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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삶의 기본으로 보기

태초부터 인간은 좋은 집을 얻거나, 짓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집'과는 생김새나 구조가 거리가 멀지는 몰라도 - 새가 혹은 개가, 아니면 딱정벌레가 짓는 수준인지 몰라도 - 적어도 그러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정착을 시작했을 때부터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해서 현실화 되었고 그 기법이 수천 년을 내려왔다.

한국의 '한옥', 일본의 목조주택, 유럽의 고풍스러운 주택들, 역사는 짧지만 완전한 규격화로 대중화된 캐나다식 혹은 미국식 목조주택 등은 '기법'이 된 지 오래다.

한국인의 다수가 아파트에 산다. 무엇이든 자본으로 소비하고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풍조 속의 최고의 양식이 '아파트'이다. 층간소음과 같은 크지 않은(?) 문제들을 감수할 만큼 큰 매력은 무엇인가. 왜 손바닥만한 실제의 땅의 지분을 가지고 '겹겹이', 또는 '줄줄이' 겹쳐서 살고 있는 것인가. 좋은 집인가.

효율의 가치를 어디에다 두느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절대로 '좋은 집'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거기에 사는 당신과 살아봤던 나와 또 살기를 희망하는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허공'에 대한 자본적인 가치이거나 그 '허공'을 공유하는 주변 지역이 가진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비전'이거나 혹은 광고가 속이고 있는 '환상'일 수도 있겠다.

생태주택의 진면목 이것도 좋은 집이다. 외국의 주택인데 주택짓기 관련 카페에 어디가든지 널려 있는 사진중 하나. 풀이 자라고 있는 지붕이 꽤 인상적이다.
생태주택의 진면목이것도 좋은 집이다. 외국의 주택인데 주택짓기 관련 카페에 어디가든지 널려 있는 사진중 하나. 풀이 자라고 있는 지붕이 꽤 인상적이다. ⓒ 누굴까

새벽에 바람이 심했던 며칠 전 아침에 생긴 일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근무하는 곳엔 세 개의 책상과 의자가 있다. 행정구역이 다른 진안에서 출근하는 나와 근처 고산에서 출근하는 임선생과 전주 '아파트'에서 출근하는 박선생이 있다.

나와 임선생은 지난 새벽에 몰아치는 강풍으로 한 숨도 제대로 못 잤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미완의 집에 둘러 있는 비닐의 벽이 날아가거나 아직 지붕만 있는 뒤채의 물건들이 비로 다 젖어버릴 것을 염려한 탓이었고, 곶감을 재배하는 임선생은 집 옥상의 곶감건조장이 망가져 버릴 걱정 때문이었다. 서로 속 태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쪽에서 조간신문을 읽고 있던 박선생에게 지난 새벽을 물었더니 "그런지도 전혀 몰랐다"는 답이었다.

주택, 시스템?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어찌 이리 다를 수 있는가에 충격을 받는 것도 잠시, '부럽다'가 0.1초였다면 얼마 안 되어서 측은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주변 환경에 의한 위기감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숙면이 중요하긴 하지만 주변 환경에 대한 '단절'이 과연 인간건강에 이로움만 줄까? 창을 열면 되지 라고 하는 분도 있겠지만 겨울에 누가 창을 여는가, 여름이면 에어컨 켜고 또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그 편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요즘 아파트에는 참살이(웰빙) 바람이 분다. 테라스를 개조해서 툇마루를 놓는다거나 작은 온실로 꾸민다거나 심지어는 기존의 벽지나 타일을 걷어내고 그곳에 흙을 바른다. 물론 몸에 좋다는 '황토'를 바른다. 아예 입주 전에 마감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한다. 포름알데히드 등의 독소를 배출하는 시멘트, 벽지, 가구 등의 위에 나쁜 물질을 흡착해주는 효과가 탁월한 흙을 선택하는 것이다.

좋은 징조이다. 짝짝짝.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 이라고 해주고 싶다. 고작 3센티미터의 두께로 발라진 흙은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그 생명의 '흙'은 오염물질이 쌓여서 본기능을 못하고 말라 죽어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적어도 몇 년간은 아니, 일년이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 흙집에서 살아"라고 외쳐도 까칠한 친구가 아니라면 누가 크게 반박하지 못할 게 아닌가.

