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복날의 손수레 6
선호가 모래내시장 등 뒤에 있는 모래마을로 이사 오게 된 때가 바로 1996년이었다.
그 해 여름,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의 통일로 변에서 차 한 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논길을 따라 들어가면, 야산(野山)이 막고 있는 곳에 나지막하게 지어 놓은 슬레이트 지붕의 농가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 농가는 고추 등의 밭농사를 지었으며, 집 뒤쪽에는 사슴도 여러 마리 키우고 있었다.
선호는 그 집에서, 간단히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된 입식 부엌과 방 한 칸이 전부인 공간에 사글세로 세 들어 살고 있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 16만원을 냈으니, 전세로 치면 900만원쯤 되는 싸구려 셋방이었다. 전원(田園)의 공기와 냄새를 좋아하는 선호로서는, 그 집이 전원주택은 아니더라도 특별히 불편한 점은 느끼지 못하고 살았었다.
다만 그 집 화장실이 재래식 변소라는 것이 탈이었다.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라면 회사에 가서 큰일을 보면 그만이겠는데, 집에 들어앉아 펜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하루에 한두 번쯤은 인분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변소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내려다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코와 입으로 스며들어오는 고약한 악취는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재래식 변소가 싫어서 이사 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선호는 1990년에 대하소설 <북한강>을 펴낸 뒤로 이만저만하게 알려진 작가이기는 하지만, 그 뒤에 쓴 소설들이 잘 팔려주지 않았다. 선호가 그 동안 모아놓은 돈이라고는 500만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궁리하다 못해 그 돈으로 전세방을 구하려고, 서울 광화문이나 영등포에서 좌석버스가 운행하는 고양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금촌이나 문산에도 가보곤 했는데, 좀체로 마땅한 장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다녔다.
생활정보지의 작은 활자를 볼 수 있을 만큼 눈이 좋은 게 다행이었다. 군대에서 사단 기관총 사격대회를 하면 1등을 하곤 했을 만큼 오른쪽 눈이 좋은 시력을 가졌는데, 아직 망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선호는 볼펜으로 하나하나 체크해 가며 '언제고 나타나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찾고 또 찾아다녔다.
선호가 사글세 입주를 포기하고 돌아선 곳은 대부분 글을 쓰는 데 부적절한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 곳은 방의 창문을 열어봐야 좁은 골목 너머 다른 집 창문이 코앞에 다가올 정도로 꽉 막혀 있었다.
다른 한 곳은 콘크리트 마당을 바라보고 단칸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인데, 코앞에 미군부대가 있어서 그런지 비어 있는 방 옆방에 사는 여자가 어쩐지 미군의 동거인처럼 보였다.
"이 집 주인은 어디 있나요?"
"아저씨, 총각이세요? 미남이네요, 호호. 여기 살기 괜찮아요. 주인아줌마한테 연락해 드려요?"
점잖아 보이지 않는 여자의 눈빛이 어쩐지 양공주 출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좋은 소설 소재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집중해서 작품을 써야 하는 작가에게는 알맞은 환경이 못 될 거라고 생각했다.
또 한 군데는 큰 단독주택의 뒤뜰에 마련돼 있는 단칸방이었는데, 우선 입을 꽉 다문 듯 커다란 대문을 열고 드나들어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게다가 주인아주머니가, 주인아저씨가 고혈압에 당뇨를 앓고 있어서 신경이 예민하니까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다는 것이었다. 주량(酒量)이 센 쪽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선호로서는 술자리에서 먼저 빠져나오는 체질이 아니었다. 그런 선호인지라 늦은 시각에는 들어오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고 세입자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선호는 사글세 쪽에서 전세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당장 돈이 문제였다. 1000만원 정도의 전셋집으로 들어갈 걸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 500만원을 먼저 받고 계를 부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제 날짜에 50만원씩 꼭 갚아야 돼. 못 갚으면 안 돼."
"알았어요. 부지런히 글 써야지요 뭐. 취직도 하던지."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고는, 생활정보지를 샅샅이 뒤져가며 10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하러 다녔다.
마침 좋은 곳이 세 곳 눈에 띄었다. 한 곳은 길가에 있는 조립식 주택이었는데, 혼자 살기에는 알맞은 공간이었다. 방 한 칸에 부엌과 화장실까지 덧붙여서 집 한 채를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집채가 너무 가벼워 보여서, 폭풍우가 불면 날아갈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그럴 리야 있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걸렸다.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황소 한 마리가 축사(畜舍)에 살고 있는데, 소똥 냄새도 바람에 날려 창문으로 들어오고, 소 주위에는 파리가 많이 날아다녔다.
또다른 한 곳은 2차선 아스팔트에서 50m쯤 들어가면 나오는 조립식 주택이었는데, 너무 으슥한 것이 문제였다. 조용해서 좋기는 하지만, 주위에 다른 집이 한 채도 없기 때문에 집을 비웠을 때는 도난의 위험성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가 선호는 정말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삼송리에서 양주로 향하는 도로변에서 샛길로 빠져 언덕을 넘으면 개울가에 자리 잡고 있는 좋은 단독주택의 뒤쪽에 있는 공간이었는데, 응접실도 넓었고 방도 두 칸이나 있었다. 육안으로도 20평은 너끈히 되어 보였다. 그런 집이 전세가로 1000만원이라니 거짓말 같았다.
'앞에 있는 개울도 물이 맑으니, 바람 쐬러 나오기에도 아주 좋은걸.'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걸렸다. 그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좁은 언덕길을 넘어가야 하는데, 그 언덕길이 시작되는 곳에 육군 부대가 있었다. 크지 않은 작은 부대였는데, 혹시 술을 많이 마시고 걸어가던 중에 보초 근무자한테 욕을 한다거나 했다가 총을 맞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걱정거리가 발동하는 것이었다.
턱도 없는 일이었지만, 선호는 못 먹을 감 찔러나 보자는 생각으로 자신이 사는 관산동 부근의 빌라를 구경해 보았다. 넓고 쾌적한 공간… 바라보기만 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이런 데서 살 수만 있다면 마음에 드는 어떤 여자라도 자신 있게 프러포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덧 나이 서른여섯, 그 나이에 사글세나 전셋집을 찾아다녔던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마침내 선호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을 저질러놓고 보면 다 해결해 나가는 수가 생긴다지 않는가? 사글세고 전세고 관두고 아예 집을 사는 수는 없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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