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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것에 파생된 것들의 이야기, 아주 가벼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호기심과 함께 '이 세상의 이야기 중 가벼운 것이 있을까?' 라는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처럼 책장 넘기기엔 정말 가벼운 책이었다. 하지만, 읽고 난 후 여운의 무게는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유머에 대한 부담감 생겨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건 프롤로그를 통해 짐작 할 수 있었다. 작가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유머에 대한 경의'때문이라고 했다. 작가는 역경을 맞은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유머라고 말한 어느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그동안 유머를 잊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때부터 유머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지금은 작가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고 한다.

 

유머는 언제나 스스로 생성되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위적인 노력으로 찾아야 될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유머'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특히, 이 책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드러내주는 문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신나고 좋은 일을 해봅시다! 나에게, 또 남에게,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라는 문구다.

 

어쨌든 가볍게 쓰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에게 꽤 무거운 숙제를 던져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무게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하고 싶다.

 

작가 못지 않은 나의 인복

 

이 책에서 소개된 지리산의 두 친구 이야기는 너무도 유쾌했다. '세상에는 이렇게 멋스럽게 내어줌을 실천하면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작가가 자랑하는 친구복이 부럽기도 했다. '내어준다는 것'도 쉽지 않은데, 멋있기까지 하니...

 

나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주위에는 그런 멋진 사람이 없는가?'라고...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내 주위에도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한 대로 산다'는 좌우명으로 인생을 즐기면서 사람 키우는(?) 소중함을 깨닫고 실천하며 살고 있는 선배, 직장을 과감히 때려치우고 귀농을 통해 생명을 지키고 있으며 손수 지은 자기 집을 누구에게나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농부, 작은 공동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좋은 세상 만들어볼려고 깔짝대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아줌마들...

 

정리해 보니 나 또한 참 인복이 많은 편이다. 이런 소중한 인복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었으니 조금은 한심해진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이기도 하다.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찾게 해주니 말이다. 이 책은 이렇게 어떻게 '마음먹냐'를 나름 가르치고 있는 듯 했다.

 

'마음먹기 나름' 난 젋은데도 공감되는데...

 

약간 어조가 다르긴 하지만 이왕 '마음먹기'라는 말이 나왔으니 작가의 '마음 먹기 나름이다'라는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우리가 하고 있는 걱정의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나머지 20% 중에서도 우리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며,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2%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은? 걱정하지 마라는 것이다.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 신부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두 명의 신부가 외딴집에서 휴가를 보내게 되었는데, 닫혀있어야 할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흉흉한 마음을 먹게 되면서 파리와 풀벌레 소리에 공포감으로 밤을 지새운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마음먹기에 따라 사실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작가는 '마음먹기 나름이다'라는 말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절감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젊은 날 어려운 시련(?)을 많이 겪은 나로서는 일찍부터 이 말을 위로삼아 살아왔다. 

 

나의 핸드폰 화면에는 아직도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적혀있다. 나에게 소중했던 이 말이 다른이는 나이들어서 공감하게 되었다는 말에 괜히 뿌듯한 기분마저드는 건 왜일까? '난 이미 알고 있었는데...'라는 잘난 척 하고 싶은 마음일까? 결국 난 이 말 덕분에 잘 이겨냈고, 이 말은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마음 근육은 얼마나 될까?

 

이 책에는 여러 가지 멋진 말이 많이 나오지만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는 말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작가는 힘든 일을 겪은 친구에게 이렇게 종종 말한다고 한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어.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어림도 없지. 하지만 날마다 연습하면 어느순간 너도 모르게 어려운 역경들을 벌떡 들어 올리는 널 발견하게 될거야.

 

한 때 이런 말을 친정 엄마에게 한 적이 있다.

 

"엄마, 난 앞으로 경제적으로 힘들어 지더라도 잘 이겨낼 것 같애.  지난날 경험들이 너무 독해서 제대로 예방주사 맞은 것 같거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대학 졸업할 시점에 겪은 나는 적은 월급으로 집에 보태느라 여유가 없었으며 주위 압박들에 시달려야 했다. 힘든 경험이 물론 겨우 5-6년에 불과했지만, 어린 나이에 겪어서 그런지 그 고통은 매우 컸다. 그 아픔들 덕분에 결국 내 마음에 내성이 생겼고 작가의 말대로 마음 근육이 생겼기 때문에 친정엄마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근육,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멋진 표현이다.

 

적어도 이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유명세로 자신의 아픔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괴로움과 성이 다른 세 아이들로 인해 힘들면서도 행복했던 순간들, 그리고 엄마라는 위치에서 예전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 행동을 본인이 하고 있을 때의 민망함, 주위에 평범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속된 인간임을 약간씩 드러내는 이야기로 이 책은 꾸려져 있다.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 느껴지는 진솔함으로 인해 잔잔한 감동과 함께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남을 느낀다. 사실, 새로운 에너지라 표현하기엔 조금은 과장된 감이 있으나, 적어도 이런 삶은 살아야지 하는 막연한 목표 비슷한 게 세워진 건 사실이다. 그리고 작가가 싫어하는 사람들 축에는 들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하게 된다.

 

가벼운 내용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게 만들어 낸 것 또한 작가의 능력일까?  아님 무능일까? 책을 덮고 난 후 생각의 깊이가 달라졌음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싫어하는 류의 사람을 정리하면 이렇다.

 

- 아무것도 안 하고 푸념만 하고 있는 사람

- 멋 안 내는 사람

- 위선이 뭔지도 몰라 못 떠는 사람

- 공손하게 존대말하는 나에겐 불친절하고 반말 찍찍하는 아저씨들에겐 굽실거리는 종업원

- 특히, 제가 해야 할 말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한겨레출판(2009)


#아주 가벼운 깃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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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에서 시민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소통을 위해 여러방면으로..노력할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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