도시생활 30년만에 시골에 와서 가장 큰일을 벌인 것이 땅을 사고 거기에 집을 지은 것이다. 게다가 사고 친 것은 그 방식을 '한옥'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냥 조용히 '목천흙집' 정도(이것도 적게 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로 했으면 벌써 안락하고 편안한 주거가 완성을 보았을 것이다. 한옥으로 짓게 된 것은 확실히 우리 형편에 무리였다. 창피한 일이지만 부모님이 도와주신 돈을 다 쏟고도 완성을 못 보았으니 한심하다 할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 기분은 좋다.

"한옥에 살아봤어요? 안살아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다. 3개월여 살면서 공간 안팎에서 느끼는 흐뭇함. 미소가 절로 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겉은 갈라진 흙벽을 드러내고 나무와 흙의 연결 부위는 틈을 만들어서 겨울을 나느라 비닐 옷을 입어서 누더기처럼 보이는 한옥이지만 '몇 년 안에 완성되겠지 뭐'라고 마음먹으면 두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갚아야 할 대출금도 융자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 집'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니 어찌 기쁘다 하지 않을 수 없겠는가. (이제 시간 나는 대로 또 돈이 모아지는 대로 벽돌 한 장씩 또는 흙 한 움큼씩 붙여 나갈 셈이다.)

이쯤 되면 읽으시는 분 들 중에는 "그래 니똥 굵다"하실 분들도 있겠다.
그럼 나는 이렇게 답변하겠다.
너도 해봐 라고.

못난 아파트에 살면서 머리 뜯고 있지 말고 스티로폼박스, 화분, 안 쓰는 양푼, 냄비 등을 모아서 흙으로 채우고 매일 섭취하는 채소류를 심어라. '좋은 집'은 별 거 아니다. 위층에서 어린노무 형제자매들이 뛰어서 잠을 설쳐도, 뻘건 눈을 비비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파랗게 피어오른 상추를 한입 뜯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이 맛 아입니까"하며 덩실 춤을 출 수도 있는 곳이다. 그리고 기왕 할 거면 가득 채워라.

꿈꾸지 말아야 할, 귀농

선반 만들어서 테라스 한쪽에 가득 채워보라. 상추, 시금치, 깻잎,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에 이어서 호.박.은 조금 어렵겠지만 거실도 눈뿐 아니라 아침저녁으로 마음까지 괴롭히는 TV를 안방으로 치우고 풀과 꽃으로 채워봐라. 광합성도 별로 안하고 꽃도 잘 안 피고 키우기 어려운 이름모를 난 화분으로 폼 내지 말고, <야생초편지>라도 한번 읽고 아파트 한쪽에서 곧 뽑힐 운명의 동지들을 구해서 과감하게 더부살이 해 보란 말이다. 아마 산소로 가득 찬 공간에서 오랜만에 오는 친지들이 "어머, 여기 왜 이래. 흠. 흐~음"하며 코를 벌름거릴 것이다.

잘 알아둬야 할 친구 이 친구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엄청 많이 먹는다. 그러므로 특히 아파트 베란다에서 작물을 키우는 경우라면 도움을 많이 줄 친구이므로 잘 알아 두어야 한다.
잘 알아둬야 할 친구이 친구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엄청 많이 먹는다. 그러므로 특히 아파트 베란다에서 작물을 키우는 경우라면 도움을 많이 줄 친구이므로 잘 알아 두어야 한다. ⓒ 임준연

귀농을 꿈꾸지 말라. 그대 꿈꾸고 있는가. 리얼리? 차라리 오늘 화분에 한 포기의 상추나 배추를 옮겨 심어라. 비싼 황토 몇 백만 원씩 들여서 벽에 쳐 바르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집'이 될 테니까. 몇 년 내공이 쌓이면 벼도 길러서 아이들에게 이게 네가 먹는 쌀의 원조란다 라며 흐뭇해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매거진d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좋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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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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