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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마당에서 굴렁쇠를 굴리고 있다
좁은 마당에서 굴렁쇠를 굴리고 있다 ⓒ 김현

 

아이들과 굴렁쇠를 굴렸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굴려본 굴렁쇠를 세월이 훌쩍 지난 시간에 굴리려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처음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은 방법을 몰라 한 바퀴도 굴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큰 아이는 몇 번 해보더니 1미터 정도 굴리더니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린 막내는 몇 십 분을 끙끙댑니다. 방법을 알려줘도 쉽게 굴리지 못합니다. 방법만 안다고 쉽게 굴릴 수 있는 건 아니죠. 손에 가지고 놀면서 수십 번 넘어뜨리고 넘어뜨려야 제대로 굴릴 수 있는 게 굴렁쇠입니다.

 

굴렁쇠 하면 어릴 때의 추억이지만 또 하나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88올림픽입니다. 기억에 한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운동장 한 가운데를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혹 굴렁쇠가 넘어지면 어찌하나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소년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굴렁쇠를 마지막까지 굴렸고 사람들은 그 소년을 향해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마 그때 굴렁쇠 굴리는 모습은 외국인들에겐 색다른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나이든 내국인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내게도 그랬습니다. 당시 많지 않은 나이였지만 당시 모습은 꼬맹이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으니까요.

 

굴렁쇠는 어릴 때의 즐거운 놀이였고 친구였습니다. 당시 가지고 놀던 굴렁쇠는 자전거 바퀴였습니다. 고장이 나 사용하지 못해 버린 자전거 바퀴는 새로운 놀이기구로 탈바꿈했습니다. 지금이야 고물 취급도 안 하지만 예전에는 귀하디 귀한 물건이었지요. 요즘에도 길을 가다가 아무렇게나 버려진 자전거를 보면 '저거 타이어와 살 빼면 멋진 굴렁쇠가 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만들어준다고 해도 굴릴 아이가 몇이나 있겠나 싶습니다. 굴리려고 해도 장소도 마땅치 않고요.

 

자전거 바퀴가 굴렁쇠가 되기 위해선 우선 자전거 바퀴의 살을 모두 빼야 합니다. 바퀴살을 빼는 일은 어른들이 도와줬습니다. 튜브가 없는 맨바퀴는 굴렁쇠로서 제격입니다. 굴렁쇠가 구해지면 바로 굴렁대를 만듭니다. 굴렁대는 너무 반듯한 것보다 약간 곡선미가 있는 나무가 제격입니다. 그래야 바퀴 홈에 착 달라붙어 넘어뜨리지 않고 바퀴를 잘 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굴렁쇠를 굴릴 수 있는 곳으론 고샅 신작로나 제방이 제격입니다. 그곳에서 우리 꼬맹이들은 누가 더 멀리 넘어뜨리지 않고 가나 시합을 하곤 했습니다. 때론 릴레이 경기처럼 바톤 터치하듯 구르는 바퀴를 이어받아 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 친구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굴렁쇠로 사용할 자전거바퀴가 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든가 사정사정해서한 번 굴리는 기회를 얻어야 했기도 했습니다.  허나 가끔 굴렁쇠 하나로 난체 하거나 뻐기는 얘들도 있습니다.

 

"야, 니네 아빠한테 해달라고 해. 왜 내 것 달라고 하는 기여. 나도 놀기 바쁜디."

"니미, 고것 하나 가지고 되게 뻐기네. 내 더러워서 안 한다 안 해 짜샤."

"뭐 더럽다고? 이 자식 되게 웃기네. 야, 넌 이런 것도 업스믄서 먼 잔소리가 많아."

 

말싸움이 가끔은 주먹다짐으로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함께 놀았습니다. 옆집 앞집 뒷집 살고 매일 붙어다니면서 야박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들 놀거리가 그것 하나만 있는 게 아니어서 지나치게 뻐기다간 다른 놀이에서 시쳇말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혼자 놀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옛날이야 대부분 공동의 놀이였습니다. 구슬치기, 자치기, 패딱지치기 등 여럿이 할 수 있는 놀이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놀이에 함께 하기 위해선 뻐기거나 이기적이면 안 됩니다. 조금씩 서로 양보하기도 하고 협력해야 즐거운 놀이가 됩니다. 혼자만의 놀이가 대부분인 지금의 놀이문화완 많이 다릅니다.

 

근 40여분을 끙끙대던 작은 녀석이 결국 굴렁쇠 굴리기에 성공했습니다. 기껏해야 서너 바퀴 굴린 것이지만 녀석의 표정은 의기양양합니다. 꼭 어릴 때 내 모습처럼.

 

하지만 아이들과 굴렁쇠를 굴리면서도 뭔가 허전합니다. 굴렁쇠란 것이 길다랗게 난 신작로나 운동장 같은 데서 굴려야 제맛인데 좁은 마당에서 굴린다는 게 영 성이 차지 않아서인지 모릅니다.

 

또 하나, 지금 우리가 굴리고 있는 굴렁쇠는 통쇠로 만든 굴렁쇠입니다. 이 굴렁쇠는 자전거와 같은 홈이 없습니다.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의 쇠파이프 같은 걸 동그랗게 해서 만들었습니다. 굴렁대는 철사로 만들었습니다. 굵은 철사 한쪽 끝을 U자 모양으로 굽혀 50cm 정도 길이로 잘라 손잡이를 끼워 만들었습니다. 어릴 적 내가 만들어 굴렸던 굴렁쇠는 자전거 바퀴였고 굴렁대는 나무였는데 그런 추억의 굴렁쇠가 아니어서 아마 허전한 느낌이 든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아이들과 즐거움을 누리고 밖으로 나오며 생각합니다. 박물관이나 민속촌 같은 데나 가야 굴릴 수 있는 굴렁쇠를 보면서 점차 우리 놀이도 박물관화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종이로 만들어 놀았던 딱지치기도 한옥마을이나 민속촌 같은 데서나 해볼 수 있으니 더 말해 뭘 하겠습니까. 그래도 그걸 탓할 수는 없죠. 남고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생기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시간의 덧이니까요.


#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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