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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태와 재래식 탈곡기를 이용한 탈곡체험.
홀태와 재래식 탈곡기를 이용한 탈곡체험. ⓒ 이돈삼

홀태를 이용해 벼 알을 훑어보던 슬비와 예슬이의 표정이 시큰둥하다. 볏단에서 벼 알이 잘 훑어지지 않은 탓이다. 옆에서 볼 때와 달리 맘처럼 쉽지 않는 모양이다. 발로 굴려 낟알을 훑는 재래식 탈곡기 앞에선 재미있는지 신이 난 표정이다.

웨롱∼ 웨롱∼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소리도 소리지만 홀태보다 훨씬 수월하게 낟알이 훑어진 때문이다. 새끼 꼬는 일은 예슬이한테 버거워 보였다. 슬비는 바닥에 주저앉아 꼬는 폼이 제법 근사하다.

아이들의 행동이 부산하다. 새끼를 꼬는가 싶더니 물지게를 져 본다. 그것도 잠시, 금세 멍석 위에 놓인 맷돌을 돌리고 절구를 찧고 있다. 맷돌에 넣은 쌀과 콩이 가루가 돼 나오는 것이 재밌는지 연신 맷돌을 돌려댄다.

 물지게를 짊어지고...
물지게를 짊어지고... ⓒ 이돈삼

 맷돌 돌리기와 다듬이질.
맷돌 돌리기와 다듬이질. ⓒ 이돈삼

지게와 물지게를 짊어지고 나름대로 폼도 잡아본다. 다듬이질도 해본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라도 푸는지 신이 났다. 다듬이질 소리도 경쾌하게 들린다. 옛날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는 것 같다.

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토우 체험도 재미있어 한다. 커다란 눈에 오뚝한 코, 함박처럼 벌어진 입을 만들어 붙이고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찍으니 영락없는 사람이다. 슬비가 만든 토우의 입술 사이로 크게 드러난 치아가 압권이다.

슬비는 남은 흙으로 머리 위로 앞다리를 올려 하트모양을 그린, 돼지 한 마리를 더 만든다.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없는데도 아이들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산촌의 순박한 정취와 자연의 숨결은 식단에서도 묻어난다. 마을 아낙들이 직접 지은 햅쌀밥에다 갓 담근 김치, 몇 가지 나물, 김치찌개에다 보릿국까지 토종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고기반찬이 없다며 처음에 시큰둥하던 아이들도 한 그릇 깨끗이 비우더니 한 숟갈씩 더 먹는다.

 토우 만들기.
토우 만들기. ⓒ 이돈삼

농촌관광은 물론 영농체험과 레저까지를 결합시킨 입체적인 농촌체험 프로그램인 팜스테이(Farmstay)가 인기다. 도시민들에게는 여유 있는 휴식·휴양공간과 새로운 체험 공간을, 농촌주민에겐 농산물 판매와 숙박·음식 등을 통해 소득기회를 제공하면서 우리의 여행·레저문화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팜스테이로 활기를 되찾은 대표적인 곳이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봉조마을이다. 섬진강이 흐르고 증기기관열차가 달리는 철길을 따라가다 가정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만나는 봉조마을은 전형적인 농촌이자 산촌이다.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곤방산에서 산새소리 들려오고 앞으로는 섬진강을 향해 흐르는 봉조천이 교향곡을 연주하며 흐르고 있다.

마을풍경은 계단식 논과 돌담길과 어우러져 흡사 빛바랜 흑백사진 속 풍경처럼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려준다. 가끔 동화 속 마을처럼 안개가 산중턱에 걸리고, 새털구름도 쉬었다 가기도 한다.

 봉조농촌체험학교. 팜스테이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은 곳이다.
봉조농촌체험학교. 팜스테이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은 곳이다. ⓒ 이돈삼

팜스테이의 중심은 봉조농촌체험학교. 폐교된 압록초등학교 봉조분교를 개조한 곳으로 농촌체험의 산실이 되고 있다. 어린 시절 인정과 우정의 무대였던 배움터를 주민들은 '어머니의 안방', '아버지의 사랑방'으로 개조하고 옛날 살림살이와 농사기구 등을 가져다가 방을 꾸몄다.

'어머니의 안방'에서는 절구와 맷돌, 챙이, 다듬이 등 손때 묻은 생활도구를 통해 옛날 할머니들의 살갑던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랑방'에선 사랑방에 모여 볏짚으로 농기구를 만들던 옛날 할아버지처럼 가마니와 삼태기 짜기, 새끼 꼬기 등을 해볼 수 있다.

홀태로 벼도 탈곡해볼 수 있다. 체험만 재밌는게 아니라 놀면서 배우는 실속도 있다. 이들 체험을 하다보면 아이들이 쌀이며 우리 농산물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그리고 우리 농산물과 농촌이 얼마나 소중한지 스스로 알아간다.

 지게를 짊어지고...
지게를 짊어지고... ⓒ 이돈삼

 물고기 먹이주기.
물고기 먹이주기. ⓒ 이돈삼

체험거리도 푸짐하다. 연과 팽이, 새총, 솟대, 토우 만들기, 물장군과 물지게 지어보기 등 가짓수가 셀 수 없을 정도다. 경운기 타고 옹달샘을 찾아가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병아리, 토끼, 염소 등 가축 생태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를 더한다.

체험은 교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농촌체험의 절정은 자연과 더불어 놀기다. 사철 가능한 체험 외에도 계절에 맞춘 체험꺼리도 푸짐하다. 봄에는 들과 산으로 나가 냉이, 씀바귀, 쑥, 취, 고사리 등 나물 캐기와 매실 따기를 체험한다. 올챙이와 개구리, 물방개 생태도 관찰한다.

여름에는 쪽대나 낚싯대로 물고기를 잡아보고 논두렁 밑에서 미꾸라지도 잡아본다. 모내기와 김매기 체험도 체험해 본다. 가을엔 홀태를 이용한 탈곡과 도리깨질, 허수아비 만들기, 알밤 찾기 등을 해본다. 겨울엔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다랑이논에서 얼음 지치기 등을 해본다.

 예슬이가 봉조농촌체험학교 수로에서 부화하고 있는 개구리 알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예슬이가 봉조농촌체험학교 수로에서 부화하고 있는 개구리 알을 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 이돈삼

당일 코스도 좋지만 마을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아낙들이 내오는 토속적이고 정갈한 시골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다. 미리 신청하면 마을 아낙들이 햅쌀밥과 돼지고기, 인절미, 식혜 등 각종 토종 먹을거리를 준비해 둔다.

보릿고개 시절의 정과 훈훈한 인심, 그리고 따사로운 봄볕은 덤이다. 건강한 노동과 넉넉한 마음,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발견하기에 제격이다.

도시민들만 신이 난 게 아니다. 체험비도 체험비지만 때묻지 않은 환경에 매료된 체험객의 발길이 늘면서 민박과 식사 제공에 따른 마을주민들의 소득도 쏠쏠하다. 매실, 잡곡 등 농산물과 토종꿀, 고사리, 능이버섯 등 채취한 산나물도 팔아 재미를 보고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팜스테이다.

 봉조농촌체험학교는 옛날 배움터였던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봉조농촌체험학교는 옛날 배움터였던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다. ⓒ 이돈삼

 한옥체험장이 들어서 있는 봉조마을. 팜스테이로 활기를 찾고 있는 곳이다.
한옥체험장이 들어서 있는 봉조마을. 팜스테이로 활기를 찾고 있는 곳이다. ⓒ 이돈삼


#봉조농촌체험학교#팜스테이#봉조마을#곡성#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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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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