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재미있고 모험적인 동화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느낌인 걸."
"정말 그러네. 내가 동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하고, 꽃동산의 요정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전시장을 둘러보던 젊은 커플이 소곤소곤 나누는 대화다. 금요일(3월 6일) 오후, 봄바람치곤 쌀쌀한 날씨 속에 찾은 인사동 쌈지길 건너 '인사아트센터' 1층 전시실은 옛날 어느 동화의 세계에라도 들어온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전시장 벽면에 붙어 있는 20여 점의 크고 작은 그림들 때문이었다. 그림들은 하나 같이 울창한 숲속에 화사한 꽃들이 방실거리는 모습이어서 짙은 숲향과 꽃향기가 물씬 풍겨 나오는 듯 했다.
그림의 숲속에는 나무와 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림 속에는 폭포가 있고, 시냇물이 있고, 사람과 동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옷을 입지 않은 전라(全裸)의 여인이 동물들과 대화라도 하는 듯 평화롭게 어울린 모습이 마치 동화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속에는 나무와 꽃 종류도 많았지만 동물들의 종류도 다양했다. 미인과 대화라도 하는 것 같은 동물들은 개와 얼룩말, 원숭이, 토끼, 앵무새, 기린 사슴, 코끼리 등 순한 동물들도 있었지만 사자와 호랑이, 표범 같은 맹수들도 있었다.
그림은 원시시대로 돌아간 듯 옷을 입지 않은 여인이 동물들과 다정하게 어울린 모습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동화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커다란 화폭에 그려진 그림들은 아름다운 숲속 풍경을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관람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마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림의 주제는 숲과 꽃이었다. 아름다운 꽃과 다양한 동식물들이 어우러진 자연의 세계를 멋진 예술기법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아직 젊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림들 속에 정말 동화 같은 특별한 테마가 있느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꽃은 여왕이다. 꽃은 승리다. 꽃은 정점이며 영광이다. 그래서 꽃은 종말이다. 모든 영광은 종말의 출발점이다. 많은 시인들이 앞 다퉈 영웅의 영광을 칭송할 때 진정한 영웅은 자신의 퇴장을 준비한다. 진정한 영웅은 이렇듯 끝이 아름답다. 그래서 꽃은 그렇게 활짝 피었다가 아쉽게 진다."
미술명론가 이주현님이 이 그림전시에 붙이는 평론의 시작 글이다. 안내장에 들어 있는 평론가의 글은 계속 이어진다.
"이 아름다움의 진가를 알기에 예술가들은 그 절정을 영원한 감동으로 붙잡으려 애쓴다. 그것이 때로 헛된 노력에 그칠지라도 예술가들은 꽃의 영광을 포착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열정을 불사른다. 그런 만큼 훌륭한 꽃 그림은 우리에게 두 배의 감동을 준다.
꽃 그림이 지닌 아름다움을 보다 선명하게 체험하고 싶다면 화폭속의 꽃잎 하나를 떼어 마음 위에 살짝 올려놓을 일이다. 그것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흘러갈 것이다. 미풍을 따라 춤추는 나비처럼 한들한들 떠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리운 이의 귀엣말처럼 다가와 살포시 내려앉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꽃잎을 어찌 그림 속으로 되물릴 수 있을까. 그의 그림을 본 이는 모두 그렇게 '꽃잎도둑'이 되어 돌아간다."
미술평론가의 글이 어느 유명시인이나 수필가의 글을 능가할 정도로 감성적이다. 그러나 그림을 감상하며 글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에 담겨 있는 꽃의 아름다움이 평론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감성을 유감없이 끌어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1996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일화 화백은 그동안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제15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부문에서 특선으로 입상하고 몇 군데 대학에 출강하는 김일화 화백의 이번 전시회는 3월 10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