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니 항상 그대로인 것은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을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입속에서 되뇌고, 갸우뚱 고개를 젖히며 '그럴 분이 아닌데∙∙∙'라는 말을 추임새 넣듯 몇 번이나 반복합니다.
갯지렁이 살리자고 촛불 들었던 스님인데...
지난달 26일 오후, 인터넷뉴스를 뒤적거리다 <오마이뉴스>에 '조계종이 'MB악법' 홍보에 앞장... 파문 확산'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지난 1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립공원 구역 사찰 주지간담회'에서 국토해양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국무총리실의 국정홍보물 4종이 대통령실 명의의 봉투에 담겨 100여부 가량 배포되었는데, 배포된 자료의 내용이 4대강 정비사업과 미디어 관련 법안과 관련된 것이어서 "당시 간담회를 진행하던 종무원들이 '(해당정책에 대한) 조계종의 입장과 다르다'며 배포를 중지했지만 한 부장스님이 실무자들을 채근해 다시 배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내용물의 배포를 지시한 부장스님이 누구일까 궁금해 다시금 인터넷뉴스를 뒤적이다 보니 사회부장 소임을 맡고 있는 세영스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스님 변했나?' 싶었습니다. 이와 함께 '제행무상'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그럴 분이 아닌 데∙∙∙'라는 말이 가슴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니 전후사정을 세세히 알지 못하는 답답함에 헷갈립니다.
세영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5월 3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천안역광장에서 진행된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의 날" 행사장에서였습니다. 간척사업으로 죽어갈 갯벌의 갯지렁이와 바지락들,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무수한 생명들을 살려보겠다고 750리 아스파트 길을 땀방울로 적셔가며 무릎으로 내딛고 가슴으로 쓸어가던 삼보일배 순례단이 천안역광장에서 진행한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의 날" 행사장에서 처음으로 세영스님을 만났습니다.
이미 진작부터 시작된 삼보일배였고, 촛불집회 또한 미군이 몰던 장갑차에 졸지에 죽어간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집회 등에서 이미 보아왔지만 잿빛 승복을 입은 스님이 새만금사업으로 죽어가게 될 무수한 생명들을 살리겠다고 촛불을 움켜쥐고 아스팔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모습에 두 손을 모았었습니다.
그런 스님이 새만금에서 죽어간 무수한 생명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소중하고 귀중한 국민, 중생들의 가슴을 피멍들게 할지도 모를 이른바 'MB악법' 홍보에 앞장선 인물로 보도되고 있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흐르는 세월을 따라 변한 것인지 아니면 조계종단에서는 제도권이라고 할 수 있는 총무원 사회부장 소임을 맡으면서 NGO 멤버로 활동하던 사회적 가치마저 '분별없는 행위로 불교의 위신과 존엄을 훼손한' 당사자로 지목될 만큼 바뀐 것인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세영스님을 직접 찾아가다
그래서 지난 27일 전후사정을 알아보고 직접 여쭤보고 싶어 신륵사로 스님을 찾아가 뵈었습니다.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희롱이라도 하듯 물오리들은 철퍼덕거리며 날갯짓을 해대고, 만고풍상을 대변하듯 배배꼬인 향나무가 하품을 할 만큼 조용합니다. 두런거리는 인기척과 자박대는 발자국소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유유자적하는 강물에 동화되기에 충분하니 평온하고 여유롭습니다.
짝사랑을 하듯 필자만 스님을 알고 있을 뿐 스님께서는 기억조차도 없을 것 같아 먼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뵈었었다는 것을 설명 드리니 당시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찻잔을 마주 하고 앉았습니다. 찻잔을 비우면 스님이 채워줍니다. 찻잔만을 채우는 게 아니라 궁금해 하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주십니다.
결과적인 이야기이지만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홍보물을 배포하는 데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고 신중했어야 했는데, 사전에 그 내용을 충분히 알지 못한 상황에서 배포하게 함으로 논란을 야기한 자체가 부덕의 소치"이고 "정부의 홍보자료집이 간담회에서 배포된 것과 관련해 종단 내외적으로 논란이 발생한 점에 대해 아쉬움과 유감이 크다"는 말로 전후사정을 들려주십니다.
또 정부나 시민사회단체 등의 의견을 듣거나 자료를 참조하는 것 또한 종교단체가 추구해야 할 열린 자세의 한편으로 생각해 세밀한 내용검토 없이 자료를 배포하게 한 것이지만 "그것이 의견이나 참고자료의 내용에 동의한다는 것과는 별개"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어찌되었건 "개인적 부주의나 불찰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일이 종단의 공식 입장인양 오해하거나 과장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앞으로는 정책적으로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부대중의 의사와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종단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도록 맡은 소임을 다 하겠다"는 말로 궁금해 하는 사항을 정리해 주십니다.
당신의 입장에서 이러쿵저러쿵 설명 아닌 설명이나 변명 아닌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있었던 사실 그대로, 사전에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배포하게 한 불찰, 당신의 개인적 불찰로 오해를 사게 된 종단에 대한 부담감 등을 꾸밈없이 설명하며 미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자신의 불찰마저도 깔끔하게 인정하고 미안해하는 스님의 표정에는 5년여 전인 2003년, 뭇생명에 대한 사랑과 걱정으로 750리 길에서 삼보일배를 펼치던 삼보일배 순례단의 숭고함과 그 숭고함을 차가운 아스팔트에 주저앉아 촛불로 밝히고 있던 세영스님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습니다.
제행무상이라고 했으니 세영스님 또한 항상 그대로일 수는 없겠지만 더 이상은 개인적인 실수로라도 불교의 위신과 존엄을 훼손하거나 소위 MB악법의 홍보에 앞장 설 분은 아닐 거라는 확신을 가져봅니다.
흔들리고 있는 건 소위 'MB악법'일 뿐인데...
바람에 펄럭이는 풍번을 보고,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고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며 패를 가르던 스님들처럼 정국의 하늘을 흔들고 있는 소위 MB악법에 휘둘려 공연히 패를 가르고 있는 건 아닌가가 걱정스럽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풍번을 보고 스님들이 '깃발이 움직인다',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며 패를 가를 때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닌 스님들의 마음이라고 한 혜능선사의 선답처럼 이러쿵저러쿵 발생한 작금의 갈등이나 불찰 역시 피아(彼我)가 흔들리는 게 아니고 푸른 기와집에서 흔들고 있는 소위 'MB악법'일 뿐이라는 걸 깨달아 흔들리는 실상을 똑바로 보게 된다면 더 이상 흔들릴 피아는 없을 겁니다.
바위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니 흐르는 강물에 잠긴 산과 바위가 흔들거립니다.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니 산도 바위도 그대로입니다. 강물에 비친 산과 바다가 계속 흔들고 있으니 산이 흔들리는 건지 강물이 흔들리는 건지 헷갈리기도 하지만 강물은 흐를 뿐이고 산은 그대로이니 이 역시 마음이 흔들릴 뿐이고 흔들리는 마음 또한 제행무상입니다.
구설수 또한 제행무상일 테니 다시금 NGO에서 활동하는 세영스님의 모습을 고대하고 그려볼 뿐입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풍번이 아니고 중생들을 걱정하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허허롭기만 한 창공에 세영스님의 벌력이 우뚝 솟기를 기대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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