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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꼬깃꼬깃 둘둘 말린 500동짜리 베트남 지폐 일곱 장이 쉼터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지폐에는 호치민 초상과 컨테이너에 짐을 싣는 여러 척의 배가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 잠을 자다 흘렸나 싶어 한 장씩 집어 방 한쪽 싱크대 옆에 있던 커피포트로 눌러 놓았다. 주인이 집어가겠거니 했던 베트남 지폐는 며칠이 지나도 커피포트에 꾹 눌린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트남 돈 1만동이 우리 돈으로 대략 1천원 꼴로 알고 있던 터라, 지폐 일곱 장을 합쳐 3500동이라고 해 봐야 350원밖에 되지 않다 보니, 작은 돈이라고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건가 싶어 베트남 출신 틔이에게 물어봤다.

 

"여기 이 돈이 벌써 며칠째 있는데, 아무도 찾아가지 않네요."

"아, 그 돈, 아저씨가 던지고 간 돈이에요."

"아저씨가 돈을 던지고 가요?"

"아들 죽은 아저씨, 여기서 잤잖아요. 베트남에선 죽은 사람 데리고 갈 때 돈 던져요."

 

그제야 감이 잡혔다. 쉼터에 유골함을 들고 와서 이틀을 묵고 갔던 베트남 아저씨 응우엔 씨 이야기였다. 아저씨의 아들 루엔(Luyen)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에 온 지 2년이 안 된 상태에서 결핵성뇌막염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자식의 유해 송환을 위해 입국했던 그가 노잣돈을 뿌리고 간 것이었다. 아저씨가 출국하던 날 외지에 일이 있어 그를 배웅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모습으로 쉼터를 나섰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노잣돈이라는 개념이 베트남에도 있다는 사실에 다시 물어 보았다.

 

"그건 한국하고 비슷하네요. 사람이 죽으면 편히 가라고, 옛날엔 장사 지낼 때 동전을 넣어줬는데. 그걸 노잣돈이라고 해요."

"베트남 돈 500동이면 짜(차) 한 잔 해요. 그런 거예요."

"차 한 잔 값의 여비라......"

 

차 한 잔 값의 노잣돈을 뿌린다는 말에서 고단한 삶을 살았을 아저씨가 자식의 유골함을 안은 모습을 떠올렸다. 500동짜리 차 한 잔이라면 시골 장터에서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차로, 비록 친구들에게 한 턱 낸다고 해도 가난한 품꾼에게도 호사가 아닐 것이다. 그런 돈을 자식을 위해 뿌리며 방을 나섰을 아저씨에게서, 순간 베트남 보트피플 출신 찐반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월남 패망 이후 인도네시아 갈랑 캠프(Galang Refugee Camp)에서 7년 동안 보트 피플(Boat People)로 난민 생활을 했다던 찐반칸의 아들은 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이천에서 농장 일을 하다 돌연사했다.

 

그는 당시 며칠간 쉼터를 이용하면서 쉼터에서 금지된 음주를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음주를 과하게 하는 건 아니었고, 그저 마음을 달래고자 한두 잔 하는 식이었는데,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이야 오죽할까 싶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찐반칸을 데리고 자식이 일했던 일터와 부검 현장과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그는 눈이 벌게지도록 울었고, 들썩이던 어깨는 모진 풍파를 헤치며 살아왔을 강단 있는 남자의 어깨라기에는 한없이 연약하고 초라해 보였다.

 

찐반칸이나 응우엔 아저씨나 자식만큼은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자식들의 타향살이를 허락했을 터인데, 유골함의 한 줌 재로 돌아온 자식을 보며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유골함을 들어야 하는 부모가, 먼저 가는 자식을 차 한 잔으로 달래는 심정이야 어찌 말로 다할까? 험난한 인생을 살며 어쩌면 우리네 부모들처럼 자식이 전부인 양 살았을 그의 슬픔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다.


태그:#베트남, #유골함, #노잣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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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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