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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 붙은 과외 광고물.
한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 붙은 과외 광고물. ⓒ 오마이뉴스 박수원

하느님께서는 한 인간으로 사는 동안 우리에게 많은 역할을 주신다. 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부모 역할이 아닌가 싶다.

진로문제로 고민하던 아들아이가 달랑 편지 한 장 남기고 가출을 했다. 아침 일찍 아이의 방을 열었을 때의 그 절망감이란….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그러면서도 일등급을 벗어난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애가 갑자기 고민에 빠져버렸다.

일찍부터 목표를 정해놓고 있던 아이는 아무리 치열하게 공부를 해도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예습하고 온 아이들과 경쟁이 안 되는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며 불안해하더니 학원에 갈 시간은 없으니 단기 과외를 시켜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이가 말하는 과외는 고액이었고 형편도 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한달 동안 아무리 일해도 박봉인 남편의 월급과 맞먹었다. 물론 약한 어미 마음으로 무리를 해서라도 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원하는 대로 해줘볼까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날 밤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높은 이상과 낮은 현실에 좌절했을 것이다. 조금만 뒷받침해주면 가능성 있는 아이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내 처지가 원망스럽고 경제여건 때문에 좌절하게 하는 교육풍토가 한없이 서글펐다.

이틀 후 아이는 가출했고 나는 허물어져 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리고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가 어지럽게 떠난 빈자리를 치우고 옷가지를 빨면서 아이는 돌아와서 이 옷을 다시 입을 수 있을지, 아이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부모의 역할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견딜 수 없이 가슴이 미어져 울다가 쓰러지고, 깨어나면 또 울고 그렇게 넋 나간 아낙처럼 몇 날을 보내다가 그분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내가 홀로일 때 늘 곁에 계셨던 그분은 아무도 위로가 되지 못할 때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라 나에게 잠시 맡겨져 있을 뿐이라고 가르쳐주셨다. 또한 아이도 나름대로의 경험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과 그들이 선택한 대로 살 자유의지가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텅 빈 가을들녘처럼 허허로운 고통스러움 속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의 소원을 들어줄 걸 하는 회한으로 눈물의 기도를 하지만 아이는 지금 어디선가 새로운 인생체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얼마 전 일간지에 고등학생 과외비 480만 원이란 기사가 났더군요. 과외비 때문에 우리와 같은 비극이 없기를….



#가출#과외비#자유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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