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 기본요소인 옷과 음식, 집을 통틀어 우리는 의식주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음식일 테고 아마도 그 다음은 옷이 아닐까? 남에서는 '의식주'라고 하지만 그래서 북에서는 '식의주'라고 부른다.
70년대 국내 산업을 이끌던 업종이 바로 섬유산업인데, 몇몇 고가 브랜드의류를 제외하고는 '메이드인 코리아'를 확인할 기회가 별로 없다. 산업화와 더불어 주요산업이었던 섬유산업이 사양 산업으로 접어 든 것. 때문에 기업 채산성 등을 이유로 국내에는 의류 생산업체가 전보다 많지 않다.
청천동 아파트형 공장 부평우림라이온스밸리에 있는 아트윈피복주식회사(대표이사 김형모, 56)는 옷 중에서도 산업현장에 꼭 있어야 하는 여러 종류의 작업복을 제작하는 의류업체다. 남들 다 그만 두던 산업을 그는 무슨 생각을 갖고 창업했을까?
97년 IMF외환위기가 왔을 때 당시 벽산그룹에 몸담고 있었던 아트윈피복주식회사 김형모 대표이사는 회사를 그만두고 뜻한 바가 있어 99년 아트윈피복의 전신인 백조상사를 월세 100만원의 매장을 구해 부평구 산곡입구3거리 인근에 창업했다.
창업 당시 김 사장의 목표는 작업복을 소위 유명브랜드화 하는 것이었다. 흔히 작업복을 생각하면 일할 때 그냥 아무렇게 입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김 사장의 생각은 달랐던 것. 그는 사람들이 일하면서도 착용 시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작업복의 디자인 또한 세련되면 일하는 사람도 기분 좋고, 일의 능률도 향상 될 것이라 판단했다. 문제는 인력난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생각한 바를 현실로 옮기기 위해서는 제품의 질과 디자인이 담보 돼야 했다. 그래서 김 사장은 디자인과 기술을 전담할 인재를 공장장으로 영입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중국을 노크도 해봤다. 하지만 그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김 사장은 "중국에서 생산할 경우 중국도 이제는 인건비가 올라 봉제분야 인건비가 국내 임금의 75%수준에 이르고, 의류제작에 필요한 원부자재의 경우 가격이 고환율이면 중국과 비슷해 생산성이 없다"며 "더구나 중국정부에서 이제는 세금도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 야반도주 하는 기업도 늘었다"고 말했다.
김 사장, '평양문을 두드리니 열리더라'
그래서 김 사장은 고민 끝에 중국 대신 북한, 평양을 선택했다. 그는 "사실 저는 봉제기술과 디자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습니다. 다만 20년 가까이 회사 근무할 때 품질관리를 맡았던 점과 비즈니스 경험을 토대로 사업성을 내다 봤을 뿐"이라며 "개성공단으로 진출할 생각도 했었는데 남북관계가 여의치 않아 망설였다"고 말했다.
월세 100만원으로 출발했던 백조상사는 어느 덧 연 매출 20억 규모의 탄탄한 의류회사로 발돋움했다. 아트윈피복이 국내 유수의 대기업과 공기업, 그리고 관공서의 단체복을 주문제작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북측 노동자들이 지닌 봉제기술의 우수함과 이를 통해 결정되는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의 우위확보였다.
그는 "중국현지에서 원단을 구입하나 한국에서 구입해서 사가지고 가나 가격은 별반 차이 없다. 오히려 한국 원단이 질은 더 우수하다"며 "제가 북한과 직접 교역이 어려워 단둥에 있는 중국기업과 손을 잡고 평양에 있는 공장에서 'MADE IN DPRK'로 생산해 다시 중국을 경유해 가져 오고 있는데 봉제기술은 북측이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데다 중국에 비해서도 임금이 적어 작업복 시장에서 10~15%이상의 가격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아트윈피복이 평양 생산 공장과 직접 교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트윈피복에서 생산하는 품목이 모두 평양에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국기업과 손잡고 평양에서 시작된 작업복 생산은 아트윈피복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회사 매출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제품이 기성복인데 주문복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평양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기성복이야 큰 무리가 없지만 대기업 단체복과 관공서에 들어가는 단체복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다. 대기업 단체복의 경우 납기일을 맞추는 것이 품질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공서 단체복은 대치하고 있는 남북관계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기회가 닿으면 개성공단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덧붙여 "큰 목표는 없다. 경제 불황은 작업복 생산을 하는 우리에게 엄혹한 시련이다. 마음 같아서는 GM대우 노동자의 작업복을 내 손으로 디자인 해보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냐?"며 "요즘 자금 사정이 안 좋은데 기본매출이 있어 버티고 있지만 경제 불황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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