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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신라, 백제와 더불어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가야. 흙, 철, 불을 마음대로 다스려 토기와 무기 등을 만들어 일본, 낙랑, 중국 등에 수출했던 가야는 492년 동안 삼국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었던 나라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가야를 삼국시대에 잠시 있었던 나라로 여기며 가야국 존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가야금으로 유명한 그 가야국이 있었던 김해에서 최초로 가야시대 제사유구가 나와 고대 기야시대 금관가야가 행했던 의례를 처음으로 복원해 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그 당시 가야인들이 추구하고 있었던 정신세계와 기복신앙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됐다.    

 

동서문물연구원이 지난 1월 29일(목)부터 김해시 생림면 나전리 산 77-2번지 일대에서 펼치고 있는 문화재발굴조사에서 조선∼근대 토광묘 10기와 회곽묘 1기 등과 함께 가야시대 제사유구인 수백 점에 이르는 토기편과 제사의식을 상징하는 동물형 철기 등이 나와 고고학계의 눈길이 한꺼번에 쏠리고 있다. 

 

김해시는 6일 "동서문물연구원이 실시되고 있는 이번 조사는 김해 일반 지방산업단지 조성공사 토사채취장 부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 지역에 대해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해 가야시대 제사유구가 갖는 의미와 낙동강으로 나가는 길목인 지점에서 제례의식을 행한 이유 등을 분석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동서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가야시대 제사유구는 발굴조사 구역 안에서도 가장 높은 구릉 마루에 동물형 철기를 비롯한 여러 토기편 등이 파묻혀 있었다"며 "제사유구의 내부와 폐기된 토기편 표면 등이 모두 불에 그을린 채 발견돼 당시 이곳에서 의례행위가 행하여졌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가야시대 제사유구가 발견된 이 지역은 김해에서 낙동강으로 나아가는 주요 길목으로 지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야시대, 낙동강은 동남진을 계속하고 있었던 신라와 국경 역할을 했던 곳으로, 이 지역에서 제사유구가 발견된 것은 낙동강을 바라보며 국가수호를 위한 의례행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동서문물연구원이 봉황동 220-5번지 일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발굴조사에서는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4동과 '김해 객사·동면(金海 客舍·東面)'이 새겨진 기와편 등이 발견되었다.

 

동서문물연구원 관계자는 "이 기와에 새겨진 '김해 객사·동면(金海 客舍·東面)'이란 뜻은 동면에 있는 사람들이 객사를 짓기 위해 참여하였거나, 이 기와를 만든 곳이 동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동면(東面)'은 <여지도서>에 '상남면 하남면(上東面 下東面)'이 나오는 바, 이 기와는 '동면(東面)'이 상하로 나눠지기 이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가야시대 제사유구#김해#금관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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