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학력과 인혁당 사건을 통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2008년 촛불, 2009년 미네르바를 통해서 우리 사회는 오늘도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치와 법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이 둘이 '권력'이라는 이름과 맞물리면 이상하게도 잘 어울린다. 정치와 어울리는 것이 싫어 어떤 법률가들은 아예 정치와 담을 쌓음으로서 법의 긍지를 세우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정치적인 동물이고, 권력자들이 정치 행위를 통하여 권력을 행사하려 할 때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면 정치를 경원시하거나 초연하려는 법률가들 행위는 충분하지 않다.
정태욱은 <정치와 법치>에서 법과 정치에 관한 추상적인 이론을 넘어 우리 시대 민주공화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고 한다. 촛불재판 몰아주기와 미네르바 사건만으로 확인되었듯이 우리 사회는 법이 정의를 세우는 일보다는 정치권력에 눈치를 더 많이 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는 이미 허무를 넘어 냉소주의에 빠져 있고, 도덕성을 상실한 정치권력이 오히려 법치를 강조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에 가장 관심이 많지만, 정치에 가장 냉소적인 대한민국 인민들. 감동을 주는 정치를 원하지만 오늘도 '여의도'와 '북악산'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특히 그동안 온갖 기득권을 누려왔던 이들은 국민의 정부 이후 참여정부를 포퓰리즘, 인치, 법치가 없다고 맹공했고 정권을 잡은 이후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되풀이고 하고 있다.
정태욱은 법치를 강조하는 이들이 진정 법치와는 별 관계가 없으며, 결국 인민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특히 정태욱은 법치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앞선다는 주장은 왜소한 법률주의로 만들 수 있다면서 "민주주의가 없는 의회 그리고 민주주의가 없는 법률은 생각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는 바로 법치주의의 근본을 이루는 원리이다"고 주장한다.
정치권력이 법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일은 자식이 어미를 제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 정태욱이 말하고 싶은 정치와 법치다. 이명박 정권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정태욱은 "자유민주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으면서 탄생한 색깔론은 정당한 헌법적 요청들을 헌법에 반하는 것으로 단번에 기각시켜 버릴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발휘해 왔기"때문에 자유민주주의가 헌법의 최고 명제라는 주장은 허구성이라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전교조 같은 세력을 좌익으로 매도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이념'이라는 잣대로 사상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 제119조 제 2항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가 사회경제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음을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정태욱은 말한다.
정태욱은 정치권력이 법치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하면 민주주의가 훼손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태욱이 우려한 일들은 이미 우리가 경험했다. 일본제국주의, 이승만 이후 독재와 군사폭압정권이 인민을 국가에 종속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그들의 기본권을 해하였나. 정치 권력은 교활하게 법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지금도 정치권력은 법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우매하고 오만한 법치의 주장을 따져 묻지 않는다면 법치는 결코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법치의 주장에 실린 위선적 언어와 정치적 오염을 씻어내지 않고서는 우리 법치주의와 헌정 질서의 후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정태욱은 경고한다.
정태욱은 우매하고, 교활하고, 오만한 법치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법치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존 롤스가 주장한 '정치의 힘은 곧 관용'이란 개념이다. 롤스는 정치적 덕목 즉, 최고의 헌법적 가치들은 곧 관용의 원리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모든 사회 관계와 모든 사회 세력들에게 관용을 통한 자유와 평등을 역설했다고 정태욱은 주장한다. 롤스가 말한 관용은 무엇일까?
"정치 영역이 어떠한 사회적 목적이나 도덕관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즉 롤스의 관용은 배타적 독점을 거부하는 이른바 '배제의 배제'의 원리다."(69쪽)
정태욱은 법치주의 매력은 권력의 남용과 일탈을 제어하는 데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공공성의 정치 영역을 지키는 데에도 쓰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우리나라 법치는 이것을 실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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