우리들 마음에 가득하지 않는가?

 

하지만 내가 저 물음 앞에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혁명'을 여전히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당원 수 1만 4천여 명, 2%를 간신히 넘나드는 지지율, 그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기만 한 작은 정당, '진보신당' 당원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이 '향수' 이상의 특별한 의미로 내게 다가온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책 끝자락에 글쓴이가 간곡하게 당부했던 아래 이야기들을 보면서 뭔지 모를 '희망'이 생겨난 것도 그렇고.

 

'좌파를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더욱 폭넓고 엄격한 틀과 동일시함으로써, 20세기 마지막 30년의 사회주의 위기로 야기된 무력감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의 최고의 성취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언제나 사회주의의 범위를 뛰어넘었다.'

 

'오늘날 자본주의 변화가 노동계급을 없애기보다는 재구성한 것처럼, 사회주의 정치의 변형된 형태들 역시 계속해서 좌파를 형성할 것이다. 사회주의가 이제 더는 시장에 기반을 둔 경제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비판은 그 힘을 잃지 않았다.'

 

'사회주의 전통에는 여전히 풍부한 자원이 남아있다. 사회주의의 주장은 여전히 급진적 민주주의의 희망을 위해 절대로 필요할 것이다. (…) 사회주의의 가치는 여전히 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운동권이라는 정말 우악스럽게 들리는 말보다 더 다가서기 어려웠던 말 '좌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좌파' 맞는 것 같다고. 아마도 유럽의 좌파 역사가 밑거름이 되었을, 우리나라 좌파 정치의 변형된 형태들 속에서 만들어진 좌파 가운데 나도 포함되는 것 같다고.

 

'우리는 (…) 20세기 좌파가 추구했던 미래의 일부를 살아가고 있다. 민주적 변화의 도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나머지 일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세기 좌파가 추구했던 미래의 일부를 살아가고 있는 자칭 21세기 좌파로서 감히 말해본다. 미래의 나머지 일부를 '기억'하기보다는 유럽 좌파들이 겪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실현 가능한 '새로운 좌파 정치'를 이제부터라도 상상해 보고 싶다고. 글쓴이 말처럼 우리들 눈앞에 여전히 기운 쭉 빠지게 만드는 멀고도 먼 여정의 정치가 놓여있을 지라도. 


The Left 1848-2000 -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제프 일리 지음, 유강은 옮김, 뿌리와이파리(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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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사회주의#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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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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