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우리 가족은 1년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11년간 사용한 휴대전화 때문에 MBC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서둘렀다. 새벽 4시 30분에 진주를 출발하였고, 9시 40분경 <MBC>에 도착했다.
<MBC> 1층 로비에 도착하니 눈에 익은 문구가 들어왔다. 방송국 전체 사진을 담고 싶었지만 이명박 정권이 언론장악을 시도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을 문구 앞에 서게 하여 사진을 찍었다. 어떤 사진보다 값진 기억에 남을 사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때까지만 해도 정확하게 6시간 후 이명박 정권이 재벌과 족벌 신문에게 방송을 넘겨주기 위해 언론악법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에 직권 상정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아내와 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과 녹화 준비를 하였고, 아이들은 작가와 방송국 이곳저곳을 다녔다. 1시 20분부터 시작된 녹화는 2시간 정도 하였고, 하면서 피곤할 줄 몰랐다. 정말 재미 있었다. 녹화를 마무리 하니 3시 20분쯤 되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나라당 소속인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25일 오후 3시 47분경 "위원장으로서는 미디어 관련 22개법을 직권상정할 수밖에 없다. 행정실은 자료 배포해 주세요"라고 말한 뒤 방망이를 두들기는 순간 나는 MBC를 나서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63빌딩에 들러 수족관 구경까지 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처음 보는 멋진 광경이었다. 돈은 들었지만 유익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는 도중에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수족관 구경을 하면서 즐거워하던 순간 이명박 정권은 언론악법을 기어코 직권상정했다.
차안에서 라디오를 들어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언론악법을 직권상정 하지 않고, 다음 임시국회로 넘긴 줄 알았다. '날치기'라는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언론과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오늘 한나라당이 직권상정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촛불집회 재판 몰아주기 따위에 관심을 많이 가졌을 뿐 언론악법 직권상정까지는 미쳐생각하지 못했다. 나 역시 MBC 로비에 새겨진 "언론악법 회책하는 MB정권 심판하자'는 문구 앞에서 아이들 사진만 찍을 줄 알았지 방송국 정문을 나서는 순간 언론악법 문방위 날치기 직권상정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허를 찔린 것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렇다. 생각도 개념도 없는 정권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언론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모르는 정권이다. 민주주의와 언론이 무엇인지를 아는 정권이라면 이런 무식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범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언론악법을 문방위 날치기 직권상정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 예의도 없는 정권임을 스스로 고백했다.
4시간 30분 동안 차를 타고 오면서 작곡가 김종률이 지난해 5월 5·18 30주년 헌정앨범으로 냈던 <님을 위한 행진곡> 앨범에 실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연이어 들었다. 연이어 들어면서 마음이 아팠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다시 듣거나 부르면 안 되는 노래요."
"왜 다시 들어면 안 되는 노래예요?"
"몰라서 물어요?"
"예?" "노랫말과 곡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아세요. 이 노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린 노래로서 백기완 선생이 지은 시 '묏비나리'(1980년 12월)에서 가사를 따와 광주지역 문화운동가인 김종률씨가 작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주민중항쟁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씨와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씨 영혼 결혼식을 위해 불려졌고, 1982년에 제작된 음반<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님을 위한 행진곡'이 그렇게 깊은 사연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 시절 이 노래가 자주 부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님을 위한 행진곡'를 자주 부른다는 것은 이 땅에 다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지요." "언론악법을 문방위 직권상정했다는 말은 민주주의는 관심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진다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옛날 향수에 젖어 다시 듣는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다. 무너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보면서 통탄해야 한다.
집에 도착하니 9시 20분쯤되었다. 새벽 4시 30분에 집을 나선지 17시간만이다. 17시간 동안 서울까지 갔고, 다녀왔다. 녹화도 했고, 63빌딩에서 수족관도 구경했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았다. 그리고 언론악법 문방위 날치기 직권상정까지 이루어졌다.
참 긴 하루였다. 하지만 이날을 잊지 말자. 언론악법을 날치기 상정한 이날을 잊지 말자. 피곤한 몸을 뒤로하고 잠든 인헌이와 서헌, 체헌이를 위해서라도 이날을 기억하여 민주주의가 다시는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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